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Real Apple Pie

Don't worry

존 캘러핸 X 호아킨 피닉스

by Katherine


눈높이의 탁자가 있다. 그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컵이 하나 붙어있다. 외로워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고.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렇게- 한동안 턱을 괴고 그 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별 이유 없이 그곳에 놓인 컵의, 있지도 않은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영화는, '존 캘러핸'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실제 존의 삶만큼이나 제작되는 과정 또한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가진 이 작품은 끔찍한 일을 겪고도 희망 가득한 태도로 모든 것을 극복해 낸 이야기를 가졌음에도- 그다지, 희망차지 않다. 정말, 이유를 알 수 없는 깊은 생각의 상태에 계속적으로 들어가게 하는 여운이 있다. 당신의 색깔이 고독함과 불안함 이라면 안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


2014년 세상을 떠난 '로빈 윌리엄스'는 영화 '굿 윌 헌팅'을 촬영할 당시, 존의 자서전을 읽고 그가 가진 삶의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는 존의 이야기를 영화화할 수 있도록 판권을 구입한 후, 당시 감독이었던 '구스 반 산트'에게 본인이 계획하고 있는 존의 전기 영화를 맡아줄 것을 부탁한다. 놀라운 일은, 구스 반 산트 감독이 1980년대 포틀랜드의 같은 시기, 같은 동네에서 캘러핸과 살았던 적이 있다는 것이다. 감독은 존이 빨간 머리를 휘날리며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는 것을 종종 보았다고 회상했고, 그렇게 운명처럼 영화 제작에 합류하게 된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여러 버전의 각본을 썼지만 안타깝게도 영화의 제작자이자 주연배우로 예정되어있었던 로빈 윌리엄스가 세상을 떠나며 진행이 잠시 중단된다. 그러나 로빈의 뜻을 계속 이어주고 싶었던 감독의 노력으로 새로이 '호아킨 피닉스'가 캐스팅되며 그에 맞는 새로운 각본과 함께 영화 제작은 본격화된다.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존 캘러핸'

존 캘러핸은 알코올 중독자였다. 생모에 대해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오직 네 가지, '아일랜드계 미국인'이라는 것, '붉은 머리'를 가졌다는 것, '교사'였다는 것, 그리고 '그를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입양아였고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며 정해진 '선'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애매모호함은 알코올 중독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깊숙이 뿌리내린 아픔의 밑동이 문제였던 것이다.


심각한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그는 큰 차 사고를 겪게 되는데 운전자였던 '덱스터'는 가벼운 찰과상만을 입지만 존은 사지마비 환자가 되어 가슴 밑으로는 어떠한 작은 움직임 조차 허락되지 않은 삶을 살게 된다.


평생을 휠체어에서 산 캘러핸과 그의 연인 아누

문장으로 적고 보니 더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될 일처럼- 인정하기 싫어지는 이 사건은 실제로 존에게 일어난 충격적인 일이다. 병원에서 깨어나 재활 훈련을 하며 오랜 기간 정신적인 문제도 경험하는 등 힘든 시기를 보낸 그였지만, 그의 연인인 '아누' 그리고 알코올 중독을 끊기 위해 나갔던 모임 사람들과의 교제를 통해 그만의 '삶'을 살아나가게 된다.


감독이 집중한 영화의 포인트는 '캘러핸의 극복'이다. 사고 후 수십 년간 존의 내면에서 일어났던 낙담과 억지로 쥐어졌을 희망과 소망, 외로움, 포기하고 싶은 나약함과 믿을 수 없이 달콤한 동료들의 응원들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며 일어났던 내면의 '용서' 말이다.


12단계의 치료 과정을 밟아 나가는 동안 숨김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했던 모임의 리더 '도니'는 구스 반 산트 감독처럼 게이였다. 그 모임에는 존과 같은 다수의 알코올 중독자와 분노 조절 장애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들은 절제함이 없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을 때마다 고백하며 되새기는 세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 스스로가 중독자임을 인정하는 것, 어떤 절대자의 도움이 없이는 완전히 극복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신적 대상에게 그들이 가진 문제를 전적으로 내어 맡긴다는 생각만으로도 이미 기분이 훨씬 나아지지 않았냐는 서로를 향한 질문이다.


중요한 점은 열 두 개의 단계 중 타인을 용서하는 것 보다도 더 마지막에, '나 자신'을 용서하는 과제가 놓여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각자가 원하는 존재를 신적 대상으로 놓고 길을 걸었기에 육체는 한 곳에 모여있었지만 진실로 그들의 영혼은 각기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존이 누구보다 의지하고 편견 없이 모든 것을 오픈했던 게이 리더 '도니'는 결국 에이즈에 걸려 죽는다.


상처 있는 자들의 모임이었고 모두 '극복'이라는 한 목표를 향해 걸었지만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미완성'의 극복이기에 안타깝다. 이것은 내 입장에서나 그저 '안타까움'이지, 그들에게는 평생을 건 '실패'다.


그들 모두가 인정했던 마지막- 결국 가장 아팠던 삶의 그 순간에, 다가올 미래를 좀 더 행복하고 좀 더 사람답게 기대할 수 있었음에도 방치와 방관으로 내버려 두었던 나. 누구보다 가까이에 있었던 자신을 용서하는 일. 사실 이 모든 '비극'이 우리에게 일어난 큰 사건 사고가 아닌 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인정, 그리고 용서.



자신이 의지했던 술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존 캘러핸


영화에서 존은 '하나님'을 여러 번 언급한다. 감독이 조명하지 않았기에 존이 살아생전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졌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그나마 부자연스럽게라도 움직일 수 있는 두 손을 이용해 만화가로 활동하며 자신의 삶을 강연과 책으로 많은 이들을 동기 부여하는 일에 아끼지 않았던 용기 있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나아가 영혼의 안식까지 얻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자기 용서'가 필수인 이 시대에 그저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을 언급하고 소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무례함이 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매우 당황스럽고, 근본적으로 나와 길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향해 또 그들이 가진 아픔에 대해 어떻게 공감의 발을 디뎌나가야 할지 조심스럽다.


심플한 답을 놔두고 복잡한 본성을 따라 끝없는 길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완전하게, 영혼의 안식까지 누리는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이런 작품을 통해서나마 세상을 더 이해하고 더 나은 세상이 되도록 공헌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https://youtu.be/ZKcYirDge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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