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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Nov 27. 2022

역사의 공백을 관통하는 날선 상상력의 일침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2 - <올빼미>

<올빼미>(The Night Owl, 2022)


<올빼미>는 배경에 깔린 복잡한 갈등 등으로 인해 현재까지도 그 원인에 대한 설이 분분한 소현세자의 죽음을 소재로 한 데다 그 중심에 선 인물로 맹인 침술사를 내세웠다는 점, 사극의 전형성을 빗겨가는 유해진-류준열 배우의 캐스팅 등 따지고 보면 색다른 점들이 곳곳에서 보이지만 제작 과정에서 화려한 주목과 기대를 받지는 않았던 작품인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명명백백하게 남은 역사적 기록 사이사이 놓인 공백을 그럴 듯한 상상력으로 메워가고 꿰어나가면서, 스릴러 장르물로서의 돌파력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메시지의 핵심까지 놓치지 않고 전달해 내는 성과를 이룹니다. 실제 역사와 가상의 이야기 사이에서 심심찮게 우를 범하기도 하는 팩션 사극으로서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인조(유해진)의 통치 아래에 있는 조선, 침술사 경수(류준열)에게는 밝은 곳에선 볼 수 없고 어두워지면 볼 수 있는 '주맹증'이 있습니다. 그런 제약을 딛고 빼어난 의술 실력을 자랑하며 경수는 마침 궁중의를 선발하러 온 어의 이형익(최무성)의 눈에 띄어 궁중 침의로 발탁됩니다.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 지내야 하는 곳인 궁궐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경수는 궁궐 사람들에게 어찌 보면 매우 안전한 상대일 겁니다. 당연히 그들은 밤이 되면 경수가 희미하게나마 앞을 볼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하고, 이에 경수는 밤에 특히 더 조마조마한 궁중 생활을 보냅니다. 때마침 청나라에 볼모로 있던 소현세자(김성철)가 8년만에 귀국하며 궁의 분위기는 뒤숭숭해집니다.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내세우려던 인조의 후궁 소용 조씨(안은진)는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는 반면, 세자빈인 강빈(조윤서)은 아들과 함께 경계하며 살아와야 했던 세월을 비로소 벗어나는 희망을 품는 듯 합니다. 하지만 명나라에 대한 복종을 거듭 주장해 왔기에 명나라 멸망 후 세워진 청나라에 적대적일 수 밖에 없는 인조와 청나라에서 오랜 시간 지내면서 접한 문물을 통해 청나라와도 대화와 외교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소현세자 사이에는 갈등이 불거집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몸져누워 있던 소현세자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게 되고 불운하게도 경수는 그 죽음의 유일한 목격자가 됩니다. 소현세자 죽음의 진실을 알고 있는 경수는 진실을 밝히려 하는 과정에서 더 거대한 진실을 맞닥뜨리게 되고 충격에 빠집니다. 그러나 한낱 침술사, 게다가 낮에는 안 보이고 밤에는 보인다는 맹인 침술사의 목격담을 믿어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세자의 죽음으로 인조는 광기에 휩싸인 가운데, 진실을 밝히려는 이들과 감추려는 이들의 단 하룻밤 사투가 펼쳐집니다.


<올빼미>(The Night Owl, 2022)


흔히 '팩션 사극'이라 하면 역사적 배경, 사건 혹은 인물에 상상력을 덧입힌 장르이다 보니 어떤 상상이든 허용하려는 잘못을 범하기도 합니다. 가령 엄연히 나타나 있는 사실을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이라는 전제를 달고 부정하며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전환하는 식으로 말이죠. 기존의 역사에 대한 평가를 뒤집으려는 걸로 풀이될 수도 있는 이런 섣부른 시도는 '팩션 사극'과 '대체역사물'을 혼동한 결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올빼미>는 역사 속 공백에 흥미로운 상상을 채워나가며 극적 재미와 역사적 함의를 모두 풍성하게 하는 모범적 팩션 사극입니다. 일단 영화는 역사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인조와 소현세자의 정치적 갈등이란 배경과 조선시대 대표적 미스터리인 소현세자의 죽음이란 소재 위에, 실존하는 질환인 주맹증이라는 설정과 침술이라는 특색 있는 개인기를 지닌 가상의 인물 궁중 침술사를 그럴듯하게 결합합니다. '주맹증이 있는 침술사'라는 주인공의 고유 설정은 궁중 내 권력 암투라는 전형적 전개로 흘러갈 수 있는 극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면서, 봐도 못 본 척 해야 하는 것이 행동강령처럼 전해 내려올 만큼 비밀들로 넘쳐나는 궁궐이란 공간에 대한 의미심장한 메타포가 되기도 합니다. 하여 궁궐에 입성하는 경수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니 그가 궁중생활에 적응하고 관계를 맺어가는 초중반의 전개는 다소 느슨합니다. 그러나 핵심 사건인 세자의 죽음을 기점으로, 영화는 동이 틀 때면 종결될 이야기의 본격적인 타임 카운트에 들어가며 고삐를 한껏 조입니다. 밤중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볼 수 있음에도 그것을 비밀에 부쳐야 하는 경수의 시선은 어둠에 둘러싸인 궁궐의 면면을 훑으면서 반전과 국면 전환의 순간들, 사건에 휘말린 다양한 인물들의 실체를 차례차례 맞닥뜨립니다. 이런 가운데 영화는 사건의 진위를 일찌감치 드러내고는 그 속에서 외줄타기를 해야 하는 주인공의 살 떨리는 상황을 통해 긴장감을 극대화합니다. '역사가 스포일러'일 수 있음에도 스릴러 장르로서의 효과가 뛰어날 수 밖에 없는 영리한 스토리텔링 전략입니다.


한편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 소겡서 진실은 갖고 있으나 힘은 없는, 그러나 먹여 살려야만 하는 어린 동생이 있는 경수의 분투는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해야 하는 궁중에서 펼쳐지는 권력 암투의 현장과 대비되며 묵직한 메시지 또한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경수의 궁중 입궐 소식에 주변에선 하나같이 축하 일색이었지만, 그런 궁중에서 드러나는 권력의 야만성은 경수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합니다.  더구나 앞을 볼 수 없는 경수를 권력은 때때로 투명인간 취급하며 그런 야만적인 얼굴을 최소한의 눈치조차 보지 않고 드러내 더욱 공포스럽습니다. 자욱한 어둠 너머로 희미하게 떠오르는 그 비정한 탐욕의 얼굴 앞에서, 경수는 감정을 드러낼 수 없기에 얼어붙은 얼굴을 하고서도 인간이라면 최소한 지켜야 마땅한 인간성을 간절히 갈구하게 되고 이는 궁중에서 맺는 특별한 관계들 속에서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끝내 돌파하려는 경수의 사투는 곧 목격한 것을 '못 본 것'으로 할 수 없는 힘 없는 자의 조용한 투쟁이 됩니다.


<올빼미>(The Night Owl, 2022)


인조 역의 유해진 배우, 맹인 침술사 경수 역의 류준열 배우는 신선하면서도 그만큼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 캐스팅이었습니다. 유해진 배우는 특유의 허스키한 하이톤 목소리를 시종일관 광기를 짙게 깔고 있는 인조의 성격적 특징을 표현하는 주요 수단으로 활용하며, 사극 속 왕의 서슬퍼런 광기가 반드시 낮고 굵게 깔아야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입증하는 날카롭고 파괴적인 연기를 보여줍니다. 왕의 비뚤어진 카리스마를 고스란히 보존하면서도 힘의 결을 달리 가져감으로써 조선시대 왕 연기의 전형성을 훌륭하게 깨뜨립니다. 한편 류준열 배우는 앞을 볼 수 없는 상황과 앞을 볼 수 있는 (그러나 감정은 여전히 감춰야 하는) 상황을 모두 보여줘야 하는 꽤 난이도 있는 캐릭터를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절제된 연기로 다이내믹하면서도 담백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합니다. 더불어 어의 이형익 역의 최무성 배우, 인조에 반기를 드는 이대감 역의 조성하 배우, 경수를 돕는 내의원 의관 만식 역의 박명훈 배우, 소현세자 역의 김성철 배우, 소용 조씨 역의 안은진 배우, 강빈 역의 조윤서 배우 등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이 내실 있는 연기로 장면장면을 풍부한 감흥으로 채우며 혼란에 휩싸인 궁궐 안에서의 하룻밤을 강렬한 시간으로 완성합니다. 


우리가 어릴 적 배웠던 역사 교과서는 매 챕터마다 어떤 정책과 변화가 생기든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나빠졌다'는 결말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올빼미> 속 소현세자 사건을 비롯해 실제 역사에서도 이처럼 비극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겠지만, 영화는 스릴러 속 주동 인물의 분투를 권력 암투의 한복판에 선 평범한 이의 저항으로 치환하며 실제 역사의 무력함을 따르길 거부합니다. 그 고집이 느껴지는 결말까지 이르면, 고개를 270도까지 돌리며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올빼미'라는 제목의 의미를 새삼 곱씹게 됩니다. 숱한 눈가림과 입막음 속에서 결국 본 것은 외면할 수 없고 들은 것은 침묵할 수 없는 게 된다는 의미겠죠. 이렇듯 <올빼미>는 역사 속 공백에 날선 침을 놓아 만든 변곡점에서 장르의 뚝심과 메시지의 핵심을 꿰어낸 수작입니다. 


<올빼미>(The Night Owl,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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