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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Feb 15. 2020

'동백꽃 필 무렵'과 '또 오해영'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보고 있다. 너무 길어서 조금만 보려고 했는데 보다 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어느새 2/3 지점까지 왔다(완전히 정주행한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 동백(공효진)은 7세때 엄마에게 버림 받고 고아원에서 컸다. 그래서 항상 애정을 갈구하면서도 거절당하는데 두려움을 안고 있다. 항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지 못한다. 버림 받기 전에 먼저 포기하고 떠나버린다.


그런 동백이를 일으켜 세우고 당당하게 만들어준 것이 황용식(강하늘)이다. 용식은 항상 땅만 바라보면서 걷던 그녀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도록 만들었다.


용식이가 그토록 동백에게 헌신적으로 사랑을 퍼부울 수 있는 것은 내면에 사랑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아무 조건 없이 '내 새끼'만 바라보면서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그 자체로 사랑해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용식이는 사회적 기준으로는 별로 내세울 게 없다. 하지만 그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과는 달리, 자신에게 만족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좋아한다. 한 마디로 자존감이 높다. 


그토록 자존감이 높은 그가 자존감이 바닥인 동백이를 사랑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자신에게는 넘치는 자존감이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을 구하는 '라이프재킷'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재킷 덕분에 상대방이 점차 달라지는 것을 보는 것, 그것이 오로지 자기 덕분이라는 걸 느끼는 것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찬 보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누군가가 아무 조건없이 퍼부은 사랑, 오롯이 그 사람 자체를 바라봐준 그 시선은 그런 것들이 결핍된 사람에게 전이된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몇년 전에 본 드라마 '또 오해영'이 생각났다. 


이 드라마에는 두 명의 '오해영'이 나온다. 예쁜 오해영과 안 예쁜 오해영. 예쁜 오해영은 부모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했고 평범한 오해영은 겉보기에는 투박해보여도 자식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외부로부터 딸을 지켜주는 방패가 되어주는 엄마 밑에서 컸다.


예쁜 오해영은 자존감이 다치는 것을 참아내지 못하고 애인을 버려두고 도피했지만, 평범한 오해영에게 자존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거침없이 다가가고 들이댄다. 남에게 번번히 거절당해도 그녀의 근본적인 자존감은 까딱없다. 자신을 진적으로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단 한 사람, 즉 엄마가 뒤에서 태산 같이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오해영의 튼튼한 자존감은 사랑을 두려워하던 남자주인공을 바꿔놓게 된다.


요즘엔 이런 드라마가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그만큼 사람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인정해주는 '단 한 사람'. 어떤 약점을 보여도 자신을 지지해주고 떠나지 않고 품어줄 단 한 사람을 갈구하는 것 같다.  


보통은 부모가 그 역할을 해주어야 하지만, 요즘 부모들은 본인들이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드라마를 보면서 번번히... 부모가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있는 그대로.... 모잘라 보이더라도... 현재 아이의 모습을 인정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바라봐줄 수 있는 부모. 무슨 말을 해도, 아무리 어리석은 짓을 해도, 평가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아이의 기쁨에 공감하고 슬픔에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부모. 


물론 이렇게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는 그 사랑을 부모에게 돌려주지 않는다. 이런 아이일수록 부모에게 얽매이지 않는다. 거침 없이 자신의 인생을 살면서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에게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과 건강한 자존감을 전이시킨다. 


정확한 확률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대상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될 가능성도 꽤 높을 듯하다. 드라마가 조금이라도 현실을 반영한다면.


부모로서는 다소 억울하고 손해보는 기분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어쩌면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사회 공헌이고 세상을 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곧 하나의 세상이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큰 세상을 이루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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