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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herine Apr 08. 2019

Three Billboards

세상을 향한 분노 X 나를 향한 분노

장르 드라마, 블랙 코미디
감독 마틴 맥도나
제작 그레이엄 브로드벤트, 피터 체르닌,마틴 맥도나  
각본 마틴 맥도나 
출연진 프란시스 맥도맨드, 우디 해럴슨 외 
음악 카터 버웰
제작사 필름4 프로덕츠/커팅 엣지 그룹 외


    세상에. 이렇게 막 나가고 무서운 영화가 또 있을까 싶다. 세 개의 빌보드라는 흥미로운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거침없고,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한다. 영화는, 신랄한 유머와 해악적인 상황들을 제외했을 때 성폭력과 살인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시기적절하게 가감 없이 보이는 폭력과 화풀이들로 인해 무겁다곤 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게 한다. 

방치된 빌보드 판을 보며 생각에 잠긴 밀드레드


    밀드레드는 안젤라 헤이즈의 엄마로,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녀의 딸 안젤라가 성폭행을 당한 뒤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되자 미저리주 에빙 외곽지역의 경찰인 월러비 서장과 딕슨은 수사에 나선다. 그러나 7년, 8년이 지나도록 수사에 진척이 없자 밀드레드는 인적이 드물어 비교적 싼 값에 대여할 수 있는 세 개의 빌 보드판에 공공연한 대화를 시도한다.


Three Billboards


    “내 딸이 죽었다”

    “아직도 범인을 못 잡은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월러비 서장?”
        

    

    어떤 신문사는 그녀를 인터뷰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녀를 비판했다. 특히나 가족들은 잊혀 가는 아픔을 들쑤셔 놓고, 안 좋은 일을 당한 딸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다시금 떠오르게 만드는 그녀의 행동이 선을 넘었다며 비판하기 바쁘다.


창 밖으로 월러비 서장의 사무실을 응시하는 밀드레드


    영화의 재미요소는 여기서 시작된다. 살해당한 피해자 '안젤라'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가해자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엄마는 세상과 경찰들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며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그녀의 분노가 이해되면서도 영화를 보는 내내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것은 일방적으로 그녀의 타깃이 된 월러비와 딕슨이 나름 아픔을 가진 일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월러비는 에빙 마을의 존경받는 경찰 서장이다. 정신적으로 어딘가 조금 불완전한 딕슨을 잘 다독이고 언제나 지역의 안녕과 평안을 추구한다. 그런 그는, 알고 보니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암환자였다. 어린 두 딸과 부인을 두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월러비는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게 폭력 당한 희생자라고 볼 수 있다. 딕슨 또한 어떤 일을 겪었는진 자세하게 알 순 없지만 꽤 나이가 들 때까지 노모를 돌보며 힘없는 그녀의 말에 복종하고야 마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사람이다. 


    이렇게 각자 마음에 분노를 담고 살아가는 세 사람이 만나 그들의 분노는 제 각각 터져 나오고야 만다. 가정을 생각하지 않았던 밀드레드의 남편이 영화 중반에 이렇게 말한다,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가져 올뿐이다."


밀드레드에게 가해자 정보를 넘기는 딕슨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이 말을 알았지만, 단 한 사람도. 실천하지 못한다. 분노는 가짜이면서 이렇게 간혹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월러비는 분노를 자기 자신에게 갚았다. 자살한다. 자기 자신만을 용서하지 않은 채 주변 사람들과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홀로 떠난다. 망설임 없었던 것으로 보아 그의 분노는 내재되어 있을 뿐 생생했다. 


    밀드레드는 본인의 삶을 전혀 돌보지 않았고 더불어 세상을 용서할 생각도 없었다. 그녀는 자비와 연민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삭막하고 메마른 삶을 사는 것이다. 분노의 화마가 그녀의 삶을 모두 태워버린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딕슨은 본인의 분노를 가해자를 수사하는데 쓴다. 그나마 쓸모 있게 감정을 소모한 것처럼 보이지만 글쎄, 마지막 장면에서 밀드레드와 딕슨이 가해자가 있는 장소로 죽을 각오와 함께 동행하는 장면으로 보아 사실상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분노와 거래하여 결국 삶 자체가 송두리째 파멸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함께 마지막 순간을 향해 달리는 딕슨과 밀드레드


    신랄한 이 영화의 강도를 낮추면 평범한 우리의 삶이 되지 않을까? 분노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결국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용서이고 사랑이다. 분노는 사람을 완벽하게 만들 것 같지만 결코 그러지 못한다. 유혹일 뿐이다, 


    살아가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와 다른 사람들이 밀려오고 또 쓸려갈 때가 있다. 화는 그런 것이다. 나의 시선을 빼앗고, 무엇이 중점인지 핵심인지 실마리를 잊어버린 채 발을 쿵쿵 구르고 고함을 지르게 만들어 순식간에 방향을 잃게 만든다. 달려가는 것 같겠지만 잘못된 방향일 확률이 크고 강해진 것 같겠지만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으며 주위에 사람이라고는 남김없이 날려버려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언제나 항상 빌보드 판 아래를 꽃으로 장식하며 그 곁을 지키는 밀드레드

    

    영화의 주인공 밀드레드와 월러비 서장과 딕슨의 삶이 불모지로 끝이 났으니 최소한 이 결말을 아는 우리는 이렇게 끝을 맺지 않길 바란다. 감정의 해소는 있어야 하겠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직면하고 뛰어넘을 준비가 아닌 그저 감정의 노예가 되어버리지 않길 바란다. 


https://youtu.be/vnxojU0_Lg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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