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영화리뷰 2024 - <드림 시나리오>
<드림 시나리오>는 최근 몇년 간 다시 번뜩이는 영화들로 찾아오기 시작한 니콜라스 케이지의 또 한편의 걸출한 영화입니다. SNS로부터 받는 관심에 중독된 여성의 위험천만한 일상을 그렸던 <해시태그 시그네>의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은 다음 작품인 이 영화에서 전작과는 상반되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도 우리를 들었다 놓는 소셜 미디어의 우스꽝스럽고 비정한 일면을 블랙 코미디와 호러를 결합한 방식으로 그립니다. SNS가 우리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면서 이러한 SNS의 폐해를 지적하는 콘텐츠는 익숙하게 등장해 왔고 이 영화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지만, 그 단면을 꿈이라는 소재와 접목하여 다루는 영화의 솜씨는 기막히게 번뜩이고 그래서 이내 섬뜩해집니다.
폴 매튜스(니콜라스 케이지)는 교수로서의 인기도, 학자로서의 존재감도 없는 인물입니다. 학계가 주목할 저서를 내놓는 꿈을 꾸지만,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면서 그 외의 모든 것은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구는 그에게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배짱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 재닛(줄리안 니콜슨)과 두 딸과 함께 하는 지금의 일상에 딱히 부족함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그러던 그가 하루아침에 유명해진 것은 다름아닌 꿈, 그것도 자신이 아닌 타인들이 꾼 꿈 때문이었습니다. 언제부턴가 딸을 포함한 불특정 다수의 꿈 속에 폴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이한 것은 사람들이 꿈 속에서 겪는 온갖 재난, 위기, 공포의 상황에서도 폴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슬렁거리며 방관하는 모습으로 등장했다는 점. 꿈이 똑같은 게 아니라 어떤 내용이든지 폴이라는 동일인물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현상에 학교 학생들부터 해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매스컴까지 타면서 그의 유명세는 급격히 치솟습니다. 마케팅 에이전시 대표 트렌트(마이클 세라)는 그런 폴의 유명세를 활용하고자 접근하고, 폴은 이 유명세 덕에 자신이 구상하는 새 저서도 탄력을 받아 나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날부턴가 사람들의 꿈 속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이 완전히 뒤바뀌기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안하며 배회하던 그가 갑자기 사람들에게 갖은 악행을 저지르며 악몽을 만들어내는 주인공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폴을 향한 세간의 반응은 180도 달라집니다.
<드림 시나리오>가 소재로 삼는 '꿈'은 어쩌면 소셜 미디어 환경에 대한 신랄한 비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욕망을 투영한다는 이론은 있으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간다는 점에서, 심심찮게 논리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니까요. 영화에서 졸지에 '꿈의 남자'가 된 폴이 겪는 유명세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인들의 꿈에 나온 폴이 무슨 행동을 했든 현실의 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고, 폴이 꿈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꿈을 꾼 타인들의 입을 통해서 듣는 이야기 외에는 증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폴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들의 꿈에 나온 이미지로만 판단하죠. 처음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으로 등장할 때에는 마냥 신기한 사람이다, 하면서 셀카를 찍으려 들다가 갑자기 그가 악몽의 주인공이 나타난 뒤에는 마주치기도 싫은 인물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SNS의 시대에서 내가 유명해지는 것은 내가 한 것과 때로 아무 상관없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 이 비유가 무척 날카롭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내 노력이나 역량과 하등 상관없는, 요행에 가깝게 랜덤 알고리즘을 타고 들어오는 이 유명세는 당사자에게 뜻밖의 큰 이득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하염없는 불행으로 돌아오기도 하죠. 처음 꿈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으로 등장해 어떤 가치 판단이 붙지 않은 단순한 '유명세'를 얻은 폴이 이후 꿈의 내용이 바뀌면서 '부정적인 유명세'를 얻게 되는 흐름 또한 SNS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세간의 지탄을 받으려면 일단 어떤 내용으로든 유명해져야 하고, SNS는 그 무작위 유명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드림 시나리오>는 의지와 논리를 벗어나는 꿈의 특성을 절묘하게 활용해 자기 노력과 상관없이 갑자기 유명해진 남자의 희비극을 잔뜩 비틀린 웃음기로 그립니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는 저런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이 아니라, 저런 현상에 당면한 폴과 대주잉 취하는 태도입니다. 현실에서 일어난 일 때문이라고 해도 하루아침에 찾아온 그 유명세가 얼떨떨할 법한데 그게 꿈 때문에 생긴 거라고 하니 얼마나 납득하기 어려울지, 명성의 광풍 한가운데에서 넋이 나간 듯하면서도 내심 그 광풍을 즐기고 있는 폴의 모습이 영화에 그려지며 웃음을 자아냅니다. 스스로가 호기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가 극혐의 대상으로 난데없이 추락하는 이유가 내 의지와 무관한 현상 때문이라는 것은 폴의 토로처럼 답답하기 이를 데 없으면서도, 보다보면 왜 대중이 폴을 향해 그런 태도를 갖게 되는지 내심 알 것도 같다고 납득하게 된다는 것에 이내 섬뜩해집니다. 현실의 우리에게는 이미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사하게 소셜 미디어를 소재로 했지만 이 영화 속 폴과는 반대로 자의로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내달리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렸던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은, 마찬가지로 현상의 원인을 파헤치기보다 그 현상에 한껏 휩쓸리는 인간들의 내면을 예리하게 파고듭니다. 바로잡기도 거스르기에도 이미 늦었다는 듯, 설명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는 현상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가를, 꿈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현상에 의해 나부끼는 폴을 통해 짚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개성 넘치는 영화에서 다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연기를 마음껏 선보이는 니콜라스 케이지를 다시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다시금 반갑습니다. 말도 안된다고 따지자면 끝도 없는 이야기, 그 속에서 말도 안된다고 따지자면 끝도 없는 반응을 보이는 인물들 속에서 그가 보여주는 폴이란 인물은 말이 될 만한 리얼리티를 확보합니다. 그러면서도 기이한 상황 속에서 독야청청 리얼리티로 이질적으로 고립되는 대신, 처량하게 당혹해하다가 내심 즐기다가 이내 시달리다가 끝내 초탈해지는 인물을 에너제틱하게 그려내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는 단연 독보적입니다. 이 영화가 신선한 발상과 감각적인 묘사, 날카로운 메시지를 넘어 일말의 여운을 남긴다면 그것 또한 그의 몫일 것입니다. 이 밖에도 폴을 북돋우면서도 한편으로 관망하거나 활용하려는 면도 보이는 폴의 아내 재닛 역의 줄리안 니콜슨,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크리에이티브랍시고 아무렇지 않게 늘어놓는 마케팅 에이전시 대표 트렌트 역의 마이클 세라 등의 배우들도 영화의 톤에 딱 맞게 스며드는 호연을 보여줍니다.
떄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수도, 그럴 겨를도 없이 들불처럼 퍼져가는 누군가의 유명세에 우리는 얼마나 쉽게 박수를 보내거나 돌을 던지는지. 그 와중에도 그 속에서 싹트는 자본의 냄새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밈, 바이럴, 캔슬 컬처 등의 개념들이 마치 누군가를 자율주행차에 태우고서 '떡상'과 '나락'을 오가게 하는 것과 같은 세태가 고스란히 담긴 <드림 시나리오>는 바로 이 모니터 안에서 지금도 펼쳐지고 있을 이런 요지경을 매콤하게 들춥니다. 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현실에서도 일어날 때, 우리는 무엇을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여기게 될지. '꿈'이란 개념을 전혀 다른 의미로 재정의, 재생산하고 있는 영화 속 현실이 우리에게 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