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 안소니 루소 & 조 루소 감독
영화는 이벤트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 얼마 전에 보여줬다. 시대를 풍미한 대형 히어로들이 서로 맞붙게 하는 것이 처음에는 관객의 흥미를 돋울 수 있어도, 관객을 끝까지 자리에 붙잡아두는 것은 결국 그 싸움을 납득할 수 있는 명분이었다. 영화를 그저 강건너 불구경 하듯, 놀이공원을 거닐다보면 가끔 만나게 되는 퍼레이드 구경하듯 볼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큰 이벤트라 하더라도 왜 이 일이 일어나며, 이 일에 얽힌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하며, 이 일이 끝난 뒤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하게 해야 하고 그 궁금증에 걸맞은 나름의 답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DC에서 먼저 벌인 대형 스크린 이벤트는 이런 덕목을 갖추는 데 실패했지만, 공교롭게도 숙명의 경쟁사인 마블에서도 유사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블이 지난 8년여 간 쌓아온 안정적인 필모그래피에서 알 수 있듯, 마블이 벌이는 또 다른 대형 스크린 이벤트는 더 침착하고 더 힘있고 더 납득된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원작을 읽어 온 팬들은 물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들을 꾸준히 봐온 관객만 돼도 기대를 모으기 충분한 프로젝트였다. 세계 영화 산업에서의 마블의 입지를 지금 수준으로 올려놓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아이언맨과 어벤져스 조직의 캡틴 아메리카의 대결이라니. 거기에 대립의 축을 이루는 두 히어로들의 지원군으로 마블의 신구 히어로들이 힘을 합친다니. 대형 프로젝트인 <어벤져스>를 두 번이나 성공적으로 치른 마블이라면 이 또 다른 이벤트를 치르는 건 일도 아닐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 이야기의 무게감이 단발적인 이벤트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벤져스라는 집단의 어떤 전기를 마련할 사건이자, 아슬아슬하게 공존해 왔던 히어로들의 대립을 폭발시키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영화는 확보된 물량에 섣불리 들뜨는 대신 진중함을 갖춰야 하며, 그러면서도 수많은 히어로들에 대한 교통 정리도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한 대사를 빌려온다면, 마블은 '이 어려운 걸 또 해냈다'. 물량공세와 존재감 과시의 함정으로부터 벗어난, 빼어난 분석력과 분배력, 조직력의 결과다.
나이지리아에서 용병들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일어난 인명피해로, 어벤져스의 활동이 낳는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입방아에 오른다. <어벤져스> 1편 때의 뉴욕,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때의 워싱턴 DC,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때의 소코비아까지. 세계를 구한다는 어벤져스의 활동으로 인해 막대한 인적, 물질적 피해를 입은 사례들이 거론되면서 UN은 117개국의 동의를 얻어 이른바 '소코비아 협정'을 내놓는다. 민간 조직이던 어벤져스가 공공 조직화되며, 이후 어벤져스의 활동은 정부가 허락 또는 요청한 경우에 한해서만 이루어진다는 내용이다. 그 사달을 만든 울트론의 창조자이기도 했던 토니 스타크/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자신들을 통제할 수단이 무언가는 필요하다며 협정에 찬성하는 반면, 쉴드가 해체되는 걸 목격하기도 했던 스티브 로저스/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는 위에서 내려오는 이런 정책이 오히려 명백히 의도적일 수 있으며 이에 어벤져스의 존재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는 판단에 협정에 반대한다. 그러던 중 협정 비준식에서 대규모 폭탄테러가 발생하고, 유력한 용의자로 '윈터 솔져' 버키 반즈(세바스찬 스탠)가 지목된다. 버키의 기억이 돌아오고 있음을 잘 알고 있는 스티브가 위험에 처한 버키를 구하려 하면서, 토니와 스티브를 필두로 한 어벤져스 내부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촉발된다.
프로듀서 케빈 파이기의 지휘 아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페이스 1, 페이스 2를 거쳐 이제 페이스 3에 이르며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세계관을 구축하고 확장해 왔다. 히어로들 각각의 세계를 언제 어떻게 펼치고, 그 각각의 세계들을 언제쯤 결합하여 다음 세계로 이어나갈지와 같은 전략이 효과적으로 구사되었고, 그 전략 아래서 준수한 역량을 지닌 감독들이 그런 캐릭터와 세계관의 구축 및 확장을 영화적으로 납득되게 전개해 왔다. 이런 과정에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하의 감독들에게 종종 특출난 능력이 요구되기도 했는데, 그것이 바로 앞서 언급한 조직력과 분석력, 분배력이다. 한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있던 히어로가 다른 영화에서 조연으로 끼어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때로는 각자의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있던 히어로들이 한 영화에서 만나기도 하는 세계다. 그러다 보니 히어로들 각자의 매력을 또렷하게 파악하고 각자의 비중을 효과적으로 안배하면서 그 각자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단단하게 조직해 한편의 영화로 느껴지게끔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어벤져스> 1,2편을 통해 조스 웨던이 그런 면에서 상당한 역량을 보여줬는데,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조 루소, 앤서니 루소 형제 감독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느낌이다. 분석력과 분배력, 조직력에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뚜렷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능력까지 갖추었다.
이는 사실 감독들의 전작인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서도 드러난 부분이다. 첩보물이라는 생각지 못한 장르와의 접목을 통해 자칫 구시대적인 캐릭터로 머물렀을 캡틴 아메리카에게 괄목상대 수준의 세련미를 부여한 데다, 로봇 같은 신체와 감정의 소유자인 줄만 알았던 캡틴 아메리카에게 절절한 멜로(로맨스와 브로맨스를 막론한) 감성을 선사하기도 했다. 물론 이 전작에 비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충돌이라는 설정 자체부터 관객의 감정을 동요시키기 충분하긴 하나, 많은 이야기와 캐릭터들을 효율적으로 안배 및 조직하고, 그렇게 조직된 결과물을 통해 관객들에게 뜨거운 감정을 전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루소 형제는 끝을 모르고 거대해지고 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책임질 자격을 갖춘 듯 하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구축된 이야기와 캐릭터들의 모습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생각보다도 개인적, 감정적 관점이 많이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소코비아 협정'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려는 슈퍼히어로들에 대한 통제로 촉발되는 정치적 대립이 큰 줄기를 이루지 않을까 싶었던 예상과는 사뭇 다르다. 결과적으로 영화의 이러한 노선 선택은 꽤 현명했던 것 같다.
마블 코믹스라고 해서 현실 정치에 관심 없는 것이 아닐테고, 실제로 마블 식구인 <엑스맨>은 영화를 통해서도 그런 정치적 이슈를 공공연히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해 만화보다 영화로 먼저 접한 사람들에게 마블 코믹스의 세계는 정치적,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 감정적이다. 자의식, 정신분열, 사랑과 우정, 가족사까지. 지금껏 마블 히어로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들 대부분이 이런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요소들로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더랬다. 이를 통해 관객들이 갖게 된 '어벤져스'라는 조직에 대한 인상도 마찬가지로 정치적, 사회적 목적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형성되고 운영되는 조직이라기보다는 각자 뚜렷한 개성과 다른 속내를 지닌 히어로들이 어쩌다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모여 아슬아슬하게 움직이는 공동체로 다가왔다. 명분도 이성적으로 설명되기보다 감정적으로 납득되는 게 있어야 지속적으로 운영될 것만 같은 그런 조직 말이다. 말하자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그리는 팀 아이언맨과 팀 캡틴 아메리카의 대립은 이렇게 '어벤져스가 계속 되어야 할 명분'을 찾는 하나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두 팀 수장의 닉네임에서 알 수 있듯, 이 싸움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캡틴' 과 '맨'의 대결, 그러니까 '리더'와 '인간'의 대결이다. 이는 곧 '책임감'과 '자존감'의 대결이기도 하다. 이 두 개의 가치는 선악이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어벤져스의 지속을 위해 모두가 필요한 가치들이다. 그러나 비범한 능력을 지닌 이 슈퍼히어로 집단에서는 이러한 두 개의 가치가 좀처럼 공존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캡틴 아메리카 품은 '책임감'이라는 가치는 자신의 존재가치보다는 세계를 무너뜨리려는 이들을 막고 평화를 수호하고자 하는 의지를 우선으로 세운다. 그러나 그들이 맞서는 악은 몰래 잠입해서 요인 1명만 죽이는 식이 아니라 세계를 통째로 가루로 만드는 수준의 재앙을 벌이기 일쑤고, 이러한 악에 맞서려면 그들 역시 큰 규모의 힘을 발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피해가 발생하는 것 또한 막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비준된 '소코비아 협정'에 대해 캡틴 아메리카는 불필요한 피해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세계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어벤져스의 노력까지 근본적으로 봉쇄될 것을 우려한다. 더불어 쉴드가 내부로부터 무너지는 과정을 목격하기도 했던 사람으로서, 캡틴 아메리카는 어벤져스라는 조직이 내부 구성원들이 능동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닌 어떤 의도를 갖고 있을지 모를 외부 세력에 의해 수동적으로 운영되는 것에 대해서도 두려워 한다.
이처럼 캡틴 아메리카가 '책임감'을 중시하는 데에는 일생의 유일한 죽마고우인 버키의 영향도 적지 않다. 캡틴 아메리카가 그렇게 다른 동료들도 내버려둔 채 버키를 챙기는 것에 대해 이기적이라는 시선도 있지만, 나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만은 않는다. <퍼스트 어벤져>에서 나타난, 캡틴 아메리카 아니 스티브와 버키의 관계는 확실히 각별했다. 가족에 대한 언급이 거의 나오지 않을 정도로 인간관계 면에서 고립되어 있는 스티브에게 버키는 혈육과도 같은 친구였다. 스티브가 지금과 같은 스펙이 아닌 극도로 왜소한 체구와 소심한 표정을 하고 있을 때에도, 당시엔 스티브보다 허우대가 훨씬 좋았던 버키는 그를 지켜주면서도 결코 하대하거나 연민하지 않고 동등한 친구로서 그를 대했다. 스티브가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난 후에도 굳이 부탁하지도 않았음에도 기꺼이 그의 사이드킥 역할을 자처했던 버키이기에, 버키가 불의의 사고로 '윈터 솔져'가 된 데에 대한 죄책감도 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벤져스의 리더로서 캡틴 아메리카에게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히어로들을 책임지는 것이 이상일텐데, 그 이상에는 열 손가락 중 유독 아픈 손가락인 버키를 지키는 것 또한 포함될 것이다. 그는 리더란 손가락 하나가 아플 때 그 손가락을 잘라내고 멀쩡한 손가락만 운용하는 이가 아니라, 열 손가락 모두가 제 역할을 하게끔 이끌어야 하는 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한편 아이언맨이 품은 '자존감'이라는 가치도 대단히 중요하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타인과 세상에 대한 믿음도 성립되기 힘들며, 그만큼 히어로로서 발돋움하기도 힘들어진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토니 스타크는 언제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기를 지향해 왔고, 무기상이었던 그가 아이언맨이라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것 또한 그 발로였다. 다른 히어로들과 달리 일찌감치 아이언맨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공개한 것 역시, 아이언맨이 자신이 숨을 수 있는 도피처가 아닌 자신을 더욱 떳떳하게 할 수 있는 도약대임을 알리는 행위였을 것이다.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는 그의 이런 노력들은 갑작스런 죽음으로 이별해야 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재가 낳은 트라우마에 대한 나름의 극복 방법이기도 했다. 마냥 자유주의자일 줄 알았던 그가 '소코비아 협정'에 동의한 것 역시, 자신이 활약이랍시고 벌인 활동들이 실은자신을 몹시 부끄럽게 만들어놓았다는 것을 깨달은 후 좀 더 도덕적이고 떳떳한 영웅이 되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블랙 위도우는 "그 자존심 한번이라도 내려놓을 수 없느냐"며 쏘아붙였지만, 토니에게는 그 자존심이라는 게 그를 살게 하는 나름의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시빌 워'는 이들이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팀원이면서 동시에 자존감을 필요로 하는 개인이기에, 그만큼 둘 다 필요하지만 둘 다 공존하기 쉽지 않은 이 가치들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다. 오프닝부터 끝까지 사건의 중요한 체크포인트가 되는 '윈터 솔져' 버키 반즈는 히어로들이 숙명처럼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과 자존감,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선택을 상징하는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각자의 가치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심정적 갈등은, 왜 그들이 토론으로 매듭짓지 못하고 직접 몸으로 부딪쳐야 하는지를 관객에 납득시키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옳고 그름이 구분되어 있지 않고 양쪽이 모두 수긍되기에, 양쪽이 맞부딪칠 때의 감흥은 단지 두 톱 히어로들이 붙었다는 데에 대한 짜릿함 정도를 넘어서 가슴을 뜨겁게 끓어오르게 하는 격정을 일으킨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우리가 기대했을, 어느 한쪽을 응원할 수 없는 싸움을 영화는 성공적으로 구현해 냈다.
영화의 온도를 끌어올리는 주요 갈등은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그리고 버키)으로 집중시키면서 그들을 따르는 다른 히어로들에게도 하나 이상의 장면 포인트와 최소한의 참여 명분을 제공하는 영화의 전략을 효과적이었다. 새로이 마블 유니버스에 진입한 두 히어로들에게도 각자의 이미지에 부응하는 페이지를 마련하여 나름 융숭하게 대접했다. 아프리카 와칸다 왕국의 젊은 국왕인 블랙 팬서(채드윅 보스먼)에게는 절도와 품위를, 눈에 띄게 젊어진 메이 숙모(마리사 토메이)와 함께 사는 철부지 고딩 스파이더맨(톰 홀랜드)에게는 기존 시리즈에서보다 훨씬 경쾌하고 활기찬 모습을 부여했다. 더불어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 워머신(돈 치들), 팔콘(앤서니 마키), 호크아이(제레미 레너), 비전(폴 베타니) 그리고 앤트맨(폴 러드)까지. 기존에 등장한 히어로들도 각자의 이미지 안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영화는 마음만 급한 소개의 장이 아니라 유쾌하게 자기 역량들을 뽐내는 축제의 장이 되었다. 중반부에 등장하는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공항 액션 장면은 영화의 이러한 캐릭터 안배 전략이 빛을 발하는 정점이다.
앞서 말해 온 것처럼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캐릭터 간의 유기작용이 가장 눈여겨 볼 만한 요소이긴 하나, 그 와중에 액션신 연출도 출중하다. 특히 감독들의 전작인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서도 느꼈던, 속도감 넘치면서도 눈이 피로하지 않고 또랑또랑한 액션 연출이 돋보였다. 잔뜩 떡칠된 CG로 히어로들의 기술과 스케일을 과시하기보다는 그들의 몸이 보여주는 역동적인 움직임, 전투의 타격감을 극대화시켜 많은 히어로들이 한꺼번에 맞붙어도 정신없거나 피로하지 않고 매끈한 몰입감을 안겨주었다. 주요 액션신들이 깜깜한 밤이나 실내가 아닌 대낮에 또는 야외에서 펼쳐진다는 점도 영화의 액션 장면들에 사실감을 더했다.
개인으로 이루어진 조직은 한번 결성됐다고 해서, 가만 있어도 그냥 굴러가지 않는다. 조직의 내실을 공고히 하고 영향력을 확장시키려면 격렬한 화학작용을 거쳐 진화를 거듭해야 한다. 이번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보면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어벤져스'라는 조직의 변화를 통해 세계관의 진화를 도모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로소 어벤져스가 그저 기능적이고 기계적인 조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역사와 감정을 지닌 인물들이 협력하고 부딪히면서 각종 화학 작용을 일으키는 가운데 내실을 다져가고 몸집을 키워가는 유기체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세계가 무너지지 않는 이상 모든 갈등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통과의례겠지만, 그렇다고 갈등하는 시늉만 내서도 안된다. 그런 점에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보여준 갈등과 충돌은 어벤져스라는 조직, 그들이 활약하는 세계의 존재 명분에 대해 생각하게 하면서 앞으로 이 조직과 이 세계가 어떻게 굴러갈지를 적극적으로 궁금하게 만드는 성공적인 시도였다. 마블은 본래 지니고 있는 캐릭터와 세계관의 자산이 풍족하기도 하지만, 그 자산을 대단히 영리하게 운용할 줄도 아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