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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난인형 Dec 26. 2019

도시락에 대한 단상

                    


요즘엔 학교의 단체 급식이 정착이 돼서 엄마들이 많이 편해졌는데 내가 학교에 다니던 70~80년대에는 각자 가정에서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녀야 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70년대 중후반, 그때는 도시락을 싸다닐 형편이 안 돼서 수돗가에서 물로 배를 채우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는데 매일 김치와 짠지밖에 없었던 내 도시락도 그와 크게 다르진 않았고 대부분의 아이들 반찬이 나와 같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땐 혼식 분식 장려운동으로 선생님이 매일같이 잡곡이 섞여있는지 도시락 검사를 하셨는데 그럴 때면 창피한 도시락 반찬 때문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도시의 아이들은 밥과 반찬의 비율이 6:4라고 했고, 반찬을 싱겁게 먹어야 몸에 좋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나의 도시락을 들여다보니 밥과 반찬의 비율은 9:1이었고 짠지, 고추장, 김치 등 짜디 짠 반찬밖에 없었으니 도대체 도시 아이들의 도시락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우리 반에도 선생님이 말씀하신 도시의 아이들의 가지고 다닌다는 6:4 비율의 도시락의 느낌이 나는 도시락을 싸오는 친구가 딱 한 명 있긴 했다. 친구는 하사관인 아버지를 두어서 농사꾼이 대부분이던 우리 동네에서는 부유한 가정에 속했는데 예쁘고 날씬하고 공부 잘하고, 그림 잘 그리고, 뭐든지 잘하는 팔방미인이었다. 친구의 도시락 반찬은 볶음멸치, 소시지, 달걀지단 등 형형색색의 식욕 돋는 메뉴가 주를 이뤘고 점심시간이면 친구의 책상 주변으로 많이 아이들이 손바닥을 벌리고 간절할 눈빛으로 "나 좀 줘~ 나 좀 줘~"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때는 위생관념도 없어서 모래장난이 끝난 후나 재래식 화장실을 다녀와서도 손을 잘 안 씻을 때였기에 그 모습을 보시던 선생님께선 "반찬을 같이 먹는 건 좋은데 손은 더러우니 꼭 젓가락으로 먹어라"라고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향수 때문인지 나는 요즘 마트에 가면 가끔 고기보다 밀가루 함량이 많다는 싸구려 분홍 소시지를 사 온다. 그리고 어렸을 적 못 먹어본 한을 풀듯, 천천히 항과 식감을 음미하며 먹곤 하는데 씹으면 씹을수록 고급 햄과는 다른 특유의 향이 난다. 


중학교 때는 잠시 거식증에 걸렸던 적도 있었다. 매일 싸갔던 김치와 무말랭이, 장아찌밖에 없던 도시락을 열고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으면 목에 걸려 넘어가지도 않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그래서 도시락을 열지도 않고 집으로 가지고 가는 날이 열흘 정도 지속됐고 어느 순간 거식증은 자연 치유가 되었다. 

사춘기는 배부른 아이들의 투정이고, 내 생애 사춘기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열흘간의 짧았던 거식증이 나의 소심했던 사춘기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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