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Real Apple Pie

세상을 바꾼 변호인

On the Basis of the sex

by Katherine


아직 제작되진 않았지만, 작품성이 뛰어난 최고의 시나리오를 할리우드에선 '블랙리스트'라 명명한다. 이 작품은 '그린북'과 '스포트라이트'를 이어 블랙리스트로 선정되었던 작품이며, 앞선 두 영화를 제작했던 제작진과 당대의 분위기, 법정의 모습들을 실감나게 재현하기 위한 연출팀의 치밀한 노력이 더해지고 아카데미 수상에 빛나는 미하엘 다나 음악 감독의 협연이 더해져 세상에 나왔다.


남녀의 성차별이 만연하던 시대에 태어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그녀는 1950년대에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한다. 당시 10여 년 정도의 싸움 끝에, 여학생들도 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도록 바뀐 지 6년이 되는 해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들은 가사를 도맡고, 남성들은 간호사가 될 수 없는 시대이기도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일찍이 돌아가셨지만, 병상에서도 논쟁과 토론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였다. 모두가 타당하다 느끼는 것에 질문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사의 기질을 가르친 것이다.


하버드 로스쿨 수업시간에 발표하는 루스

거기에 그녀는 하버드 로스쿨 수석 입학 후 반 일등을 놓치지 않는 수재였는데, 무엇보다 삶 속에서 끊임없이 차별받고 있는 중이었다.


성차별을 주장할 때,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다. '선 판례'이다. 판사들은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지만 이제까지 이어져왔던 흐름에 정통으로 반기를 들려하지 않았고 그것은 큰 문제였다.


수백 개의 법이 수정되어야 할 부분이 있음에도 매번 같은 판례로 전락하기 일수였고, 그래서일까 변호사가 된 남편 마틴과 달리 루스는 변호사가 아닌 법대 교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그녀의 그녀 됨을 나타내는 순수한 투쟁의지는 그녀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훗날 '모리츠 사건'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선례를 남기며 열매 맺는다.


사건을 요약하면 이렇다. '모리츠'는 미혼 남성으로, 홀로 일을 하며 노모를 모시는데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없자 간병인을 고용한다. 그리고 노모의 보육자 신분으로 간병인의 급여 296달러를 세금공제 신청을 하는데, 세금을 낼 마음이 없어서 요령을 냈다는 모욕과 함께 거부당한다. 보육비 공제는 여성만 가능하고, 남자인 경우 아내가 중증 장애인이거나 사별했거나 이혼했을 경우만 가능하다는 법 때문이었다.


성별에 근거한 ‘합법적 차별’이 178개 조항이 존재하던 시기 었다. 여성은 신용카드를 남편 명의로 만들어야 하며, 여성 경관은 뉴욕에서 순찰할 수 없었다. 여성이 군용 수송기에 타는 것은 불법이었으며, 탄광에서 일할 수도 없었다. 일리노이주에서는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없었고, 남성들처럼 수당을 더 받는 초과근무를 할 수도 없었다.


당시 피항소 측, 즉 국세청장의 변호를 맡은 짐 보자스 변호사는 이 178개의 조항을 내세우며 루스의 말을 인정해 판결을 파기할 시, 앞으로 법정은 시끄러워질 것이며 결국 아이들이 하교해도 집에 반겨줄 사람이 없는 미래가 올 것이고 돈을 벌 책임이 있는 '남성'들의 자리가 좁아질 것이라 주장했다.


'급진적 변화'라 쐐기를 박은 변호사 짐을 향해 루스는 재판이 있었던 1970년대로부터 약 100년 전의 여성들의 신분이 어떠했는지. 불과 십 년 전만 해도 “하버드 로스쿨에 다닐 때 여자 화장실도 없었다”라고 답하며 이것이 과연, 급진적인 변화인지 되묻는다. 누구보다 뛰어난 성적으로 이미 시작되었어야 하는 변호사로서의 커리어가 차별에 부딪혀 법정이 아닌 교실에서 이어져야 했던 지난 날들 속에, 분명 차별은 존재하며 이는 바뀔 수 있다고 변호한다.


결국 모리츠 재판은 루스의 승리로, 좋은 선례가 되어 후에 수많은 재판들을 통해 차별 조항들을 하나하나 깨 나감에 좋은 발판이 된다. 그녀는 1972년 미국 시민자유연맹 산하 ‘여성의 권리 프로젝트(Women’s Rights Project)’를 공동 창립, 1973년 미국 시민자유연맹의 변호사로 임명된 후 300건이 넘는 성차별 케이스를 맡았다. ‘리드 대 리드 사건’을 비롯해 1976년까지 연방대법원에서 여섯 개의 성 불평등 케이스를 변호했다. 1996년 미국 대법원 역사에 길이 남을 버지니아 군사학교(Virginia Military Institute)의 여성 입학을 허락하도록 했고, 2015년 부담 적정보험법, 50개 주 동성결혼 합법화라는 역사적 판결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2009년 포브스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선정되었고, 글래머 지 선정 ‘2012년 올해의 여성’에 올랐으며, 2015년 타임지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남녀평등과 인권 향상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변호사협회 주관 서굿 마샬 어워드를 수상했다.



요즘 이 시대는, 각자의 개성이 존중받는 것이 기본을 넘어 트렌드가 되는 시대이다. 이전 세대에 남들이 무엇을 하는지, 남들이 무엇에 관심 있어하는지가 주목받았다면 다가오는 시대는 오직 '나'의 관심사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시대인 것이다. 티브이를 통해 동경하던 시대가 아닌 모두가 동경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영화를 보며 드는 생각은 두 가지였다. 당연한 생각은 없다는 것, 모두가 예스할 때 반문을 제기할 요점과 쟁점이 보인다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 동시에, 명백하게 차별받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면 우리의 삶을 통제할 수 있고 모두가 동의 해온, '어른들의 말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다른 생각과 통치가 가능한 '신'과 같이, 이유를 모르더라도 믿고 따라야 할 통제자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즉,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좋지만 결국 쟁취된 '자유'는 우리에게 독이 될 것이란 말이다.


영화는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루스의 청년 시기부터 세기의 재판이었던 '모리츠' 재판까지의 삶만을 임팩트 있게 다룬다. 위에 적은 것처럼 루스는 이 재판을 발판 삼아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 냈는데, 여기서 문제는 사람은 영원히 선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에 주목했다. 아히히만은 히틀러가 시킨 일에 반항하기 어려우니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며 (열차에 가스실을 만들어 수많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일에 가담해 놓고도-) 본인은 잘못하지 않았고, 위법을 하지도 않았으니 뉘우치는 기색도 없지 않았는가.


자유와 평등을 사수하고 추구하는 일. 꼭 필요한 사고방식이자 수호되어야 할 정신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상황은 변한다는 것이고 누구도 계속 '옳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 정신적으로든 이론적으로든 '영원한' 것은 있을 수 없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것에 영원한 것은 있을 수 없다. 우리에게 '영원함'의 속성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기에 거기에 현기증을 느낀 다수가 자유와 평등이란 이름으로 섣불리 주장하여 쟁취된 '그런 종류의' 것들은 쟁취되었다는 이유 만으로 '옳은' 결정이 될 수 없으며 '진보'의 이름하에 불릴 수 없다.


각자의 개성과 아픔과 권리가 드러나는 세대, 그런 시기. 겹쳐질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가 크고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덮어놓고 쟁취에 열을 올리는 것. 또 그것이 트렌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의 제지와 제한이 있는 삶에 신물을 뱉어내는 태도를 취하지 않길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28dHbIR_N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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