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영화를 한편 보았다. 블라인디드 바이 더 라이트(Blinded by the Light).
최근 비행기를 많이 타게 되면서 기내 영화를 보는 게 일종의 즐거움이 되었다. 처음에는 책을 가지고 갔는데 이상하게 기내에서는 책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기내 영화를 한편씩 보기 시작했는데 마치 중고시장에서 나름 괜찮은 물건을 찾아내는 것 같은 소소한 기쁨이 있다. 작년 가을에 한국에 갔을 때는 '예스터데이'를 보았고 폭풍 눈물을 흘렸다. 옆 승객들이 이상하게 쳐다볼까봐 휴지로 눈을 꾹꾹 누르면서.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볼만한 영화가 눈에 띄지 않았다. 어쩌면 아는 영화가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하긴 영화 프로그램도 보지 않고 영화관에도 간지 오래되었으니 모를 만도 하다. 그래서 영화 설명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그러다 눈에 띄게 된 이 영화.
<블라인디드 바이 더 라이트>
1987년 영국을 배경으로 파키스탄계 이민자 소년이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음악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가족을 이해하고, 삶에 적응해가며 성장하는 이야기.
<출처: 네이버영화>
뭔가 끌렸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항상 소년 소녀들의 성장 스토리에 관심이 간다. 예전에는 여자 아이들이 나온 영화만 보았지만 아들을 키우게 되면서 남자 아이들의 성장 스토리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아마도 영화를 통해 미리 아들의 청소년기에 좀 더 대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경기침체, 대처리즘, 민영화가 영국을 강타했던 80년대 중반, 자비드는 동네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파키스탄 이민자에 대한 차별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이민자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나도 먹고 살기 힘든데 이민자들이 내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동네 물을 흐리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아버지는 가부장적이다. 돈을 벌어오는 가장이니 무조건 아버지 말에 순종해야 하고 또래 아이들이 열광하는 여자친구나 파티도 자비드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아들을 택시기사나 공장 근로자로 만들지 않는 것이 아버지의 꿈이다.
자비드에게는 아버지가 정해놓은 미래가 보인다. 착실히 공부해서 돈 잘 벌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집에서 정해주는 여자와 결혼하는 것. 동네에서는 백인 청년들이 수시로 자비드에게 시비를 걸고 모욕을 준다. 심지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도 '파키'라고 부르면서 놀린다. 이 마을을 떠나는 것만이 자비드의 꿈이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어쩌면 계시처럼,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래를 듣게 된다. 번개에 맞은 것처럼 모든 가사들이 자신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 같다. 갈 곳 없고 절망 뿐이지만, 그래도 가슴 속에 살아 있는 터질 것 같은 열망을 대신 노래해주는 것 같다.
자비드는 브루스의 음악을 들으면서 변한다. 목소리를 내게 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게 된다. 전 같으면 학교 신문사에서 거절당하고 돌아섰겠지만 이제는 끝까지 읽어달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비굴하지 않게, 하지만 진심과 열정을 보이면서.
휴지통에 버렸던 시들도 꺼내서 선생님한테 보여주고 관심 있었던 여자아이에게도 용기 있게 다가선다. 거부당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거부로 받아들이지 않는 배짱을 갖게 된 것이다.
영화는 자비드가 아버지와의 갈등 속에서 글쓰기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미국에 가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콘서트를 보고, 졸업식에서 자신이 쓴 글을 읽고,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진학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물론 그 사이에 우여곡절은 있다. 처음에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음악을 듣고 그의 노래 가사처럼 '꿈꾸는 대로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하지만 점점 알게 된다. 자신이 노력해도 바뀔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거침 없는 자유'가 아니라 '가족의 이해를 받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어찌 보면 전형적이면서도 뻔한 결말 같지만 그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고, 공감이 가도록 연출되어 있다. 인도계 감독이 만든 영화므로 어쩔 수 없이 노래와 춤이 들어가 있지만,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래들이기 때문에 가사에 집중하면서 듣는 재미가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영화를 보면서 소년이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도 흥미로웠지만, 그보다는 '80년대 후반'이라는 시대에 향수를 느꼈던 것 같다.
80년대 후반은 어떤 시대였나? 발목이 보이게, 허리선을 배까지 끌어올려서 입는 청바지, 청자켓. 신디 로퍼, 마돈나의 부풀린 파마. 파란 아이섀도. 헤어밴드.
한국과 영국의 상황은 전혀 다를 것이다. 한국은 막 경제성장의 폭주기관차에 올라탄 상황이었고 늘 시위가 끊이지 않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반면에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영광을 뒤로 하고 소위 '영국병'으로 세계의 비웃음을 사고 있었다.
1987년. 나를 포함해 당시 청소년들은 어떤 불만, 어떤 열망을 갖고 있었을까? 그 당시 우리들의 열망을 대신 노래해주었던 가수들이 있었던가?
나는 그 당시에는 음악을 잘 듣지 않아서 모르지만 아마도 또래 친구들은 이문세, 변진섭, 유재하 같은 가수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은 '혼란스럽고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어쨌든 뭐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마음 속 생각이라도 꺼내놓을 수는 있지 않는가. 자비드도 처음엔 누가 읽을까봐 꼭꼭 숨겨놓은 시와 일기에서 시작했다.
마음 속, 머리 속 생각을 꺼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작은 불씨지만 언젠가는 커질 수 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누군가는 들을 수 있다. 그 간절한 열망에 누군가는 공감하고 호응할 지 모른다.
'미국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록커'로 알려진 브루스 스프링스틴도 처음엔 그랬을 것이다. 누군가 들어줄 거라는 확신은 없었을 것이다. 그저 꼭꼭 감춰두었던 마음을 노래로 만들고 목이 터져라 불렀을 것이다. 그것이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그의 메시지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자신감을 얻고 점점 더 과감하게 자신을 표현하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스프링스틴은 운이 좋았을 지도 모른다. 스프링스틴처럼 세상에 메시지를 던졌지만, 묻혀버린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인생에 독이 되었을까? 아무 것도 아닌 헛발질에 불과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블라인디드 바이 더 라이트'의 주인공 자비드처럼, 그 과정에서 그들은 '목소리를 내는 법', '원하는 것을 똑똑히 말하는 법', '세상에 움츠려들지 않는 법'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유명해지지 않았을 뿐, 한 개인으로서 인생을 살아나가는데 있어 꼭 필요한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을 통해 성장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