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에 있는 기회를 따라가기
다양한 회사에 지원하고 면접을 보면서 느낀다. 결국 나를 알아주고 선택한 회사 중에서만 선택할 수 있다는 걸. 회사에서 내 경력이 필요 없으면 내가 아무리 그 회사와 직무를 분석한들 소용이 없다. 오히려 지원한 직무와 전혀 상관 없는, 런던 여행 다녀와서 글로벌한 일을 해 보겠다고 도전했던 자격증 하나가 면접관 분에게 큰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첫 회사에 합격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산운용사에서 인턴을 하고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꿈꿨지만 은행이 날 받아줬다. 첫 해부터 3년차 까지 동기들이 전문직, 교직원, 공공기관 등으로 갈 때 난 퇴사가 옵션이 아니었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이직이 너무 하고 싶어져서 1금융권과 2금융권을, 그리고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모두 경험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애널리스트 준비하면서 길렀던 조사 분석과 정리 스킬은 사업기획을 할 때도 쓰인다. 은행에서 고객 VOC를 해결하던 문제해결 스킬은 프로덕트의 오류를 개선할 때에도 쓰인다.
생각지도 못한 분야의 사업을 하는 회사에서 제안을 받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확고해진다. 나에게 온 기회, 즉 서류합격과 면접의 기회는 결국 내가 해온 일과 내가 어떤 사람인지와 그에 대한 기업의 필요에 달려 있는 것이지 잠깐의 면접 준비에 달려있지 않다는 생각. 대부분의 면접관 분들은 내가 지점에서 일을 할 때는 어떤 관점에서 일을 했고 어떤 계기로 본사에 가계 되었는지, 그리고 이직은 왜 하게 되었는지, 이직 후에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등등 내가 처했던 상황과 나만의 대처 방법에 관심이 있었다.
등산에 비유하자면 눈 앞에 당장 발 디딜 공간을 찾아야지 정상만 처다보면 도착할 수 없다. 당장 눈 앞에 있는 게 돌인지, 흙길인지, 계단인지에 따라 발걸음과 속도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각도를 재 가면서 북동쪽으로 45도에 맞추어 일직선으로 갈 수가 없다. 지그재그 눈앞에 닥친 한 블록씩 해결하다 보면 정상에 도착하고 내가 걸어온 길은 발자국으로 남는다.
어떤 일을 하느냐도 이젠 내가 온전히 결정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산 중턱까지 올라왔다는 건, 이제 다시 내려가서 다른 산을 타기보다 마저 올라가서 정상을 찍는 게 더 낫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산 중턱까진 아니더라도 삼분의 일 지점까지는 온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더더욱 눈 앞에 있는 길을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가려고 한다. 다만 내가 걸어온 길이 어떤 길이었는지 잘 정리하고, 어떤 순간이 가장 행복했는지 기록하고, 다음에 또 다른 산을 탄다면 어느 정도의 높이의 산을 탈지 어느 계절에 갈지 생각하고,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좀 더 잘 탈 수 있을지 고민하려고 한다.
그렇게 회사에서 날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혹은 내가 경제적으로 더 이상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될 때까지 일을 하다 보면 창업이나 프리랜서, 혹은 취미생활로 여생을 보낼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보일 거다. 그래서 이제는 장기 계획을 하지 않고 그 순간 가장 좋은 선택을 하려고 한다. 어찌 보면 인생은 선택의 폭을 줄여 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100개의 위시리스트를 만들지만, 그 중에서 이룰 수 있는 10개가 무엇인지 찾아 나가는 여정인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