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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난인형 Apr 20. 2020

바나나에 관한 최초의 기억


초등학교 3~4학년 때였나? 선생님이 칠판에 '외국'이란 단어를 쓴 적이 있는데 한 친구가 잘못 쓴 줄 알고 지적질(?)을 했다. "선생님, 외국 아니고 미국인데요."

지구 상에 나라가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미국이 전부인 줄 알고 있던 시절이었으니 그 친구뿐 아니라 많은 친구들이 생뚱맞게 외국이라는 나라는 어디 있는지 궁금했던 시간이었다. 


중학교 재학 시절 최초로 만났던 바나나에 관한 추억도 있다. 고등학교를 춘천으로 진학하기 전까지 양구 바닥을 벗어나 본 적이 없던 나는 읍내 나들이를 할 수 있던 기회가 일 년에 한두 번이 고작이었다. 조그만 동네에서 답답증을 느끼던 그 시절, 명절에 모은 동전으로 읍내 구경을 다녀오기도 하고 어른들이 읍내 오일장이라도 가는 날이면 어떻게 낑겨 갈 수 없을까 눈치를 봤더랬다. 



                                                                                                                                           

그날은 양구 오일장에 이모와 이모의 딸인 사촌과 함께였는데 아마도 사촌과 놀아주라고 나를 데려갔었나 보다. 나보다 열살가량 어린 사촌 여동생은 얼굴이 인형처럼 예뻐서 어딜 가나 눈길을 끌었고 버스를 타면 차장들이 놀아주고 안아주고 차비도 안 받고 내려줄 정도로 돋보이는 미모를 소유하고 있었다. 눈 돌아가는 시장 풍경에 정신줄을 놓으며 한참 걷고 있는데 십오 년을 말로만 듣던 노란 바나나가 보였다. 그런데 소문대로 가격이 사악했다. 한 송이도 아니고 하나에 2천 원! 천 원짜리 한 장이면 읍내 가서 영화도 보고 올 정도의 금액이었고 2천 원이면 티셔츠가 4 벌인 시절이다. 


이모는 그곳에서 2천 원짜리 바나나 하나를 샀다. 

아마 큰 맘먹고 샀으리라. 

그리고 껍질을 벗겨 사촌 여동생에게 들려주었고 추접스럽게 옆에서 침을 흘리는 나를 무시할 수 없었던 이모는 사촌에게 말했다. 

"00야, 언니 한 입 줘야지"

한입 얻어먹은 바나나 맛은 숙성이 안된 듯 풋내만 났다. 

어린 가슴에 있던 알량한 자존심에 미세한 스크래치도 났다. 

한동안 내가 그 이모를 안 좋아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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