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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갤럭시편지 Aug 20. 2018

새로운 역할, 팀장

위계에 의한 한국조직에서 팀장되기

올해


나는 내가 일하는 비영리 조직에서 새로운 역할로 팀장이 되었다. 6년차 한 조직에서 근속하면서 내부 승진을 한게 뿌듯하기도 하고 한편 마음이 무겁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기뻤다. 하지만 업무, 일 만큼은 자신있다 생각했던 내가 팀장이 되면서 업무와 인간관계에 대한 더 많은 고민과 번민에 휩싸이게 된다. 


생각해보면 이게 다 ‘며느라기’같은 ‘팀장 증후군’의 덫에 걸린게 아닌가 싶다.

아직 모를 수있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면 '며느라기'란 가부장제 한국사회에서 며느리가 되면 시댁 식구들에게 예쁨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그런 시기를 일컫는다. 자발적인 자기 선택이라기보다는 주변에서 기대하는 역할에 갇혀서 나 자신의 욕구나 생각을 직면하지 못하고 주어진 역할대로 움직이는 상태를 말한다.


아직 언 5개월밖에 안되었지만, 나는 팀장이 되고나서 며느라기보다 더 무서운 팀장병에 시달리는 것 같다. 

사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초짜 팀장으로서 ‘잘해야 한다’, ‘관리해야 한다’ ‘지원해야 한다’ ‘더 나은 생각을 제시해야한다’와 같은 업무 능력에 대한 압박을 넘어서 한국의 특이한 직장문화에 대한 고민과 번뇌로 이어진다.




변화된 것을 정리해보고 싶다


# 고민과 번뇌 1 :  칼퇴가 어렵다! 

주어진 일과 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업무를 잘 수행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내가, 자꾸 업무의 끄트머리를 부여 잡고 집에 가지 못한다. 이전에는 오늘 할 일과 내일 할 일의 경계가 분명했는데, 그 경계선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업무의 마무리를 고민의 물음표(?)로 남긴다. 확실히 예전에는 내가 해야 하는 일만 고민하면 됐는데 이제는 팀 업무 전체를 고민하고 배분해야 하니 업무 영역이 넓어져 물음표들이 많아지는 것으로 추측된다. 


# 고민과 번뇌 2 :  칼퇴를 하지 않는다? 

바쁜 시기에는 야근하고, 안 바쁜시기에는 칼퇴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내가. 팀장이 되고 나서 뭔지 모를 마음의 짐으로 칼퇴를 하지 못한다. 한국사회의 정말정말 긴 노동시간, 주 5일 8시간 +a 야근 일변도의 풍토는 업무에 집중하는 실제 시간과 비교할 때 너무 길게 책정되어 있다고 핏대를 높였던 나인데.

자꾸 집에 안가고 사무실 책상에서 업무에 미련을 판다. 여기까지면 괴로울 일이 없는데, 내가 미련 파고 있는데 동료들이 하나둘 가버리면 왠지 그 발걸음이 아쉽기까지 한 이~상한 서움함을 갖는다...후지게도.


# 고민과 번뇌 3 :  내가 제일 힘들게 일한다고 생각한다. 

평소 팀장의 역할은 해당 팀의 일을 전체적으로 기획 총괄하고 적재적소에 일을 배분하고 함께 논의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그러한 업무들을 잘하는 것이 팀장 일을 잘 하는 것이 생각한다 지금도. 

그렇다면 지금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회의, 기획, 역할분담, 세부 사업 코멘트 등 업무를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고 그 과정이 즐거워야 할 텐데. 괜히 혼자 우리 조직에서 제일 힘들게 일한다고 생각하고 가끔 억울해 한다.


# 고민과 번뇌 4 :  나이에 예민해진다.

연초 우리 팀을 구성하며 팀원 구성에 대한 논의를 하는데, 이후 함께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데 “팀장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가능한가?”가 논의과정의 화두에 올랐다. 그전에 난 동료를 바라보는 기준에서 '나이'가 그렇게 중요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비교적 나이가 어린 내가 팀장이 되면서 나의 나이는 화두가 되었다. 그때 난 그 과정의 많은 '불편함'을 느꼈는데, 정확하게 무엇에 대한 불편함이었을까? 아직도 정리되지 않는 불쾌감이 든다.  


# 고민과 번뇌 5 :  호칭에 예민해진다.

내 일터에서 일종의 서로에 대한 '호칭 원칙'은 평직원들은 '선생님'으로 상사들은 그 직책에 따라 '팀장님' '국장님' 등 으로 호명한다. 그런데 나는 승진을 하고 나서도 정확하게 '팀장' 호칭으로 불리지 못했다. 물론 나의 일터는 비영리 조직으로 상대적으로 민간 기업에 비해서 나이나 호칭 그리고 상하체계에서도 유연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하지만 내가 호칭에 예민해졌던 건 오로지 나만이 조직의 호칭 원칙에서 '예외적'이라는 점이다. 한 친구는 '호칭으로 인정 받으려고 하지말고, 실력으로 보여줘'라는 말로 나의 자존심에 엄청난 스크래치를 냈지만. 내가 집착하는 건 나를 향한 '팀장' 소리가 아니라, 왜 나만 팀장으로 자연스럽게 불리지 못하는 가? 하는 점이었다. 

초반 나의 쫀쫀함을 내심 반성하며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겠지 했던 나 자신을 콩 하고 한대 쥐어 박았다. 왜 50-60대 상사들에게는 자연스러웠던 '팀장'이라는 호칭이 나에게는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했을까? 


'왜, 내가 나이가 어려서?'

그렇다면 조직 안에서 팀장/ 부장/ 과장으로 불리는 '상사'란 무엇일까? 어떤 역할과 내용을 기대 받는가?


아노미


'뭐 그런걸 가지고 그렇게 꼭 집어 지적하냐' '더 안 좋은 직장도 많다.' '회사 밖에 나가봐라' 등 남의 직장생활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한마디씩 하는 고립적인 사상들은 일단 배척하겠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이라는 이른바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의 노동관은 수백도 더 바뀌었고, 번민은 깊어만 갔다. 그러나 나는 나를 둘러싼 고민과 번뇌들이 나의 예민함이나 단순한 직장생활의 고유한 특성이 아님을 확신한다. 이제 새로운 환경 속에서 또 다른 고민들을 시작한다고 생각해보자.


내가 받아들인 고민과 번뇌에는 사회적으로 '팀장'에게 요구되는 강요들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 문제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보았다. <# 문제1: 가부장제를 기초한 조직문화>, <# 문제2: 장시간 노동을 권하는 '죽은 노동의 사회'>, <# 문제3 : 번민하는 우리>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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