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라이 Sep 06. 2018

내가 아직 넘지 못한 벽, 명품 가방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나는 남의 눈치를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오랜 연습으로 그렇게 됐다. 


'내가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고 있나?'라는 의심이 들면 그 의심의 대상이 되는 일을 그냥 해버린다.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는 내가 싫어서다. 


아직 넘지 못한 벽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명품 가방'이다.


나에게는 비싼 가방이 없다.


일단 가방이 많아지는 게 귀찮다. 


옷장에는 가방이 5개 정도 있지만 들고 다니는 가방은 2개다. 여름용과 가을/겨울용. 가방을 여러 개 들고 다니면 그때마다 매일 가지고 다니는 물건들을 바꿔 넣어야 한다.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다. 가방을 바꿔 들고 나가다가 중요한 물건을 빼놓고 나가는 일이 몇 번 일어나면서 요즈음은 계절별로 딱 하나만 들고 다닌다. 


두 번째로는 물건보다 돈이 더 좋기 때문이다. 


나는 돈이 좋아서 물건을 잘 사지 않는다. 물건을 사면 '돈'이 없어져버린다. 꼭 필요한 물건이라면 '이건 있어야 해'라며 스스로를 설득하지만 명품 가방 같은 건 그 범주에 들지 못한다.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통장에 찍혀 있는 '사이버머니'일지라도 나는 돈이 더 좋다.


세 번째 이유는 내가 상당히 합리적인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가성비, 합리성 같은 명제들이 뇌에 너무 깊이 박혀 있다. 예쁜 것을 갖고 싶고 새로운 것을 찾는 욕구와 이 논리적인 이유들이 싸움을 벌일 때면 승자는 항상 후자다.


비싼 명품 가방도 사기 싫지만 짝퉁은 절대 사지 않는다. '돈은 없지만 명품은 갖고 싶은 속물적인 타협'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좋은 가방을 사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절충해서 국내 브랜드 중에서 고른다.   



그런데 40대에 들어서면서 변수가 하나 생겼다.


중년 여성들이 명품백을 선호하는 이유를 점점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일단 나이가 들면 외모의 빛이 사라지면서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태가 나지 않는다. 


몸매가 두루뭉술해지면서 실루엣이 살지 않는다. 중년 여성들이 라인을 감추는 원피스를 입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옷은 단순하게 입고 대신 가방에 힘을 준다. 


옷에 투자해도 별로 티가 나지 않으니 사람과는 독립되는 '가방'에 대신 투자하는 것이다. 


게다가 비싼 가방을 들면 굳이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나 어떤 곳에 살고 경제력은 어느 정도고...."이런 말을 애써 에둘러서 할 필요가 없다. 가방이 곧 경제력을 드러낸다. 적어도 '대충 입고 나왔지만 돈이 없지는 않다'는 구차한 해명을 할 필요가 없다. 


가끔 '좋은, 아니 비싼 가방을 살까'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든다. 그런데 그때마다 나를 말리는 기억이 하나 있다.


결혼을 앞두고 이직을 했다.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금이 나왔는데 그 돈을 오로지 '나만을 위해' 쓰고 싶었다. 무엇을 살까 고민하다가 '아주 좋은 코트'를 사기로 했다. 


때는 겨울 초입이었고 나는 추위를 심하게 타는 타입이었다(지금도 그렇다). 당시의 나는 늘 최종 세일을 뒤지면서 그나마 그럴듯하고 가격은 싼 코트를 골라야 하는 처지였다. 


겨울마다 늘 추워서 동동거리는 이유가 '비싼 코트'가 없어서인 줄 알았다. 나에게는 '비싼 코트 = 좋은 코트'라는 인식이 있었다. 한 번도 비싼 코트를 입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옷을 입으면 추위를 안 타게 될 줄 알았다.


<계속 이어서 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관계의 시작은 편 가르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