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무사함'과 '편 가르기'의 사이
사람을 대할 때 객관적인 태도, 공평무사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아마도 엄마의 영향일 것이다. 엄마는 무슨 일에 있어서든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다.
자식의 못난 면을 보면서 감싸주거나 부모의 시선에서 합리화하기보다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너는 ...하다'라는 말을 꼭 했다.
그러면서 내가 상처받은 표정을 보이면 "편들면 뭐 하냐? 객관적으로 그런데. 객관적인 게 중요한 거야. 그래야 발전이 있지"라고 쐐기를 박곤 했다.
어렸을 때는 엄마 말이 옳은 줄 알았다. '모든 일에 객관성을 유지한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의 그런 태도가 가슴에 못이 된 줄은 아주 나중에 알았다.
엄마에게 정이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문제가 생겨도 엄마에게 털어놓지 않게 됐다. 털어놓으면 도움을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엄청난 비난과 비판 세례를 감수해야 했다. 엄마는 객관성을 지향하는 감정적인 사람이었다.
객관적이면서 이성적인 사람이었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아니, 그건 어떤 의미에서 더 안 좋았을지도 모른다.
감정적이었기 때문에 최소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징글징글할 때도 많았지만. 만약 객관적이면서 이성적이었다면 남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20대까지만 해도 인간관계에서 '공평무사함'을 최선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았다.
그룹을 지어 몰려다니고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잘해준다'라는 생각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 '잘해줌'이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의미하는 줄 알았다. 되도록 무리에 끼지 않았던 나는 늘 배척당하는 입장이었으므로.
아웃사이더(흔히 말하는 독고다이)인 내 눈으로 볼 때, 세상은 자기 편만을 끼고도는 불합리한 공간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다짐했다.
서른이 넘어 아기 엄마가 되었다. 육아에 문외한이었으므로 많은 육아책을 읽었다. 책들은 내용이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된 메시지가 있었다. '엄마는 무조건 아이 편이어야 한다'라는 말이었다. 딸이 아기였을 때는 그 말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아기는 너무 예뻤고 본능적으로 '특별하게'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커가고 나쁜 습관이 보이고 자기주장이 생기면서 조금씩 '이게 아니지 않나? 가끔은 객관적으로 지적해줘야 하지 않나?'라는 의문이 스멀스멀 들었다.
아이에게 조금씩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상처받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수긍했다(수긍한 것처럼 보였다). 몇몇 친구들과 말다툼을 한 어느 날,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격앙된 어조로 그 아이들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듣고 나서 "혹시 니가 잘못한 거 아냐?"라고 말했다. 아이는 그 말에 격렬하게 저항했다. 화를 내면서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전에는 이렇게 격앙된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꽤 놀랐다.
그런 일들이 두세 번 반복되면서 아이는 조금씩 나에게 무언가를 숨기기 시작했다. 아니, 전처럼 시시콜콜하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다 털어놓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탐정'이 된 것처럼 아이의 태도가 변한 단서를 찾아 아이의 마음을 헤매기 시작했다. '엄마의 객관적인 충고를 왜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왜 그 말에 그렇게 화가 났는지?' 감정을 더듬어 들어가면서 아이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객관적인 엄마는 필요 없었다. 딸은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는 엄마를 원했던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30년 전에 나는 분명 상처받았다. 하지만 아이였기 때문에 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엄마 말이 맞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나도 모른 채 그 상처를 아이에게 전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이어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