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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난인형 Jul 15. 2019

듣고 싶은 대로


젊은 여성분들이 들으면 분개할 일인데 1990년대 내가 아이를 낳을 무렵엔 아들을 못 낳으면 괜히 시댁 눈치가 보이고 친정엄마는 죄인처럼 속상해하셨다.


첫째 딸을 낳았을 때는 첫 딸은 살림밑천이라는 위로 아닌 위로가 있었고 둘째를 가졌을 때는 나도 살짝 조바심이 생겼더랬다.

남들이 말하길 묻지 않아도 병원에서 성별을 알려준다던데 임신 중기가 넘어가도 별말씀이 없으신 의사 선생님께 "파란 이불로 준비할까요. 분홍 이불로 준비할까요."하고 물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아이가 돌아 앉아서 안 보인다고 ;;

"위에가 딸인가요?"하며 웃을 때 눈치챘어야 하는데 순진하고 멍청한 나는 결국 출산할 때 딸아이의 째지는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딸인 줄 알았다.


계획에 없이 십 년 뒤 늦둥이를 가졌을 땐 '설마 또 딸이겠어. 어떻게 딸을 셋이나 낳을 수 있겠어...'하는 생각을 밑바탕에 깔고 있었던 듯싶다.

이번에도 성별이 궁금한 나는 초음파를 열심히 보시던 의사 선생님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여기가 얼굴이고 여기가 다리고... 여긴 음경막..."

'음... 음경 막이면 아들이겠군'

그때부터 예정일이 8월 15일이던 아이의 태명을 광복이로 정했다.

그런데 얼마 뒤 친구가 의사인 남편한테 물었더니 음경 막이란 건 없다나 뭐라나.

살짝 불길했지만 에이 설마 내가 딸 셋을...? 아닐 거야...


하지만 예정일보다 닷새 일찍 태어난 아이는 세 번째 같은 울음소리를 냈고 광복이가 아닌 광순이.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선생님이 알려주신 부위는 음경 막이 아닌 횡격막이었고

지금은 같은 성이라서 잘 어울리고 챙겨주니 아들 못 낳아서 속상하고 아쉬운 건 전혀 없다.


그럼에도  

전혀 그럴 일은 없지만

넷째를 낳는다면 이번에도 또 딸일 것 같은 예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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