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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Nov 08. 2022

오직 인간만이 행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일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2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2022)


1차 세계 대전 문학의 전범(典範)으로 꼽히는 독일 작가 에리히 레마르크의 동명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1930년작 미국 영화, 1979년작 미국 드라마에 이어 세번째로 원작의 고향인 독일에서 이루어진 영상화 작업입니다. 극장에서 볼 수 없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게 무척 아쉬울 정도로 1차 세계 대전의 아득한 규모와 전쟁의 처참함을 적나라하게 펼쳐내는 이 영화는, 인간의 존엄을 짓이겨버리는 전쟁이란 행위의 야만성을 새삼스럽다는 생각도 들 새 없이 명명백백하게 고발합니다. 이 오래된 진리가 한 세기를 훌쩍 건너온 2022년 지금 오히려 더 절절하게 와닿음을 사무치게 느끼면서 말이죠.


1차 세계 대전 3년차에 접어든 (영화 <1917>의 시간적 배경이기도 한 바로 그) 1917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 파울(펠릭스 카머러)은 친구들과 함께 영광스런 참전 용사가 될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참전하여 1년 정도만 잘 버티면 금의환향하여 영웅으로 칭송받고 멋진 남자로 사랑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가득차 있고, 학교에 찾아온 모병장교의 사탕발림 같은 독려는 그런 소년들의 환상에 불을 지피며 하루라도 빨리 참전하고 싶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입대한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납니다. 그 어떤 교육이나 훈련도 없이 즉시 투입된 전장은 새파란 학생이라고 봐줄리가 없는 살상의 광기가 빗발치고, 피와 진흙과 시체가 뒤엉킨 무인지대를 앞에 둔 참호는 아슬아슬하게 삶을 연명해 가는 공간이다가 목숨들이 속수무책으로 으스러지는 현장이 되기도 합니다. 병사의 일상이란 내일 대체 무슨 일을 겪게 될지 두려운 지리멸렬한 것이 되고, 함께 웃으며 내일을 꿈꿨던 친구들은 하나씩 곁을 떠납니다. 청년들과 멀리 동떨어진 곳에서는 휴전 협정이 진행되지만, 협정에 나서거나 전쟁에 미쳐 발광하는  그 윗분들에게 전선의 청년들은 바닥나면 채우면 그뿐인 탄약에 지나지 않는 듯 합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2022)


2차 세계 대전에 비해서는 영화에서 비교적 덜 주목받았던 1차 세계 대전이 <1917> 둥 최근 몇년 새 영화에서 주요하게 다뤄지고 있는데, 이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아마 그 뒤를 이을 것입니다. 원작을 읽어보진 못했어도 이름은 매우 익숙할, 고전 전쟁 소설을 처음도 아니고 세번째로 영화화한 작품인데 그 임팩트가 새삼 대단한 이유는 영화가 전쟁이라는 행위에 대해 한층 더 가차없이 접근하고 있고 그 속에서 인간의 비극이 더욱 선연하게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만들어진 독일은 1차 세계 대전에서도 전쟁 당사자 국가였고 2차 세계 대전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국가였기 때문에 그 죄와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데, 그 죄의식과 책임감을 담아서인지 영화에서 전쟁은 매우 처참하고 비정하게 다뤄집니다. 그 어떤 군사 기술도 배우지 못한 채 참전한 17세 소년인 주인공부터 해서, 그 어떤 장면에도 미화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무엇도 준비되지 않는 소년 병사들에게 보는 이조차 당황스러울 정도로 갑작스럽게 무자비한 살상이 퍼부어지고, 때마침 도입되기 시작한 탱크, 화염방사기, 전투기 등의 전쟁 기계들은 괴물처럼 나타나 힘없는 인간들을 집어삼킵니다. 영화는 잔혹한 전투 묘사에 탐닉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존엄이 파괴되는 매순간을 낱낱히 포착해 냅니다. 마치 인간성이 완전히 말살된 전장 한복판에 서서 얼어붙은 듯 그 모든 장면들을 목도하는 소년의 공포 어린 눈빛처럼 말이죠.


순진했던 청년이 꿈은 물론 부여잡고 있던 현실마저 잃어가며 살상에 둔감해지고 정서가 마비되어 가는 과정은 섬뜩하기보다 슬픕니다. 당장 몇 분 뒤조차 생각할 틈 없이 내달려야 하는 어린 병사의 공포를 고스란히 전하는 긴장감 가득한 연출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린 병사들이 더 이상은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임을 자각하면서 그 모든 과정을 겪게 되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또 한번 살상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 고요한 흙웅덩이에서 파울이 프랑스 병사와 몸싸움을 벌이고 그 결과를 마주하는 장면은, 파울이 무참한 살상의 현장에 내던져진 두려움 속에서 끝없는 살풍경의 일부가 되고 만 자신과 목도하는 가장 절망적인 순간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 절망적인 것은, 이 공포와 좌절을 해소해줄 수 있는 곳이 당장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고통은 전장을 채운 모든 청년들이 함께 짊어지며 견뎌내야 하는 것이고, 저 멀리 있는 것 같은 국가에게는 들리지 않는 비명입니다. 포탄을 맞을 일이 없을 것 같은 공간에서 세상 편한 모습으로 전쟁을 둘러싸고 주판을 두들기는 국가의 대표자들에게 전쟁의 성과는 인명이 아닌 영토로 가늠될 뿐이고, 그런 국가에게 개인의 목숨 하나하나는 지극히 사사로운 것이 됩니다. 영웅이 들어설 곳은 없고 전우애라는 표현도 거창하게만 느껴질 뿐인, 다만 힘겹게 서로를 의지하며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플 뿐인 청년들의 고통을 영화는 그들을 건져내고픈 연민과 그러나 건져낼 수 없는 현실을 모두 머금은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무자비한 전쟁의 참상 위를 스러질 듯 걸어가는 청년 병사들의 모습은 그래서 공포를 넘어 비애감으로 가득합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2022)


독일 영화다 보니 낯익은 배우들이 좀처럼 등장하진 않지만 하나같이 깊은 인상을 남기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보는 이를 지옥 같은 전장의 한복판으로 안내하는 주인공 파울 역의 펠릭스 카머러는 순진하고 유약한 청년이 상상도 못했던 혼돈 속에서 정신적으로 무너져 가는, 그 와중에도 한 가닥의 희망만은 부여잡으려 하는 모습을 파워풀하게 연기합니다. 파울의 모습 자체가 전쟁의 비인간성을 오롯이 대변하는 순간들이 몇 있는데, 그때의 모습은 마치 그림처럼 강렬합니다. 한편 전장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파울과 가장 가까운 전우가 되어가는 카친스키 역의 알브레히트 슈흐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줍니다. 파울보다 오랜 시간을 전장에서 보낸 현장의 '선배'로서 든든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그 역시 하루빨리 이 지옥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고픈 보통의 청년임을 상기시키는 천진한 모습으로 서글픔을 더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 중 가장 낯이 익을 다니엘 브륄은 독일 대표단으로 휴전 협정에 임하는 에르츠베르거를 연기하며 극의 무게를 더합니다.


처음에 '서부전선 이상없다'라는 제목은 나온지 오래된 원작소설에 대한 인상 때문이었는지 무척 건조하고 딱딱한 제목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이야기를 지나온 끝에 느끼는 제목의 뜻은 그렇게 비정하고 서늘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등장하는, 죽은 병사의 옷이 수선되어 새로운 병사에게 지급되는 장면은 전쟁의 지속성을 모골이 송연하게 드러내는 부분인데, 이런 전쟁이 그 어떤 야심찬 승리 때문도 아니고 그저 '이상 없는 고요함'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되어 왔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이 사무칠 뿐입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20세기에 들어서며 현대 전쟁의 서막을 연, 그렇게 오직 인간만이 행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행위인 전쟁의 기운을 세계에 드리우고 만 제1차 세계 대전의 현장을 관통하며, 오래되어 빛바래긴커녕 갈수록 더 뼈저린 반전의 목소리를 낮지만 강력하게 전파합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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