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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Jun 06. 2024

때로 무자비보다 더 가혹한 무지에 대하여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4 -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2023)


작년 칸영화제 그랑프리, 아카데미 2개 부문 수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과 함께 세계를 놀라게 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영국 출신의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이 연출했지만 영어를 쓰지 않는지라 아카데미에서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 이 영화는 그와 더불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몫이 되곤 했던 부문에서 또 하나의 상을 받았는데 바로 음향상입니다. 그것이 납득하고 남을 만한 게, 이 영화는 음향을 그저 사실적으로 구현하는 것을 넘어서 대중이 생각지 못한, 그러나 대중이 절절히 느낄 수 밖에 없는 방식으로 음향을 활용하면서 그것을 그대로 영화의 주제의식과 맞닿게 합니다. 우리에게 듣는다는 것, 들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가 '나치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참사와 만나 빚어내는 메시지란 심장을 뻥 뚫어버린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강력하고 둔중하고 거대합니다. 동시에 극장이 필요한 이유와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를 지극히 예술적인 방식으로 증명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독일군 장교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의 가족은 오랜 시간 일군 삶의 터전에서 행복에 젖은 일상을 만들어 갑니다. 루돌프의 아내 헤트비히(산드라 휠러)는 꽃들이 만발하는 정원을 손수 가꾸었고, 그들의 다섯 아이들은 집앞에 평온하게 흐르는 강가와 집안에 마련된 수영장과 온실을 오가면서 재잘거리며 풍요로운 성장기를 보냅니다. 한켠에서는 루돌프의 임무와 관련된 회의가 열띠게 일어나는 한편, 다른 한편에서는 저마다의 분주한 하루가 펼쳐지는 이곳에는 잊지 못할 추억들과 소중한 삶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 합니다. 이런 곳을 떠난다는 건, 특히 헤트비히에게는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루돌프에게 새로운 임무와 발령지가 주어지면서 이곳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고, 헤트비히는 남편과 잠시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이곳을 못 떠나겠다고 버팁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폴란드의 작은 도시 오시비엥침, 우리가 흔히 '아우슈비츠'라고 알고 있는 곳입니다. 담벼락 너머 끊이지 않는 총성과 비명 소리마저도 그저 생활 소음일 뿐인 가족의 하루하루가 흘러갑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2023)


나치 홀로코스트는 그 행위의 잔악성이 까도까도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올 만큼 극심했기에 80여년이 지난 지금도 대중 매체에서 활발히 다뤄지고 있지만,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이를 다루는 방식은 그 중에서도 독보적입니다. 영화는 실제 역사에서 자행된 나치의 그 잔악한 행위들을 단 한번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무력하게 희생되어 가는 이들의 모습 또한 일절 등장하지 않고요. 대신 영화를 내내 채우는 것은 가해자들인 나치 독일군과 그 일족들의, 그것도 그들이 자행한 것들과 철저히 거리가 먼 평온한 일상들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영화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비극을 고발하는 법은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이 평온한 일상 너머로, 거리감을 따라 한껏 뒤틀린 총성과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그치지를 않는 것입니다. 수영장까지 만들어진 정원에서 아이들이 노닥거리는 모습 너머 담장 밖으로는, 오늘도 그 무수한 유대인들을 오직 절멸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데리고 온 열차가 뿜어내는 증기가 보입니다. 문득 헤트비히가 자신이 공들여 키운 붉은 꽃을 유심히 바라볼 때,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아비규환의 소리가 꽃에 뒤엉켜 마치 피를 뿜어내는 듯 합니다. 우리는 죄와 부끄러움을 아는 평범한 사람들이기에 이런 곳에서 일상을 일구어 가는 (그것도 방관자도 가담자도 아닌 주동자에 가까운) 회스 가족의 모습이 말할 수 없이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지옥은 다름아닌 저런 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됩니다. 뿔 달린 악마의 얼굴이 아니라 평범한 행복에 미소짓는 자들. 자신들의 행위를 악의 가득한 파괴가 아니라 그저 '일'로 받아들인 자들.


회스 가족의 태도가 너무나 태연한 나머지, 영화를 보다보면 저들은 담장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진정 모르는 건가 의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해 모르는 게 아니라 철저히 외면함으로써 모르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걸 곳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영화가 다른 어떤 감각도 아닌 청각을 주요 장치로 활용함으로써 더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인간의 감각 중에 후각이 가장 빨리 무뎌지는 감각이라면, 청각은 오히려 그 반대일 것입니다. 같은 소리에 반복적으로 노출된다고 해서 우리가 그 소리에 금방 무뎌지는 일은 드물고, 그 소리가 크고 험하며 불편할수록 무뎌지기는 힘듭니다. 어떤 노래를 통해 그 노래를 처음 들었던 곳의 풍경과 분위기를 생생하게 기억해낼 만큼, 청각은 다른 감각과 감흥과도 쉽게 연동될 수 있는 감각입니다. 그러니 영화 속 회스 가족은 비명과 총성으로 뒤엉킨 담장 밖 굉음을 못 듣는 것이 아니라 안 듣는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유대인도 포함된) 집안 하인들이 노동에 몰두하거나 알코올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이 집에 있는 것을 견디기 힘든 것과 달리 회스 가족이 여유롭게 정원을 거닐고 꽃을 감상하고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것은, 담장 밖에서 들리고 보일 살육의 증거들을 손쉽게 외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을 값진 국가적 기여에 따르는 불가피한 생활 소음 쯤으로 어른들이 치부하는 동안, 아이들은 그 소리의 의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지금 보내고 있는 시간을 평범하고 소중한 추억의 일부로 언제까지나 여길테죠. 실제 저택 구조도를 충실히 따른, 회스 저택과 군 사령부를 넘나드는 배배 꼬인 비밀통로는 그 '소음'을 생활 공간으로부터 철저히 차단하기 위한 수단일 뿐, 죄의식의 발로는 결코 아닐 것입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2023)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순간 중 하나일 나치 홀로코스트가 당당히 자행될 수 있게 했던, 공고한 체제 아래에서 무표정으로 일관했던 '악의 평범성'을 이렇듯 악과 평범성이 병치된 공간을 통해 몸서리쳐지도록 보여줍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학자로서 나치 전범재판을 참관하기도 했던 한나 아렌트가 이야기한 이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은 영화에서 국가에 의해 이루어진 반인륜적인 악행이 얼마나 많은 무지한 (혹은 그런 척하는) 이들에 의해 제도적으로 이루어져 왔는지를 목격하게 되면서 생생하게 느끼게 됩니다. 훗날 가해자가 될 그들 한명한명이 괴물같은 악의 대신 시스템의 일부로서의 충성심과 임무에 충실한 사회인의 모습을 지니고 있기에, 오로지 수백만의 인명을 살상하기 위해 구축된 말도 안되는 시스템이 그토록 큰 소리를 내며 굴러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구축된 악마의 사회를 비집고 들어오는 지옥으로부터의 외침은, 갖은 소리들이 버무려져 한껏 기이하면서도 더욱 선연하게 메아리치며 보는 이를 두렵게 합니다. 실제로 제작진이 카메라를 들고 찍는 게 아니라 집안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배우들끼리 연기하도록 연출했다는 일화에 걸맞게, 루돌프 회스를 연기한 크리스티안 프리델과 헤트비히 회스 역의 산드라 휠러를 비롯한 배우들은 지옥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그 집에서 안온한 삶을 보내는 이들의 (일말의 죄책감도 끼어들지 않는) 일상적인 심리를 소름끼치게 소화해냅니다. 시작이란 것도 끝이란 것도 없는 일상을 담아내는 그들의 연기 때문인지, 담장 밖의 고통스런 소리들 또한 그 끝을 모를 것만 같아 보는 이를 더욱 옭아맵니다.


그러나 한때 무자비한 악행이 무지한 이들에 의해 당당하고 체계적으로 자행되었지만 그 어두운 터널을 끝내 빠져나온 지금에 이르러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이야기하는 것은 비단 아득한 절망만은 아닙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를 엄습하는 두려움이 그렇게 거대했듯, 결국 현재의 우리가 기억할 것은 담벼락 너머의 지옥도를 애써 가리고 갖은 문들로 자신들의 낙원을 철저히 지키려 했던 평범한 악의 얼굴이 아니라, 산더미처럼 쌓인 이름없는 옷가지와 신발들, 삶을 향한 바람이 담긴 꼬깃꼬깃 접혀진 악보와 길목마다 비밀스레 묻힌 과일의 모습으로 남은 스러져간 생명들일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훗날 세상은 햇살 아래 노닐던 그들의 나날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잠행하던 희망의 흔적을 기억할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아름답지만 더없이 공포스러운 풍경, 그 풍경에 틈입하는 고통과 절망의 소리들이 빚어내는 무시무시한 지옥의 체험은 적어도 한번은 더, 이 걸작을 다른 곳이 아닌 극장에서 다시 봐야겠다고 마음 먹게 만듭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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