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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Aug 23. 2018

그렇게 '어쩌다' 떠밀리듯 부모가 된다

'당해봐야 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딸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어느 날 TV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가수 '최진희'가 나왔다.


나와 남편은 같은 세대다. '최진희'를 알고는 있지만 한 번도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올드'하다고 생각했던 최진희의 노래에 가슴이 시렸고 둘은 약속한 듯이 그날 오후 내내 '사랑의 미로'를 흥얼거렸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 아빠를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바라보다가 "대체 그 '미로'에서 언제 벗어날 거예요? 우리 하루 종일 그 노래 들어야 하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엄마, 아빠가 하고 있는 과거로의 여행에 대한 애정 어린 비웃음과 함께.


그때 또다시 나의 부모님과 마주쳤다. 이번에는 아버지와.


아버지가 늦은 밤에 혼자 <가요무대>를 보며 노래를 따라 부르던 기억이 난다. 좁은 집에서 아이들이 깰까 봐 TV 볼륨을 최대한 낮춘 상태로, 하지만 잠결에 듣기에도 너무나 애절하게 따라 불렀다. 어떤 날에는 현철의 '봉숭아 연정'의 가사를 종이에 적어와서 보면서 따라 부르기도 했다.   


당시 부모님 간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아버지 입장에서, 아내는 냉정하고 아이들은 다 이기적이었다(모든 아이는 다 이기적이라는 것. 이것이 당연하면서 불편한 진실이다). 그가 허전한 마음을 달랠 공간은 거실 TV 앞 밖에 없었을 것이다. 요즘에야 노래방이라도 있지만.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도 팝송 가사를 적어서 따라 부른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공감이 되기보다는 우습고 다소 놀랍게 생각했다. 막연히 '어른도 저런 짓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노랫소리에 잠이 깨서 약간 짜증이 나기도 했다. 


내 아이들이 '사랑의 미로'를 따라 부르는 엄마, 아빠를 보며 어이없어하는 것처럼, 나도 아버지의 쓸쓸한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것이 '아빠도 부모가 아닌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된 최초의 계기였던 것 같다.



'당해봐야 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또 당했다!


언젠가는 내 아이들도 러브홀릭의 '버터플라이',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던 엄마,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겠지? 하지만 아마 한 아이의 부모가 된 상태에서일 것이다. 


부모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스스로 헤아린 것이 아니라, 자식의 모습에서 예전의 자신을 보고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그저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어쩌다' 어른이 된 것처럼 '어쩌다' 부모가 된다.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실수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능숙하게 잘 처리하게 될 줄 알았다. 어른과 아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 확실한 경계선이 그어져 있는 줄 알았다. 


모호한 것을 구분하면서 어른이 되어 간다고 생각했는데, 한동안 어른으로 살다 보니 모든 것은 다시 모호해지고 뒤섞어버렸다. 이런 모호함을 견디는 게 진짜 삶인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내 아이들이 떠올리는 부모의 모습이 나보다는 덜 슬프고 안타까운 것이기를 바래본다. 내가 가졌던 '당한' 느낌, 환영하고 싶지 않은 동일시의 감정이 비교적 용납할만한 것이기를 바래본다.


결론적으로 내 생각이 틀렸다.


자식은 부모를 생각한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부모가 원하지 않는 형태로.


애인에게 차이고 나서야 예전에 자신이 찬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듯이. 당한 입장에 서서야 마음속에서 부모를 대면하고 안쓰러움, 연민을 느끼게 된다. 어지하랴. 그것이 인간의 숙명, 관계의 속성인 것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예외는 없다.  


자식은 떠밀려 부모가 되고 부모가 되어 비로소 자신의 부모를 생각한다. 


그러니 자식에게 들이는 공이 아주 헛수고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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