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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obanker Oct 26. 2022

바깥은 여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 

좋은 독서모임을 알게 되어 오랜만에 타인과 순수한 감정과 기억들을 즐겁게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혼자 읽고 끝났다면 이건 왜 이랬을까, 이해가 안 되네 - 하고 말았을 소소한 구절들 까지도 되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람마다 시기나 깊이는 다 다르겠지만 살아가는 게 점점 무겁고 구렁텅이처럼 느껴지는 걸 어찌해야 할 지 막막할 때가 종종 있다.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르신들이 젊을 때 많이 쏘다니고 맛난 것 먹으라고 틀니를 드러내며 웃으시던 모습에서 크게 와닿지 않았었는데, 한 살 한 살 먹을 수록 즐거울 일보다 책임질 일만 많아지고 건강은 점점 나빠질 일만 남은 것 같아 막막했었다. 


일곱 개의 단편 속에는 누구나 두렵고 피하고 싶은 자식의 죽음, 부모님의 죽음, 키우던 개의 죽음, 시험 탈락, 이별, 언어의 상실, 도리의 상실, 이혼과 자녀의 비행, 남편의 죽음처럼 무거운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처음엔 주인공들이 뭔가 희망차고 악착같이 열심히 사는 캐릭터가 아니라서 좀 힘이 빠졌었다. 그러다가 죽은 아이의 보험금을 결국 타서 대출을 갚는 리얼함에 묘하게 미소가 지어지는 내 자신이 당황스러웠는데 다들 이야기에서 오히려 희망을 느꼈다고 하는 거였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집에 오는 길에 다시 생각해 봤다. 


제목처럼 바깥이 여름이지 지금 내가 있는 곳은 겨울이라서 그런 것 같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의 그 닭살 돋는 느낌을 난 정말 싫어한다. 집에 있으면 추워서 옷을 겹겹이 입고 난방을 틀고서도 이불로 꽁꽁 싸맨다. 하지만 겨울이 깊어질 수록 패딩에도 추운 날씨에도 익숙해지곤 한다. 그렇게 제일 따뜻한 패딩 하나에 의지해서 바쁘게 또 살다 보면 금방 봄이 오는 것처럼, 책의 주인공들은 '겨울을 살아낸다'. 


그냥, 별로 재밌지 않아도, 기쁘지 않아도 꾸역꾸역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는 거다. 그러다 보면 아이가 없는 자리에 남편의 존재가 훨씬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하고, 찬성이가 에반을 위해 전단지를 돌린 것처럼 나보다 나약한 존재를 돌보기 위해서 잠시 힘을 내기도 하고... 무언가를 잃었을 때의 그 허전함, 상실감, 좌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거다. 무조건 겪지 않은 삶이 더 좋은 삶이라고 하기에 한 방향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는데 그걸 잘 그려낸 것 같다. 


무언가를 '안고'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없다. 설령 그게 턱 밑에 난 작은 사마귀어도 누군가에겐 가장 큰 고민이고 절망인 거지. 그러니 나보다 '나아 보인다고 해서' 남이 더 행복하다고 저울처럼 잴 수는 없다. 복잡계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를 밝혀내기도 어렵다. 모든 것이 공식대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살아보기 전엔 모르기 때문에, 살아볼 만한 인생이다. 


주변에 어떤 일로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열심히 살면 좋아질 거야' '그래도 나보단 낫네' 처럼 뻔한 위로 보다는 이 책을 슬쩍 건네주고 싶다.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추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냥 온전히 살아내는 것만으로 기특하다고. 추운 겨울일 수록 밖에 나가서 코와 귀 빨개지며 스키 타라고. 기다리지 않아도 어느새 봄이 여름이 스며들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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