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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Dec 04. 2018

돈이냐, 사랑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15년 전에도,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바로 그 고민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을 보았다. 한참 뒷북이란 거 안다. 2004년에 방송된 드라마인데 시청률이 무려 40대까지 갔었다. 거의 국민 드라마였던 셈인데 어쩐 일인지 초반부만 보고 보지 못했다. 사람들이 기억에 남는 드라마를 이야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작품이어서 궁금했다. 물론 줄거리는 대충 알고 있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그렇게 오래 남아 있는 이유는 알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것을 알려면 직접 봐야 했다. 마침 요즘의 나는 비교적 한가하다.


24편을 정주행 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장면 위주로 집중해서, 틈틈이 봤다.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보고 난 느낌은 '애잔하다'였다.


무려 14년 전의 상황인데,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난한 여자와 남자, 부자 여자와 남자가 나온다. 가난한 남자는 재벌가 딸을 좋아했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헤어진다. 가난한 여자는 부자 남자를 좋아했지만 자신의 감정을 잘 깨닫지 못한다. 뒤늦게서야 사랑했다는 사실을 안다. 부자 남자는 가난한 여자를 미치게 사랑했지만 가진 것을 놓지 못해 그녀와 결혼하지 못한다. 재벌에게 결혼은 가족 비즈니스다. 사랑과 연애는 맘대로 할 수 있어도 결혼은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주인공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들이지만 유독 정재민(조인성)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이미 많은 여자들을 사귀어본 재벌 2세가 가난한 여자를 처음으로 순수하게(그리고 처절하게)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은 명백한 판타지다. 그 판타지가 여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아프게 한다.



하지만 판타지에는 진실이 있다. 돈을 이미 가졌기 때문에 재민에게는 돈이 중요하지 않다. 사람은 이미 가진 것의 소중함을 모른다.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이 '쾌락 적응'이라고 말하는 현상이다.


보통 사람들은 가져 보지 못한 '부'에 대해 평생 동안 환상을 품고 산다. 현대 사회에서 돈은 자유이자 존엄성을 지켜주는 수단이자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정체성이다. 신분 그 자체다. 철학자 쇼펜하우어 말대로 다른 소유물은 상대적이지만 돈은 절대적이다. 돈은 한 가지 욕구만 구체적으로 충족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욕구를 추상적으로 충족시켜 준다. 현대인들에게 돈은 영혼을 팔아서라도 가져보고 싶은 절대 반지다.  


재민은 정말로 이수정(하지원)을 사랑했을까? 그런 것으로 보인다. 부유하고 적당히 화목한(?) 가정에서 곱게 자란 그가 말 그대로 보잘것없는 여자에게 목을 매는 설정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진 않는다. 지금까지 만나본 다른 여자들과 다른 지점이 무엇이었을까?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소액의 돈으로 그녀에게는 엄청난 일을 해 줄 수 있다는 뿌듯함? 약간의 동정심과 호락호락하지 않은 그녀를 가지고 싶다는 승부욕? 


내가 봤을 때 그의 사랑에 불을 지핀 가장 강력한 요인은 바로 '질투'다. 그녀의 바로 옆에는 강력한 연적이 있었다. 잘 생기고 능력 있고 싸움도 잘하고 믿음직스러운 강인욱. 돈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우월하다. 그런 그가 그녀의 바로 옆 방에 살면서 그녀와 점점 가까워지니 미칠 노릇이다. 아마 강인욱이라는 라이벌이 없었더라면 그토록 절실하게, 미친 듯이 그녀에게 집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내면의 욕구보다 외부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측면이 크다. 내가 갖지 않으면 남이 가져버리게 될 상황. 그렇게까지 매력적이진 않지만 남의 것이 되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선택해본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정재민이 이수정을 사랑하는 감정은 팩트였지만 그 감정에 기름을 들이부은 것은 분명 라이벌의 존재였을 것이다.


한 가지 경악스러운 일은 정재민의 아버지가 말을 듣지 않는 아들을 다룬 방식이다. 골프채로 무지막지한 폭행을 가한 것이다. 영화 '베테랑'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지만 이건 타인이 아니라 자식에 대한 폭행이다. 다 큰 자식을 몽둥이로 꺾어버리겠다는 생각이 소름 끼치도록 야만적이다. 재벌에게 자식의 결혼이 중요한 사업일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돈은 자식까지도 수단으로 만들어버릴 만큼 그토록 강력한 것인지. 인간에게 가장 본능적이자 맹목적인 애정의 대상인 자식조차도 도구화시키는 자본의 힘이 무섭다.


하지만 실제 재벌이라면 저렇게 무식하고 역효과가 뻔히 보이는 방식을 선택하진 않았을 것 같다. 사랑은 사랑, 비즈니스는 비즈니스. 아마 표면적(공식적)으로는 결혼 관계를 잘 유지하라고 충고하는 선에서 자식의 사랑을 모른 척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을까? 소문으로 접한 재벌들의 행태에 비춰봐도 그렇고, 감정의 속성을 생각할 때도 그렇다. 아마 그대로 내버려두었다면 1년, 아니 몇 년 안에 사그라들기 마련인데, 억지로 떼 놓아서 그런 비극을 초래한 게 아니었을까.


TV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판타지에는 진실이 있다. 돈은 모든 것을 저버릴 만큼 강력한 유혹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돈으로 못할 것이 없다. 수명도, 외모도, 사랑까지도 살 수 있다. 사랑은 이토록 무서운 돈도 버릴 수 있게 만드는 더 강력한 마법이다.


중요한 건 결핍이다. 사람들은 내게 없는 것, 그것을 평생 욕망한다. 


돈이 없어 모멸감을 느끼고 밑바닥까지 초라해본 사람은 결정적인 계기 없이는 평생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돈은 있지만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사랑이 가장 강력한 충동으로 작용한다.  


내가 가진 것으로 상대의 결핍을 채워주고, 내게 없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갈수록 사람들은 끼리끼리 연애하고 결혼한다. 강인욱-최영주, 정재민-이수정이 연결되었다면 그들은 더 행복했을 텐데. 아니, 문화적, 계층적 이질감으로 결국 헤어졌더라도 적어도 자신들이 쫒았던 것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과연 허상이었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


죽지 말고 끝까지 갔더라면(어떤 식이든) 그것은 이미 현실이다.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니다. 일상은 판타지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은 그토록 충격적인 엔딩으로 끝나야 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 엔딩을 붙잡고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도록. 사랑이 무엇인지.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돈이 우리 행동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그렇게 갑작스럽게, 비극적으로 끝나버렸기에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들을 생각하는 게 아닐까? 유튜브 동영상에는 아직까지도 그들을 잊지 못해서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의 댓글이 쌓여 있었다. 나는 최근에야 보았지만 앞으로도 가끔 주인공들의 고민과 망설임, 그들의 선택과 그들을 그 선택에 몰아넣은 프레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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