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고도 가벼운 삶을 살 수 있다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처음 읽은 건 아마도 20대 중반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이번에 다시 읽기로 마음먹었을 때 전혀 기억나지 않던 책의 내용처럼, 그때 이 책을 왜 읽었는지 또한 기억나진 않는다. 아마도 너무 매력적으로 보이는 책의 제목에 이끌려서였지 않았을까? 지금봐도 묘하게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 제목...!
책은 같은 책이라도, 그 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나 시기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식이나 경험, 처한 상황, 관심사 등은 계속 변화하니까. 20대의 나는 이 책을 읽고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동안 내용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잊고 지낸 걸 보면. (뭔가 좀 야했다는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흘러 다시 읽어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꽤 괜찮은 책이었다. (사실 부분적으로는 아직도 거부감 드는 내용들이 많이 있지만,) 10년 넘는 세월만큼, 나에게 이 책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인생 경험이 조금 쌓였나 보다.
이 책은 첫 부분에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소개하며,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관한 논의로 시작을 한다. 영원회귀 사상이란 우리의 삶이 그대로 무한히 반복된다는 가정인데,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는 엄청난 무게를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실제 우리 삶은 딱 한 번뿐이므로, 그렇게 지나가버리는 인생은 한없이 가볍고도 덧없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묻는다. 그렇다면 무거움과 가벼움, 둘 중 어떤 것이 더 좋은 것일까 하는 물음이다. 기원전 6세기에 파르메니데스는 세상의 모든 반대(모순)되는 것들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긍정과 부정으로 구분했는데, 그는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은 부정적이라고 했다 한다. 그의 말이 맞을까? 작가는 이에 답하는 대신 모든 모순 중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문제가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책에는 네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무거움’을 대변하는 테레자와 프란츠, ‘가벼움’을 대변하는 토마시와 사비나가 그들이다. 처음 작가가 던진 질문 때문에, 나도 처음엔 캐릭터들에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고 무거움과 가벼움 중 어느 쪽이 더 나은 삶인지를 들여다보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거의 50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을 전부 읽고난 후 드는 생각은, 무거움과 가벼움 어느 한 쪽만이 옳다거나 좋다고 판단할 수 없을뿐더러 철저히 무거운 삶도, 철저히 가벼운 삶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사실 우리의 존재란 ‘참을 수 없게’ 가볍고,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점에서 너무나 덧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덧없음으로 인해 인생을 가볍게 소진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한 번 뿐이라는 사실이 인생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결국 같은 현상을 두고도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으며, 인생을 무겁게 살 것인가, 가볍게 살 것인가, 무거운 것이 좋은 것인가, 가벼운 것이 좋은 것인가 하는 이분법적 물음에 답하기에는 애초에 우리 인생이 너무나 복잡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둘 중 하나를 택한다면, 내 개인적으로는 무거운 삶을 택할 것이다. 그건 일정 부분 태생이 그렇기 때문일 것이고, 이후 가미된 내 가치관의 문제일 것이다. (무거운 삶이 가벼운 삶보다는 도덕적으로 옳다고 생각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소설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듯 무거운 삶을 사는 것은 분명 다소 팍팍하고 답답한 면이 있다. 남편인 토마시의 여성 편력 때문에 고통을 받으면서도 지조를 지키는 테레자의 삶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지만 아내에 대한 의무감을 져버리지 못하는 프란츠처럼, 삶을 무겁게 대하는 사람의 삶은 삶을 가볍게 대하는 사람의 삶에 비해 스스로에게는 힘든 측면이 있다. 소위 ‘바른 삶’을 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재미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덕적으로는 바르지 못한 삶일지라도, 자신의 성향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즐기면서 사는 삶은 재미와 낭만이 있다.
그래서인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매력을 느낀 캐릭터는 ‘가벼움’을 대변하는 사비나라는 주인공이었다. 사비나의 삶은 깃털처럼 가볍다. 의무와 책임, 규율같은 것은 사비나를 견디지 못하게 만들고, 그녀는 ‘배반’에서 희열을 느끼며 살아간다. 배반이라는 것이 사전적으로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지만, 체제나 규율 등에 저항하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는 사비나라는 캐릭터와 만날 때 발산하는 매력이 있다.
이쯤되면 정말이지 무거움과 가벼움 중 어떤 것이 더 낫다고는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한 번 뿐일지라도 책임감 있고 올바른 삶(무거움)? 한 번 뿐인데 자유롭고 즐기는 삶(가벼움)?
나로서는 내 삶을 의지대로 이끌어나갈 수 있다면, 무거움이라는 바탕에 사비나라는 캐릭터가 보여주는 것 같은 가벼움을 한 두 방울 가미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기본적으로는 삶을 진지하게 대하지만, 너무 무겁지만은 않은, 어느 정도 즐길 줄도 아는 삶 말이다. 하지만 무거움과 가벼움 중 하나를 택하는 게 어려운 만큼, 두 극단을 조화시키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무거움’을 상징하는 프란츠가 사비나를 너무 사랑해 진지하게 다가서려 했을 때 홀연히 떠나버린 사비나가 보여주듯이 말이다.
이 책은 사실 무거움과 가벼움이라는 주제 외에도 인상깊은 구절들이 많고,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고 있어서 조금 더 시간이 흘러 내 인생에 내공이 더 쌓일 때쯤 다시 읽어보면 또 다르게 느끼는 바가 있을 것 같은 책이다. 즉 500페이지 분량의 방대한 이야기를 온전히 다 받아들이기에는 내 지식도, 경험도, 이해의 폭도 아직 한참은 부족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책이었다. 언젠가 이 책의 무게를 조금 더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 때쯤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