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stralia Coorong Bird sanctuary
한 소년이 있다. 아버지는 세상으로부터의 단절을 원했고, 소년과 함께 넓은 바다를 건넜다. 물론 소년은 아버지를 믿었다. 영리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던 소년에게 대화 상대는 없었지만, 그가 사는 자연은 곧 그에게 무궁무진한 놀이터이자 대화 상대가 되었다. 태양은 언제나 소년의 마음을 따스하게 보듬었고 바람은 그의 머리를 넘겨주었다. 지치지 않고 결마다 이야기를 담은 파도가 너울졌으며, 똑같은 듯 다른 아침이 소년을 맞이 했다. 항상 같은 자리를 지키고 선 이름 모를 풀든은 영원히 그의 무대였다.
영화 속 소년의 말에 의하면, ‘어느 날 세상이 그에게 다가왔다’고 한다. 그가 사는 섬은 수천 종의 새가 머무르다 떠나는 서식지였는데, 사냥꾼에 의해 새끼들만 남겨진 세 마리의 펠리컨을 발견한 것이다.
폭풍 속에서 두려워 않고 얕은 노를 저을 수 있었던 소년은 가엾은 생명을 그대로 꺼뜨릴 수 없었다. 아이러니다. 사실 소년은 사고로 여동생과 어머니를 잃었기에 어린 나이에 자신을 돌봐줄 ‘모성애’가 필요했을 것이다. 정성과 사랑을 다해 펠리컨을 키워낸 소년. 비록 말 못 하니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해도 소년은 펠리컨의 곧은 눈과 힘찬 날갯짓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가장 소중한 친구들의 필요를 오직 소년만이 캐치해냈다. 혼잣말처럼 건넨 무수한 말들이 그들 사이에 무너지지 않는 교감을 형성했고 온 마음을 다해 반복했던 행동들이 보이지 않는 규칙으로 남았다. 그렇게 의지하고 또 견뎌내며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공유했다.
소년은 세 마리의 펠리컨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낼 때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학교를 입학하지 않은 어린 나이의 소년에게 마음을 모두 주었던 친구들과의 이별은 여러모로 감당할 수 없는 종류에 속했다. 그렇게 슬프고 무기력한 밤들이 지나고 어느 날 아침, 세 마리 중 가장 여리고 약했던 ‘퍼시벌’이 돌아와 소년의 곁을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돌아온 퍼시벌은 영화의 중반, 소년의 아버지가 바다에서 낚시를 하다 파도에 휩쓸렸을 때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올 수 있게 돕는다. 이 믿기 힘든 소식은 지역 언론의 집중을 받아 이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보호구역을 두 배로 넓게 지정하는 중요한 발판이 된다. 뿐만 아니라 사냥꾼들의 총성이 들릴 때마다 겁도 없이 온몸으로 밀렵을 방해했는데, 가장 약했던 퍼시벌의 이런 희생적인 모습은 결국, 총에 맞아 소년의 품에서 죽어가던 마지막 장면에서 큰 울림으로 퍼져나간다.
헌신은 어렵다. 세상에서 나보다 중요하고, 나보다 소중한 사람이 있을까 싶을 만큼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이든 동물이든 1차원적인 ‘자기애’를 벗어나 타인을 향한 고차원적인 사랑을 할 때, 어떤 방향으로든 성장하는 것 같다. 사랑에 기반한 목숨을 건 희생과 배려는 상대의 마음과 삶에 크고 중요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낸다. 이전에는 한 번도 걷지 못했던 길을 내어, 보다 밝고 즐겁게 여정을 계속하게 하는 것이다.
소년이 할아버지가 되고 고등학생 손녀가 생겼을 때 즈음 이 특별한 우정을 모두 잊은 것처럼 보였지만 아니었다. 노년의 신사는 모든 감동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마치 그 지역의 세대가 바뀌고 또 한 번 세대가 바뀌었어도 퍼시벌 동상이 같은 자리에 있듯이 말이다.
이 이야기는 호주의 서부 Coorong Bird sanctuary에 세워져 있는 펠리컨 동상을 모티브로 리메이크된 작품이다. 무분별한 토지 개발과 사냥꾼들의 밀렵으로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던 새들과 자연을 지켜낸 멋진 이야기다. 또한 총과 사람의 욕망 앞에 약자일 수밖에 없는 동물을 통해 주는 메시지가 있기에 의미 있다. 어릴 적 만화 비디오에서 볼 수 있었던 펠리컨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담아낸 영상도 정말 멋진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