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에서 나의 '위치성’

현대 나이는 아직도 30대 VS 인생의 가을

by 줄라이
호모헌드레드. 현대인의 나이에 0.7을 곱해야 100세 시대를 살아갈 실제 나이가 된다

인생이 직선이 아니라 끊어지지 않는 거대한 원의 흐름 속에 있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청년기를 끝으로 모든 인생의 영광이 사라지고 이제부터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협한 생각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현대적 의미에서 볼 때, 나는 진짜 중년인가?


인생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이 있고 이 사이클에 맞춰 살아야 각 시기에 필요한 경험과 성숙을 얻을 수 있고 그래야 존재의 충만함을 느끼고 노년기에 접어들어도 유한한 삶에 안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고미숙 씨 의견에는 100% 공감한다. 하지만 진짜 언제부터가 중년의 시작인가.


예전에는 60세(환갑)를 인생의 주기로 보았다. 15세에 어른이 되어 그걸로 인생의 봄을 마치고 그다음 30세까지가 여름, 45세까지가 가을, 그다음 60세까지 겨울을 사는 것이다(나이 듦 수업 P20). 그때는 서른이 넘으면 청년도 아니고 엄연한 중년이었다. 2019년 현재 대한민국의 평균수명은 남성 80세, 여성 85세로 평균 83세다. 인생을 80세로 본다면 중년기는 40세부터 60세까지인 것이다.


하지만 노년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제는 ‘80세 인생’이 아니라 ‘100세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UN은 이미 2009년에 ‘100세 시대’, 즉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포했다고 한다(나이 듦 수업, P170). 노년층 지가인 남경아 씨는 현대인의 나이에 0.7을 곱해야 100세 시대를 살아갈 우리들의 실제 나이가 된다고 말한다. 현재 70대인 사람은 과거의 50대와 같은 삶을 살고 있고, 현재 50대인 사람은 과거 30대 중반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100세인의 시대에는 ‘50+’, 대략 50대에서 60세 언저리의 사람들을 위한 별도의 명명이 필요하며 이를 ‘세 번째 무대’, ‘세 번째 인생’, ‘제2 성인기’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5060 시기는 인생 후반부를 위한 과도기이자 탐색기이며 이 전환기에 탐색을 얼마나 잘했느냐가 남은 40~50년의 인생의 질을 결정한다고 이야기한다.



'40대 후반~50대’는 마음먹기에 따라 청년도 중년도 될 수 있는 나이


50세에 0.7을 곱하면 35세다. 50세라고 하면 통념이나 어감 상으로 꽤 많은 것 같지만 100세 시대에는 35세 정도의 위치라는 것이다. 35세! 얼마나 멋진가? 갑자기 신이 나고 10년은 젊어진 것 같다. 간단한 생각의 전환만으로도 청년으로 돌아간 것 같으니 40대 후반~50대는 사실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특히 50대는 청년기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고 본인의 가치관이나 생활 방식도 중년기보다는 청년기에 더 기울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나이 대를 어떻게 ‘프레이밍’하느냐에 따라 인생에서의 위치성이 달라질 수 있는 나이인 것 같다. 사실 현대인들의 건강 상태가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아졌고 젊어 보이게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10년 정도는 더 젊어지는 것도, 반대로 나이 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35세’라는 숫자를 듣는 순간, 잠시나마 해방감과 안도감을 느꼈다. ‘아, 아직 늦지 않았구나. 나는 아직 젊구나’. 하지만 잠시 후 냉정을 찾고 보니 과거 60세 인생에서 35세는 엄연한 중년이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결국 숫자 놀음에 불과한 것인가.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만들어낸 말장난이었던 건가. 나는 결국 빼도 박도 못하는 중년인 것인가. 어떻게든, 어떤 작은 구실이라도 찾아서 ‘젊은 층’에 끼고 싶은 얄팍한 마음이 들통난 것 같아 조금 겸연쩍어졌다.


나는 어떤 위치성을 선택할 것인가?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상이 나에게 어떤 꼬리표를 붙이느냐가 아니다. 특히 50대는 중년의 초입이기 때문에 본인이 아직도 청년이라고 생각하고 살면 청년이 되고, 중년으로 생각하면 중년으로 살 수 있는 시기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고 싶은가’가 관건이다. 결국 질문은 ‘나는 어떤 위치성을 선택하느냐’로 귀결된다.


40대 후반~50대가 이렇게 애매한 시기이기 때문에 이 시기에 ‘인생을 바꿔라’, ‘아직 늦지 않았다’, ‘인생개조는 여전히 가능하다’ 등의 자기 계발서가 나오는 것 같다. 그것은 역시 개인이 청년기를 얼마나 충만하게 보냈는지, 젊음에 얼마나 미련이 남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정말로 이대로 끝낼 수 없고 가장 중요한 일을 아직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원대한 일에 도전할 수도 있는 나이다. 비록 실현 가능성은 낮을지라도.


나는 어떤 위치성을 선택할 것인가? 직업적으로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난 20년 간 한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헉헉대면서 나름 열심히 해 왔다. 지금 남들, 아니 나 자신에게 보여주고 증명해야 할 일이 남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신에 대한 주관과 기대를 버리고 제삼자의 시선으로 본다면 충분히 인간적인 연민과 존중을 보낼 만큼, 소박하지만 땀이 묻어 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10년 전, 20년 전에 비해 인격적으로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나는 이제 또 한 번의 여름을 맞기보다는 서서히 가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접어든 것 같다. 지식이 늘어났음에도 인간이 아직도 본능(유전자)에 얽매어 있듯이, 의술의 발전으로 젊게 살면서도 40세 중반 이후에 '신체노화'와 감정의 변화를 맞이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직은 유전자 자체를 개조할 만큼 인간 문명이 발달하지는 못한 것이다.


이제 내가 '인생의 가을'로 접어들고 있음을 인정하려고 한다. 아마도 70~80세부터는 '겨울'의 마음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가을임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이제 다 끝났고 내리막길만 남았다’는 패배감은 아니다. 나는 다가올 중년기에도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를 뿐이지, 인생은 그 나이 대에 맞는 선물을 준비해 놓고 있을 것이다.


50대의 삶이 20대, 30대의 삶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50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것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다를 뿐이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을 맞이할 것이다. 또 누가 아는가. ‘50세가 되니 이런 즐거움이 또 있네’라고 말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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