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야기]
의-하!
세상에는 의미 있게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
떡볶이집 할머니께 나는 의미 있게 사는 법을 배웠다.
나는 고등학교까지 부산에서 나온 부산 토박이였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금정구 구서동이라는 동네에 있었다.
내가 살던 곳은 서동이라는 곳이었다.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남산동이나 범어사역 근처에 살았다.
가끔 야자를 땡땡이 치고 밖에 나가면 구서동이나 남산동, 범어사역 근처에서 놀았다.
친구들과 종종 가는 떡볶이집이 있었다. 떡볶이집이라기보다는 자판이었다.
청룡초등학교 담벼락 앞에 있었다.
할머니 한분과 아주머니 한분이 각자 자판에서 떡볶이를 판매하셨다.
두 분 중에서 할머니쪽 자판이 장사가 더 잘 되었다.
아주머니쪽 음식을 먹어보지 않아서 맛의 차이로 발생한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경영방식의 차이로 할머니 자판이 장사가 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할머니는 학생들이 음식을 먹고 계산하려고 하면 물어보신다.
“니 몇개 뭇노?”라고 말이다.
그럼 나나 내 친구는 1,500원어치를 먹고 1,000원치라고 말씀을 드린다.
할머니는 우리가 몇개 먹은지 아실텐데, 1,000원만 받으신다.
어떨 때는 우리를 쳐다도 안 보시고 먼산만 보신다.
편하게 먹으라고 하신 것 같다.
그렇게 하면 안되는데, 식욕이 왕성한 나이에
하루 용돈이 1,000원이다보니 그런 잘못된 행동을 했었다.
스무살이 지난 다음에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주머니는 할머니와 다르게 정확하게 계산하신다고 친구가 그랬다.
그래서 학생들은 할머니 자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할머니가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손자뻘되는 배고픈 학생들이 마음 편히 먹게 해주시려는 그 마음과 배려가 말이다.
어제 페친 중 한 분께서 부산의 범어사 소문난 떡볶이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범어사 소문난 떡볶이 집은 잘 모르지만, 내가 겪은 떡볶이 자판 할머니 이야기를 드렸다.
그러자 그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 할머니는 은퇴하셨지만 할머니 옆에서 장사하시던 아주머니께서 앞에 점포를 내어 계속 이 떡볶이를 팔고 계시답니다.
할머니의 계산시스템은 계속 유지한 채로 말입니다.
그게 바로 범어사 소문난 떡볶이에요.
그 때 그 할머니의 마음이 고맙게만 느껴져서일까요.
요즘 떡볶객은 7개를 먹고도 10개로 계산합니다.
이거 하나만은 가슴 속에 간직하면 좋겠어요.
부산 사랑의 떡볶이 할머니가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하실 때
떡볶이 팔아서 번 수익금을 청룡초등학교에 기부하셨다는 것을.“
처음엔 그 분과 내가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할머니의 감동적인 사연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할머니는 일생을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일에 진심을 다하셨다.
맛있는 떡볶이와 오뎅을 정성스럽게 만드셔서 배고픈 학생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셨고,
가정 형편으로 학업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기부까지 하셨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진다.
나와 내 회사는 같은 일을 우리에게 의미 있도록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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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결론
세상에는 의미 있게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진다.
나와 내 회사는 같은 일을 우리에게 의미 있도록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Who can do it?
It’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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