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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의 범위를 조금만 더 넓혀서 배려해보자.

[나의 생각]

by Changers

의-하!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사회적 약자의 범위를 조금만 더 넓혀서 규정하고 배려해보자.
누구나 기본권을 누리며 살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한 순간을 더 많이 마주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어린이와 노약자에 대한 배려를 잘한다.

지하철이나 버스에는 노약자석이 있다.

노약자석이 다 차서 자리가 없다면 젊은 사람들이 자리를 비켜드린다.

괜찮다고 거부하는 어르신과 금방 내린다며 하얀 거짓말을 하는 젊은이.

서로가 배려를 주고 받을 줄 안다.


사직야구장에 가면 재미난 풍경이 있다.

파울이나 홈런으로 공이 관중석으로 날아가면 누군가 잡게 된다.

혹시 아이가 잡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이 힘을 합쳐 외친다.

“아주라! 아주라!” 아이 줘라의 부산식 표현이다.


아쿠아리움에서 바다사자쇼가 있는데 자리가 부족했다.

뒤늦게 온 아이와 어른들은 어쩔수 없이 서서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벤치 앞쪽 통로에 약간의 공간이 있어서 조금씩 앉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앞에 있는 어른들이 뒤에 있는 아이들을 하나둘 안쪽으로 이끈다.

아이들이라도 보게끔 해주려고 말이다.


이런 배려들은 누가 시켜서한 것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지켜나갔으면 한다.


반면에 배려에 대해 아쉬움이 있을 때가 있다.

우리는 어린이나 노인을 사회적 약자라고 표현한다.

그 사회적 약자의 범위에 장애인과 임산부가 빠져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 너무 안타깝다.


지하철역 내외부에 있는 엘리베이터에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이 있지만 본인들이 먼저 타려는 사람들.

휠체어를 탄 장애인분들이 세상의 벽을 느끼게 하는 일반버스나 거리, 건물들.

버스나 지하철에서 서 있는 임산부를 모른척하고 앉아 있는 사람들.


그들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사회적 약자의 범위를 조금 넓힌다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거다.


우리가 조금 더 넓게 생각하고 받아들인다면 그들에게 더 쉽게 배려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

우리가 그러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를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내가 가진 행복을 뺏으려는 사람이 줄어든다.
그래야 내가 더 많은 행복한 순간을 맞이할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다.


우리 같이 생각하고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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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can do it?

It’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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