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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난인형 Oct 07. 2019

군인과 건빵

내 고향은 국토의 정중앙, 배꼽마을이라고 불리는 강원도 양구군이다. 6.25 전에는 3.8선 이북이었고 휴전 이후 비무장 지대가 포함된 남한 땅이 된 양구에서 군인은 농사꾼만큼 친근한 이웃이었고 마을에 어울려 살던 군인이라면 가족을 이루며 사는 하사와 중사 급은 되어야 했지만 훈련을 하던 햇병아리 신참 군인들도 흔히 볼 수 있었다.     


군인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1970년 내가 미취학 아동일 때부터 초등학생일 때까지 일로 산에서고 들에서고 군사 훈련을 했었는데 동네 뒷산에선 대포 소리가 "펑펑~" 터지고 철모에 나뭇잎을 꽂고 얼굴에는 검정 칠을 한 군인들이 마을 앞 밭두렁에서 기다란 총자루를 들고 있었고 밭에서는 아무일 아니라는 듯이 농부가 농사를 짓는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마을 뒷산에는 공중에서 가해지는 폭격을 차단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구덩이 방공호가 있었는데 군인들의 훈련 장소인 이곳이 마을 아이들에겐 친환경적인 놀이터 역할을 했송판으로 그럴싸하게 만든 장총이나, 이도 없으면 나뭇가지를 대충 엮어 총이라고 우기고 남녀 구분 없이 총싸움을 했다.

"다다다다~~~"," 드드드드~~~~"

"으윽..."

모든 효과음이 입에서 나왔던 어설픈 전쟁놀이로 여러 명의 친구들이 산 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던 뜀박질로 기억되던 그 이전 70년대 초반에는 새벽밥을 하러 부엌으로 나간 엄마가 몇 번이나 간밤에 군인들이 고추장을 퍼갔네, 된장을 퍼갔네, 김치를 꺼내갔네 말씀을 하셨으니 후에 점점 좋아지긴 했으나 그때만 해도 군인에 대한 처우가 상당히 열악했었나 보다.  

 

초등학교 재학 시절, 길을 걷다가 훈련하는 군인 아저씨를 만나면 "꼬마야~ 집에 언니 있니? 언니 있으면 건빵 줄게"라고 했고 군인 아저씨가 동네 아저씨만큼이나 익숙해서 군인에 대한 호기심이 없었지만 간식이 귀하던 그 시절 건빵의 유혹에 기꺼이 대꾸를 했다. 나보다 여섯 살 많은 언니는 동생들은 챙기지도 않고 혼자 놀기 바빴으니 건빵으로 바꿔 먹어도 아깝지 않을 때였고 건빵도 얻어먹고 별사탕도 얻어먹고, 한 번은 건빵을 준다는 아저씨가 건빵은 안 주고 계속 줄 듯 말 듯 하기에 화를 내면서 돌아섰더니 "학생, 미안해. 건빵 줄게, 가져가". 마음은 되돌아가고 싶었으나 흘러넘치는 군침을 속으로 삼키며 씩씩대고 집으로 돌아왔던 날도 있었다.     


4에도 잔설이 내리던 양구의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는데 강물이 꽁꽁 얼 때면 젊은 군인들이 모여 도끼로 두꺼운 얼음을 깬 후 국방색 상의는 탈의하고 팬티만 입고 들어가 극기 훈련을 했다. 얼음 속에 몸을 담그고 머리만 밖으로 내밀고 몇십 분을 버티다 밖으로 나올 때면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는데 얼음 위에서는 단체로 어깨동무를 하고 "와~~" 하는 함성을, 교관인 듯 한 상관은 "이거 봐라. 소리가 작다. 다시 입수"하며 몇 번이고 했으니 고생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겨울 십 센티가 넘게 쌓이던 눈도 이른 새벽 일어나 말끔하게 치워주던 천하무적 군인 아저씨들.     


그 시절, 읍내를 가기 위한 시내버스를 타면 중간지점인 광치 검문소에서, 춘천을 가기 위해 시외버스를 타면 양구군을 벗어날 때 있던 신남 검문소에서 검문이 있었다. 각이 진 군복만큼이나 잘 생겼지만 무표정한 군인은 버스에 오른 후 거수경례를 하며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를 시작으로 수상해 보이거나 젊다 싶은 청년의 신분을 일일이 확인했었고 같은 버스를 탄 일반 시민까지 그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되었다.     


오 남매나 되는 우리 집은 자그마한 방이 3개뿐이라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니었지만 건넌방은 늘 하사관이던 신혼부부에게 세를 줬었고 펑퍼짐한 엉덩이를 가리고도 남는 엄마의 면 팬티만 알던 나는 예쁘장한 서울 새댁이 빨랫줄 귀퉁이에 걸어놓은 손바닥만 한 레이스 팬티를 보며 세상이 참으로 넓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었지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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