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라이 Sep 07. 2018

'명품'을 사서 내가 근사해지는 것이 아니라면...

짝퉁을 들면 형편없어질까?

결혼을 앞두고 이직을 했다.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금이 나왔는데 그 돈을 오로지 '나만을 위해' 쓰고 싶었다. 무엇을 살까 고민하다가 '아주 좋은 코트'를 사기로 했다. 때는 겨울 초입이었고 나는 추위를 심하게 타는 타입이었다(지금도 그렇다).


나는 늘 최종 세일을 뒤지면서 그나마 그럴듯하고 가격은 싼 코트를 골라야 하는 처지였다. 내가 추위를 심하게 타는 이유가 '비싼 코트'가 없어서인 줄 알았다. 나에게는 '비싼 코트 = 좋은 코트'라는 인식이 있었다. 한 번도 비싼 코트를 입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옷을 입으면 추위를 안 타게 될 줄 알았다.


그래서 두둑해진 현금 카드를 들고 명동의 한 백화점 맨 위층 명품관으로 갔다. 비싼 겨울옷의 대명사는 모피다. 광고에서 본 모피 코트를 입은 모델은 미니스커트를 입어도 따뜻해 보였다. 모피를 입으면 안에 옷을 어떻게 입어도 따뜻하고 포근할 거라고 생각했다.



100만 원이 조금 넘는 거금(당시로서는)을 내고 할인도 없이 밍크코트를 샀다. 나름 실용성을 생각해서 모피가 안쪽에 들어있는 종류를 골랐다(그런 게 더 싸기도 했고). 그런데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모피코트 광고가 '사기'임을 알게 되었다!

모피 코트는 단추가 듬성 듬성 달려 있다. 비싼 모피에 구멍을 많이 뚫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 듬성한 단추 사이로 찬 바람이 새어들었다. 결국 한기를 막으려면 안에도 옷을 따뜻하게 껴입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렇게 중무장하고 모피까지 입으면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너무 덥다는 사실이었다.

몸통이 따뜻하다고 해서 모피의 은혜가 닿지 않는 다른 곳까지 따뜻해지지는 않았다. 결국 따뜻한 바지, 신발, 장갑까지 다 필요했다. 모피를 사기 전과 별로 차이가 없었다.

얇은 스타킹 차림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모피를 걸친 그 여성은 결국 광고 속 모델에 불과했다!


차를 운전하고 가끔만 밖에 나오는, 잠깐의 바람을 견디면서 최대한 맵시 있고 부유하게 보여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모피코트가 존재하는 것이다. 


나처럼 지하철 타고 먼 거리를 출근하는 직장 여성에게 모피 코트는 전혀 적합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따뜻한 코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털코트를 하나 더 샀다. 그전에 실패한 이유가 '밍크'였기 때문이라는 바보 같은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나름 사전 조사를 하고 명품관이 아니라 직장 여성들의 선호도 1위인 실용적인 브랜드 매장을 찾아갔다. 직원들은 따뜻하고 실용적이라는 토끼털 코트를 권했고 이번에는 성공할 줄 알았다. 게다가 이번 코트는 듬성듬성한 단추가 아니라 지퍼로 꽉 여미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결국 마찬가지였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토끼털 코트는 너무 무거웠고 거추장스러웠다. 100만 원이라는 돈만 허공으로 사라졌다. 첫 털코트를 산 이후 5년쯤 시간이 흘렀으니 100만 원이 과거의 100만 원이 아니라는 데서 위안을 찾아야 했다.

러시아에서 입는 발목까지 오는 털코트라면 모를까 '맵시 있는 털코트는 추위를 잘 타지 않는 사람을 위한 옷'이라는 이상한 결론을 내리고 털코트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렸다(다행히 구스 패딩이 나오면서 따뜻한 코트에 대한 욕구가 채워졌다).

두 벌의 털코트는 지금도 내 옷장 안에 있다. 그냥 '언젠가는 입겠지.. 명품은 시대를 초월한다잖아', '할머니가 돼서 입지 뭐. 아니면 딸내미 물려주거나'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옷장 정리를 할 때마다 털코트를 남겨놓는다. 


솔직히 말하면, 돈이 너무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고 남 주지도 못한다.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돼 버린 비싼 털코트 두 벌.



그 이후 나는 자본주의의 상술에 잘 속지 않는다. 자본의 술수를 간파해버린 것이다.


근사한 차, 근사한 가구, 근사한 그릇을 산다고 내가 근사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것이 다 초라한데 차만 좋다고 타는 사람이 멋져 보이지는 않는다.

'후진' 집에 가구만 근사하다고 '러블리' 홈이 되지 않는다. 집이 지저분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가구를 돋보이게 하려고 매일 쓸고 닦는데 시간을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필요할 때, 부담 없는 선에서 내 요구에 맞는 물건을 사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뼈아픈 실수를 두 번 하고 얻은 교훈이다.

지금 나는 짝퉁의 천국이라는 중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명품 가방뿐 아니라 '짝퉁'에 대한 내 편견, 이상한 고집도 극복해보려고 한다. 한 번 짝퉁 가방을 사서 신나게 들고 다녀 볼 생각이다.


'명품'을 사서 내가 근사해지는 것이 아니라면 '짝퉁'을 든다고 형편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진통, 짝퉁에 대한 구분 짓기, 죽어도 짝퉁은 들지 않겠다는 고집, 명품 가방을 들면 속물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 이 모든 것들이 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결과다. 이번 기회에 부담 없는 짝퉁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면서 타인의 시선이라는 벽을 한 번 더 넘어보고 싶다.

아! 물론 누가 물어보면 짝퉁이라고 솔직히 밝힐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아직 넘지 못한 벽, 명품 가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