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시간]
6살 때쯤으로 기억합니다.
저희 집 옆에 살던 녀석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름은 경태였습니다.
학교를 다니기 전이었기에 우리는 매일 만나서 놀았습니다.
그때는 컴퓨터도 없었고, 스마트폰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시절이었는데,
어쩜 그렇게 하루가 빨리 지나갈 정도로 재밌게 놀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술래잡기, 다망구, 진돌, 오징어 달구지,
고무치기, 구술치기, 야구, 축구 등등등
놀거리는 너무 많았습니다.
하다가 지겨우면 더 재밌는 방법을 만들어서 놀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놀이들을 더 재밌게 만들려는 노력이
아이들을 더 창의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우리 골목에는 정말 많은 가구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살던 옆동네에 대규모 공단이 있었고,
그곳에서 일하시려고 내 또래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이사를 오셨습니다.
이사 오려는 사람은 많은데 집은 부족하니,
다세대 주택, 단칸방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방 한 칸, 주방 겸 욕실 1개, 다락방 1개, 공용 화장실.
많은 집들이 그랬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 운이 좋아서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집에서 살았습니다.
100평가량의 꽤 넓은 마당이 있는 2층 주택에 살았습니다.
마당에는 그네와 미끄럼틀도 있었고,
배나무, 포도나무, 은행나무와 감자, 고구마, 호박을 재배하는 텃밭도 있었습니다.
제 생애의 첫 반려동물인 혼합종의 방울이와 진돗개 진이도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놀러 오면 술래잡기도 하고, 캐치볼도 하고 놀았습니다.
경태는 우리 옆집의 단칸방에 살았습니다.
항상 우리 집 마당에서 경태가 공부하는 다락방이 보였습니다.
녀석은 항상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제가 맨날 놀자고 해도 숙제를 하지 않으면 놀지 않았습니다.
저는 맨날 놀기만 했었는데…
경태는 손재주가 뛰어났습니다.
고무치기, 구슬치기, 땅따먹기를 하면 제가 항상 졌습니다.
제가 그런 것을 잘 못하기도 했지만, 동네에 서서도 손꼽히는 고수였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착한 친구였기에 제가 잃은 것의 절반은 돌려줬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 때문에 더 열심히 안 했던 것 같기도 하네요.
그때는 그랬습니다.
친구집이 잘 산다고 부러워하지 않았고,
친구집이 못 산다고 얕보거나 멸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친구라는 이름으로 지냈습니다.
요즘은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친구가 나뉜다는 뉴스를 보고 마음이 좀 그랬습니다.
암튼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어가며 알게 된 사실인데,
경태는 나보다 한살이 많았고, 한 학년이 높았습니다.
근데 우리는 친구였습니다.
너무 어릴 때부터 친구였기에 38년이 지난 지금도 그냥 그렇게 친구로 지냅니다.
경태와의 추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라면입니다.
어느 날 경태가 같이 라면을 먹자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외출하신 상태라 배가 고팠기에 너무 흔쾌히 응했습니다.
제가 아는 라면을 끓이는 방법입니다.
1. 물을 팔팔 끓인다.
2. 면과 스프를 넣는다.
3. 라면이 익을 때쯤 계란을 넣는다.
4. 불을 끄고 맛있게 먹는다.
하지만 경태의 방식은 달랐습니다.
1. 냄비에 물을 담는다.
2. 면을 잘게 부수고 스프와 함께 넣는다.
3. 물이 팔팔 끓으면 잘게 부순 면을 먹어본다.
4. 어느 정도 익었으면 계란을 넣는다.
5. 불을 끄고 맛있게 먹는다.
친구가 끓여준 라면은 라면계란탕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개발한 것이라고요.
밥솥에서 찬밥을 가져와서는 냄비에 넣습니다.
그리고 김치와 함께 먹으라고 했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방법이라서 당황했지만,
색다른 방법이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야! 이거 진짜 너무 맛있는데?”
“맞제? 내가 맛있다 했다니가.”
30년이 넘게 지났지만,
그때 먹었던 라면계란탕은 내 생의 Top 3 라면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