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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herine Aug 18. 2020

광야에서 지킨 유월절

민 9:1-14 한홍 목사님

인생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돈이 우선인 사람, 자녀가 먼저인 사람 등 다양한 우선순위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이들 모두 아무리 바빠도 우선순위에 딱 걸리면 다른 일 다 제쳐두고 그 일을 먼저 해결하려고 하는 걸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있어서 최고로 우선되어야 할 것은 예배이다.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다. 우린 매 순간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지만 깊이 집중하여 세상과 나는 간데없고 오직 구속한 주만 보이는 그런 예배의 시간이 우리를 살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다. 


참으로 예수를 구주로 모시는 크리스천이라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예배를 최우선에 둘 것이다. 그 시간을 위해서는 어떤 대가라도 지불할 것이다. 살아있는 예배만이 모든 기적과 능력과 축복의 첩경임을 우리는 체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없으며 이것은 하나님이 그분의 자녀들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정이 아무리 바빠도 예배를 대충 해치워버리기를 절대 원하시지 않는다. 


오늘 본문에 고고하게 흐르고 있는 주제가 바로 이 예배이다. 


민9:1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첫째 달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유월절을 그 정한 기일에 지키게 하라

3 그 정한 기일 곧 이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너희는 그것을 지키되 그 모든 율례와 그 모든 규례대로 지킬지니라


이 말씀은 성막 공사가 완공된 직후에 유월절 예배를 지키라고 하신 것으로 민수기 1장과 2장의 인구조사보다 훨씬 먼저 이루어진 사건이다. 이제 시내산을 떠나서 본격적인 광야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유월절 예배를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문설주에 바른 어린양의 피가 심판의 천사들로부터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살려냈고,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탈출토록 해주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유월절 사건은 단 한번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그 사건이 가지는 파급효과는 거대하다. 그것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했다. 광야 생활을 시작하기 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억시킨 것은 이 예배 생활을 중요시 여기라는 정신이었다. 어린양의 피가 흘려진 유월절 예배야 말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월절 예배를 지킨다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말한다. 거기에 인생의 최우선 순위를 두겠다는 것이다. 결단인 것이다.


유월절 예배는 광야 여정을 시작하기 전 주신 선물이다. 광야 생활을 이겨낼 힘을 예배를 통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예배를 통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온전하여지고 하나님 중심으로 정리가 되고 확고해진 뒤에야 우리는 광야의 혹독한 아픔을 이겨낼 수 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이 예배를 주도하셔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맞추는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성도들의 필요를 염두에 두어야 하겠지만, 결코 성도들에게 맞춰져 있어서는 안 된다. 예배는 Worship이지 Service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예배의 초점은 하나님이신 것이다. 따라서 예배는 성령님께서 이끌어 가셔야 한다. 예배를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은 기도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예배의 포커스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맞춰놓아야 한다. 인기 있는 설교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기름 부으심이 가득한 설교자가 되는 것이다. 성가대도 마찬가지다.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뿐만이 아니다. 살아가며 하게 되는 모든 행동과 말들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고려하고 행해져야 한다. 


3절에 보면 유월절 예배를 해질 때 드리라고 나와있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항상 해질 때부터 시작된다. 왜냐하면 출애굽의 그 시간이 밤이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린양의 피로 심판의 천사로부터 살아나고 애굽을 도망 나오던 일들이 해지고 난 밤에 이루어졌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죽음에서 살아난 때이자, 은혜의 때이고 죽음에서 탈출한 밤이었다. 예배에는 그 메시지가 다 녹아있는 것이다. 


5 그들이 첫째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되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다 따라 행하였더라


아무리 힘든 광야여도 유월절 예배를 드리라고 명령하셨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양 삼만 마리 정도를 잡으며 예배를 드린다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키라고 확실하게 명령하셨다. 환경이 힘들수록 하나님의 법대로 더 정직하게 가야 하는 것이다. 예배는 환경을 초월하는 어떤 감격이 있기 때문이다. 


11 둘째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

12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


쓴 나물을 먹으라는 것은 애굽 생활의 고난을 되새겨 보라는 의미이다. 죄에 빠졌던 나의 옛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를 다시금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양고기를 먹으라는 것은 나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라는 의미이다. 무교병, 즉 누룩이 없는 빵을 먹으라는 것은 세상을 끊어버리라는 말이다. 누룩은 죄악 된 내 옛사람, 세상의 악을 상징했다. 


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누룩 없는 빵은 출애굽 할 당시 너무나 급하게 나가야 했던 나머지 발효되지 않은 빵 그릇을 그대로 들고 나온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들은 누룩 없는 빵을 고난의 빵이라고도 부른다. 우리가 긴박하게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을 탈출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이 유월절 음식들은 아침까지 하나도 남기면 안 되었다. 아침까지 남겼다가 성물이 잘못되거나 더럽혀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이렇듯 은혜를 함부로 낭비하면 안 된다. 받은 은혜를 100% 다 흡수하여 주님 주시는 말씀을 하나라도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뼈를 하나라도 꺽지 말라는 것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한다. 교회를 상징한다. 분열과 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그들은 모든 규례를 지키며 예배드려야 했다. 아주 작은 사소한 말씀에도 영적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6 그때에 사람의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어서 유월절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그 날에 모세와 아론 앞에 이르러


죽음을 죄의 치명적인 결과로 생각했던 그들이었기에 시체를 만진 사람은 칠일 동안 예배에 참여할 수 없었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 죄라는 소리다. 비행기를 탈 때 총을 가지고 탈 수 있는가? 아니다. 금속탐지기에 걸리고 탑승을 거부당한다. 사람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총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총을 놓고 타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찍혀있는 죄를 거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죄를 놓고 들어가야 한다. 회개가 있어야 한다. 신약에서의 유월절은 성만찬이다. 초대교회에는 은혜, 예배를 위해서는 철저한 회개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정신이 있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회개가 없는 축복을 원하는데 어불성설이다. 더럽혀진 그릇에 하나님의 깨끗한 성령을 부어달라고 하는 것은 비논리적인 소리인 것이다.


7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사람의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었거니와 우리를 금지하여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정한 기일에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지 못하게 하심은 어찌함이니이까


그러나 7 절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예배를 앞두고 어쩔 수 없이 친지나 가까운 사람이 죽어 시신을 수습한 사람들이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은 사람들, 하나님의 임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8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기다리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어떻게 명령하시는지 내가 들으리라


이런 케이스는 굉장히 어려운 난제였기 때문에 훌륭한 리더 모세는 기도로 쉼표를 끊어준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듣겠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기도해 보고 말하면 실수가 없다. 기도는 기다림이다. 믿음도 기다림이다.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이 말씀해주실 것이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다.


잠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 시니라


여호와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인 것이다.


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은 기도하는 리더에게 민수기 9장 9절 말씀처럼 꼭 응답해 주실 것이다. 


10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나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다 할지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


첫 번째, 환경에 상관없이 예배는 지켜져야 한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어도 예배는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예배를 이야기할 때 타협은 없다. 특히 요즘은 여행을 가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겼을 때 너무나 쉽게 '하나님도 이해하시겠지'하며 넘어가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안된다. 지역교회를 찾든지, 인터넷 예배를 드리든지, 가장이 그곳에서 가정예배를 인도하든지 어떤 방법이 되었든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시간이 아무리 없어도 밥은 먹지 않는가. 예배는 영적 식사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 동부에 있었을 때의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 미국 동부의 한 교회에서 사역할 때였는데, 그 지역은 눈 폭풍이 몰아칠 때면 허리 높이까지 눈이 쌓이고 영하 15도로 얼어붙어버리는 기간이 있는 곳이었다. 그때만 되면 관공서는 물론 학교까지 모두 문을 닫고 온 지역 자체가 재난을 선포하고 셧다운 상태에 돌입했었다. 따라서 그날도 교회 목사님과 함께 이런 날 성도들이 어떻게 예배에 오겠나 하는 마음으로 새벽기도를 드리러 본당에 갔는데 글쎄 몇몇 한인 분들이 차를 운전할 여건이 안되자 걸어서 그 새벽에 예배를 나왔었다는 것이다. 눈을 하얗게 뒤집어쓰고 앉아 기도하고 계시는 모습들을 보며 큰 감동을 받으셨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암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함께 드리는 예배에 참여했을 때이다. 당시 목사님의 아버지도 암 수술을 받으셔야 했을 때여서 마음이 많이 가난해져 있었는데 그 예배가 큰 감동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예배는 환경이 상관없다. 삶이 어려울수록 드려져야 한다.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은 99% 예배드리러 모였다가 체포당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순교하는 것이다. 예배드리러 모이지만 않았으면 알 수가 없었는데 그 예배 한 번에 목숨을 걸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예배는 귀하다. 그래서 예배는 은혜로 가득 찬 것이다.


11 둘째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


11절의 의미는 한 달이 지난 후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은 자들, 먼 곳에 있는 자들에게도 예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던 것이다. 그렇게 라도 유월절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13 그러나 사람이 정결하기도 하고 여행 중에도 있지 아니하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이런 사람은 그 정한 기일에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지 아니하였은즉 그의 죄를 담당할지며


사람 죽이고 도둑질하는 것만이 죄가 아니다. 예배드릴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되는데 예배드리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끊어버리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교인은 교적부에 등록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배를 예배되게 하는 사람이 교인이다. 예배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교인이다. 13절은 바로 이 귀한 예배를 소홀히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향한 경고의 메시지이다. 결국 메말라 죽는 것은 그의 영혼이기 때문이다. 영이 메마르면 육도 얼마 못가 메마르게 될 것이다. 사람이 가장 배고프로 피곤할 때가 바로 밥 먹어야 할 때이다. 우리가 가장 바쁘고 힘들고 지칠 때가 바로 예배드려야 할 때인 것이다. 


우리의 예배 안에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감동이 일어나야 한다. 첫사랑의 열정이 일어나야 한다. 예배를 통한 회복과 채워짐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 이 유월절 예배의 축복은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모든 열방과 민족을 위한 것이었다. 


14 만일 타국인이 너희 중에 거류하여 여호와 앞에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면 유월절 율례대로 그 규례를 따라서 행할지니 거류민에게나 본토인에게나 그 율례는 동일할 것이니라


하나님은 열방을 가슴에 품고 계셨다. 이스라엘을 통해 유월절 예배의 감격을 모든 민족에게 전하길 원하시는 것이다. 


사 45:22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하나님의 마음은 항상 땅끝을 품고 계셨다. 신분과 지역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이 유월절 예배를 드리길 원하셨다. 예배를 타협해도 될 만큼 높은 사람도 바쁜 사람도 없다. 대통령의 의전 비서관을 했었던 김하중 대사의 간증집을 보면 이런 예화가 있다. 주일날 예배를 드리러 가려는데 대통령 비서실에서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당시 비서실장과 같이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그때의 비서실장도 장로님이셨어서 다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을 때였다고 한다. 장로님은 대통령께 예배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대통령님이 판단하시면 지금 당장 들어가겠다고 전했고, 대통령은 예배를 다 드리고 들어와도 좋다는 답을 주었다고 한다. 다음날 비서실장과 함께 대통령을 만난 김하중 대사에게 대통령은 이와 같이 말문을 열었다고 한다. "내가 정말 미안하다, 큰 결례를 범했다.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크고 위대하신 분을 만나러 가는데 내가 중간에 바쁘다고 두 분을 곤란하게 했다. 다시는 주일날 두 분을 호출하지 않겠다." 세상 그 누구도 하나님과 나와의 예배를, 만남을 방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어떤 바쁜 일도 예배시간을 깰 만큼 바쁜 일은 없다. 없어야 하는 것이다. 


타국인이 지키고 싶어 하면, 지킬 수 있게 하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인 것이다. 신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이 가진 예배를 향한 목마름을 얼마나 칭찬하셨는지 모른다. 그냥 예배가 아니다. 유월절 예배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말하지만, 그 거친 광야 생활이 시작되기 전에 유월절 예배를 확실히 하고 들어가라고 하셨다. 어린양의 피 흘림, 십자가의 은혜가 있는 예배인 것이다. 하나님은 그 힘으로 이 민족이 약속의 땅까지 안전하게 가길 원하셨다. 유월절 예배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있었던 것이다. 죽음의 천사가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일 때 그 칠흑 같은 밤중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들만 무사했었던 것처럼, 어린양의 피가 가진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 어린양의 능력을 누리는 것이 바로 예배에 전심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유월절 예배에는 예수님의 은혜와 보혈의 능력이 흐른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생활 속에서 그들의 신발과 의복이 헤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약속의 땅까지 갔다면 우리 또한 우리가 가야 할 믿음의 여정 가운데 어떤 곳을 지나고 있든 하나님께서 우리로 능히 이기게 하시고 지켜보호 하여 주시는 힘을 우리 또한 동일하게 받게 될 것이다. 


다니엘이 엄청난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동반했던 국무총리의 자리에서 하루 세 번 드렸던 예배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가? 다니엘은 예배의 은혜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루 세 번씩 하늘의 힘과 공급을 받는 사람을, 도대체 누가 당해낼 수 있단 말인가? 광야길을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 예배가 필요했듯이 오늘날 광야 같은 직장에서 생활하는 우리에게도 예배가 필요한 것을 눈앞의 불을 보는 것과 같은 사실인 것이다. 


만약 끊어내지 못하는 죄의 습관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예배를 통해 죄의 사슬이 끊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예수의 보혈로 죄의 사슬을 끊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보혈의 능력이 우리를 지킬 것이다. 예수의 보혈 안에 있을 때만 안전한 것이다. 예수의 보혈 안에 있을 때 마귀는 우리를 넘보지 못한다. 다윗은 장군이자 예배자였다. 그의 전투력은 바로 뜨거운 예배에서 온 것이다. 아무 예배가 아니라 어린양의 보혈을 붙잡는 예배에서 온 것이다. 


예배드리는 자에게 절망은 영원히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https://www.godpeople.com/?GO=tv_detail&tv_mv_no=10527


https://www.youtube.com/watch?v=DZ7EdkLdNu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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