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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난인형 Nov 23. 2019

넝마주이와 엿장수

70년대 초 내가 미취학 아동일 때, 간혹 동네에 넝마주이들이 다니는 걸 본 기억이 있다. 넝마주이들은 대부분이 지저분한 몰골에 남루한 옷차림을 한 부랑자나 전쟁 중에 신체의 일부분에 장애를 입고 마음을 다친 후 우악스러운 말투로 시비를 걸며 공포심을 유발하던 상이군인이었다. 고물 담을 기다란 망태기를 등에 메고 손에는 자루와 집게를 들고 쓰레기를 뒤지던 그들. 언뜻 보기에 돈 되는 물건이 없을 것 같던 그곳에서 넝마란 뜻의 못 쓰는 옷이나 이불 이외에도 뭔지 모를 물건들을 부지런히 골라 자루 속으로 넣었다. 마을에는 외지인들이 드물게 들었기에 그들의 모습은 쉽게 눈에 띄었고 짓궂은 어른들은 넝마주이 가운데 문둥병 환자가 많아 어린아이들의 간을 좋아하니 조심하라고 겁을 주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어렴풋한 넝마주이 기억 이후론 뚜렷하게 기억되는 엿장수에 대한 기억이 있다. 

"엿이 왔어요, 울릉도 호박엿이 왔어요. 고장 난 시계, 빈병이나 망가진 프라이 팬, 고무신도 됩니다." 

밥이 먹거리의 전부였던 옹색했던 유년시절, 리어카 위에 널따란 엿판을 싣고 다니며 내던 “철컥 철컥” 엿장수 가위질 소리는 달달한 엿만큼이나 어린 마음을 들뜨게 했고 엿으로 바꿔 먹을 만한 고물을 찾기 위해 온 집안을 뒤지고 다녔다. 값어치 없어 보이는 고물 약간과 술꾼인 아버지가 즐겨 마시던 소주병 몇갸를 들고 나가면 엿장수는 넓다란 판엿 위에 납작한 끌을 대고 묵직한 엿장수 가위로 “탁탁”쳐가며 엿을 먹기 좋게 잘라 주었다. 가위 하나로 신명나게 노랫가락을 연주하며 엿을 자르던 모습을 숨죽이며 지켜보던 순간은 어찌나 감질나던지. 때로는 판엿 한 귀퉁이에 하얀 밀가루를 묻힌 구멍이 숭숭 뚫린 가락엿으로 받기도 했는데 그 맛 또한 달달하니 충분히 맛있었다. 

 엿장수 아저씨가 오는 날이면 아직은 쓸 만한 그릇이나 냄비를 엿으로 바꿔 먹던 친구들이 한둘 있었고 들일을 마치고 저녁 무렵 돌아온 그들의 엄마 손에 흠씬 두들겨 맞고는 집밖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아마도 엿 맛에 현혹돼서 알고도 바꿔 먹고 모르고도 바꿔 먹지 않았을까. 요즘 아이들이 마이쭈를 좋아하듯 호박엿의 단맛을 좋아했던 어린 나를 떠올리면 울릉도 호박엿 맛처럼 마음이 달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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