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만 Jun 14. 2024

소란한 감정들을 안아줄 때 만나는 기적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4 - <인사이드 아웃 2>

<인사이드 아웃 2>(Inside Out 2, 2024)


국내를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평단과 관객 모두의 찬사를 받으며 대성공한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9년 만의 속편 <인사이드 아웃 2>가 나왔습니다. 전편이 상상력, 이미지, 스토리, 주제의식 등 여러 면에서 완전무결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그 속편이 나온다는 소식에 당연히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함께 조바심 또한 불러일으켰지만, 한편으로는 속편이 나오는 게 자연스러운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전편은 고작 라일리의 유년기만을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훨씬 더 극적이고 복잡한 변화가 일어나는 청소년기에 이르면 얼마나 큰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칠까. 그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것이 이번 <인사이드 아웃 2>의 과제였을 것이고, 영화는 이를 역시나 매우 성공적으로 해냅니다. 이미 익숙해진 바탕 위에 그려지는 더 풍부한 세계관에 어른들에게는 어쩌면 전편보다도 더 저릿하게 와닿을 공감의 메시지가, 우리 머릿속 감정들의 여정을 시들지 않은 동력으로 이끌어 나갑니다.


전편에서 초등학생이었던 라일리(켄싱턴 톨먼)는 이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는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라일리는 줄곧 아이스하키에서 눈에 띄는 실력을 보여왔고 그 실력이 고등학교 진학 등 앞으로의 진로도 좌우할 수 있을 걸로 예상됩니다. 라일리의 머릿속 다섯 감정들 - 기쁨이(에이미 포엘러), 슬픔이(필리스 스미스), 버럭이(루이스 블랙), 까칠이(리자 라피라), 소심이(토니 헤일)는 그렇게 라일리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마음껏 하면서 행복한 성장기를 보낼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왔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라일리의 머릿속은 한층 더 복잡해집니다. 하키의 재능이 데려다 줄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 오랫동안 함께 한 친구들과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 새로운 무리 안에 섞이기 위해 뭘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불안 등으로 어지러운 것이죠. 이때를 틈타 라일리의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에도 새로운 감정들 - 불안이(마야 호크), 부럽이(아요 에데비리), 당황이(폴 월터 하우저), 따분이(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가 찾아들어 기존 감정들의 자리를 꿰차려 합니다. 난데없이 본부에서 쫓겨난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는 다시 본부로 돌아가기 위해 그 사이 더 다양한 공간들이 만들어진 라일리의 머릿속 곳곳을 누비며 모험을 펼칩니다. 한편 미래가 결정될지도 모를 3일간의 하키 캠프에 입소한 라일리의 하루하루는 새로운 감정들의 손에 맡겨져 격랑에 빠집니다.


<인사이드 아웃 2>(Inside Out 2, 2024)


감정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하고, 그 감정들이 작동하는 인간의 머릿속을 거대한 세계처럼 구현한 전편의 상상력은 가히 충격적이었지만, 그 상상력도 속편에서 다시 만나면 익숙해질 수 밖에 없죠. <인사이드 아웃 2>는 인간이 유년기에서 사춘기로 넘어가며 비로소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착안해 라일리의 머릿속 세계를 더욱 넓고 깊게 확장시켜 나가고, 그렇게 해서 새롭게 만나는 공간들을 주로 누비면서 보는 이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줍니다. 단순히 감정과 경험을 저장하는 데 머물렀던 전편에서 나아가 그 모든 것들이 모여 '신념'을 형성하기 시작하는 '신념 저장소', 잊고 싶은 순간들을 시야로부터 아득히 멀리 던져버릴 수 있는 '기억의 저편', 때로 논리와 상관없이 마구 떠오르는 생각의 연속을 형상화한 '의식의 흐름', 감추고 싶은 이런저런 비밀들을 꽁꽁 숨겨두는 '비밀 금고' 등 인간의 내면 곳곳에서 이뤄지는 활동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새로운 장소들을 누비다 보면 그 절묘한 싱크로율과 저렇게 재기 넘치게 이미지화할 수 있다는 것에 절로 무릎을 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전편에서 등장한 공간들이 라일리가 나이를 먹으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보여줌으로써 인간 심리의 다양한 면모 중에서 새로 생겨나는 부분 뿐 아니라 변화를 겪는 부분까지 두루 조명합니다. 이 모험 속에서 나타나는 유머 코드는 누구나의 내면 어떤 지점을 건드리는 것이기에, 공감을 동반하여 더 유쾌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유년기의 원초적 감정들에서 성큼, 그러나 갈지자로 나아가는 사춘기의 시점을 이처럼 시각적으로 정확하게 묘사하는 영화는 말하자면 '사춘기의 세계관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처럼 <인사이드 아웃 2>가 중점을 두고 다루고 있는 '사춘기'는 따지고 보면 잠시 지나가는 혹은 한때 지나온 찰나의 변화 이상으로 꽤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기쁨, 슬픔 등 원초적인 감정과 점차 거리를 두고 세상과 사회를 신경쓰기 시작하는 기점이고, 이런 태도는 우리들이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껏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건 어린 아이들이나 보이는 모습으로 치부되고, 이제는 어린 아이이고 싶지 않은 나는 그런 '단순한 감정'들을 점점 드러내지 않게 됩니다. 누구처럼 되려는, 어떤 이들과 무리지어 어울리려는 욕구가 강해지고 온갖 상상들은 이를 계획하거나 만에 하나 생길지 모를 상황에 불안해하는 데 이용되기 시작합니다. 상상이라는 것조차도 순수하게 즐길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영화는 감정 표현이 격해지고, 이런저런 걱정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게 되는 사춘기의 정서적 방황을 감정 컨트롤 본부 안에서 작동되는 메커니즘으로 기발하게 그려냅니다. 그 안에서 전편의 다섯 감정들에 새로운 감정들까지 합세해 무려 아홉 감정들이 부산하게 활약을 펼치는데, 이게 시끄럽고 요란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중심을 이루는 감정이 있으니, 전편에서 '슬픔'이 그것이었다면 이번 편에서는 '불안'이 그것입니다. 아마도 많은 관객들이 불안이를 영화의 메인 빌런처럼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쑥 찾아와 본부 자리를 꿰차고는 갈수록 상황을 난처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라일리가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온갖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안해도 될 걱정들까지 만들어 가면서 하는 불안이의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이내 부인할 수 없는 기시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나를 괴롭히지만 떨칠 수 없는 불안이라는 감정의 존재를 새삼 깨달으면서 말이죠.


<인사이드 아웃 2>(Inside Out 2, 2024)


영화를 보다보면 심리학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되는 듯도 한데, 영화에서 갈수록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불안이의 모습은 일종의 '과도한 방어 기제'처럼 그려집니다. 사춘기를 지나며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없게 되며, 그로 인해 내가 세상에 어떻게 비쳐질지 어떤 역량을 보여줘야 할지에 대한 걱정을 멈출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걱정의 발로로 그려볼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그리고 그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 불안이가 하는 일인 셈이죠. 하지만 설령 나의 안전을 위해 시작되었다 해도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폭주하게 마련이고 나를 잠식시키기 일쑤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어린 날 우리를 한없이 즐겁게 했던 원초적 감정들은 어디로 갔는지 잊어버릴 정도로요. 영화는 불안이 우리를 휘몰아칠수록 우리의 어린 날을 장식했던 그 감정들이 소중해질 것이라 말합니다.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우리를 몰아붙이는 불안에 다른 감정들을 양보하지 않고, 세상살이를 핑계로 그 소란스런 온갖 감정들을 내치지 않고 너르게 안아줄 때, 언젠가 그 감정들도 불안에 스스로를 가둘지 모를 우리를 힘껏 안아줄 것이라 말합니다. 그 감정들과 나란히 있을 때, 적어도 우리는 불안마저도 안아줄 수 있을 만큼의 시야는 지니게 될 거라면서 말이죠. 사춘기 때 형성된 이 감정은 아마도 어른이 된 많은 사람들의 지금에도 영향을 미칠 터인데, 영화는 이렇게 불안에게 손을 내미는 이야기를 통해 그런 어른들에게 세상의 시선과 기준에 조바심 내지 않고 불안과 나란히 지낼 수 있는 희망을 전합니다. 그렇게 빌런처럼만 느껴지던 불안이를 어느새 안아주고 싶다고 느끼게 될 때, 픽사의 여전한 장기인 공감의 눈물은 또 한번 보는 이를 적실지도 모릅니다.


많은 어른들에게는 <인사이드 아웃 2>가 전하는 이야기가 전편보다 오히려 더 호소력 있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그때 형성되어 이제는 익숙해진 내 현재 감정의 어렵고 소란스럽고 불편한 부분들을 어루만져주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반갑지만은 않은 그 많은 감정들이 실은 오직 나의 행복만을 위해 지금도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될 때, 이미 묻어두고 멀어졌다 믿었던 순수한 감정들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알리며 내게 다시 돌아옴을 느낄 때 이 영화는 더욱 의미 있는 치유로, 각별한 감동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픽사의 영화와 함께 나이 든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처럼, 많은 이들이 그 '기쁨'을 이 영화로 마음껏 만끽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인사이드 아웃 2>(Inside Out 2, 202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