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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gers Jul 15. 2024

어렸을 때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나를 알아가는 시간]

나는 축구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하루도 빠짐없이 축구를 했습니다.


다행히 운동 신경은 꽤 있어서 축구를 잘했습니다.


친구들의 인정을 받으니 더 잘하고 싶어 져서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국민학교 4학년 때 우리 반은


전교에서 축구를 제일 잘하는 반이었습니다.


잘하는 애들이 많으니 얼마나 축구가 재미있었겠습니까.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축구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축구에 정말 몰입해서 했었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이 집에 가면 혼자 남아서 연습도 할 정도로 말입니다.



어릴 때 어머니는 엄청 엄격하셨습니다.


거짓말하는 것, 늦게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매일 축구를 하고 늦게 들어가니 하루가 멀다 하고 혼났습니다.


도대체 공부는 언제 할 거냐며, 커서 뭐가 될 거냐며 말입니다.


그럼에도 축구에 대한 열정은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여담이지만 공부를 못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 국민학교 4학년 때까지는 항상 올 수를 받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추석 연휴 전날 평일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날도 축구를 했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졌습니다.


밖은 어두워져 캄캄해졌습니다.



근데 그날따라 어머니께 혼나는 게 너무 싫었습니다.


평소처럼 집에 가서 혼나면 되는데,


유독 그날은 혼나기가 싫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집 대문 앞에서 30분을 서성이다가 끝내 집에 못 들어갔습니다.



한참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저는


친할아버지 댁으로 간다는 과감한 결정을 합니다.


왠지 할아버지댁에 가면 덜 혼날 거라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 댁까지는 버스로 대략 14개 정거장 정도 되었습니다.


예전 기억을 되짚어 보니, 그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어?! 생각보다 기억력이 좋네요.



판단이 서면 행동은 빠르게 하는 성격이 그때도 발휘되었습니다.


친할아버지댁으로 바로 출발했습니다.


그 당시 친할아버지 댁은 189번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온천장, 명륜동, 동래, 부산백화점을 경유하여 사직운동장에서 내렸습니다.



근데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걸어서 갔습니다.


그리고 189번 버스와는 다른 코스로 갔습니다.


충렬사라는 곳을 지나서 안락동, 동래, 부산백화점을 경유하여 사직운동장으로 갔습니다.


그 코스는 할아버지 댁에서 택시 타고 집에 갈 때 종종 가는 길이었습니다.


길눈이 밝은 편이라 길을 잘 기억하고 있어서 할아버지댁까지 걸어갔습니다.



거리를 측정해 보니 대략 8km 정도 되는데,


11살짜리가 정말 놀랍습니다.


다행히 할아버지댁까지 가는 길에 특별하게 위험한 요소는 없었습니다.


다만 가는 길에 목이 너무 말라서


부산백화점 1층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을 마셨습니다.


2시간 30분 정도 걸어서 10시쯤 할아버지댁에 도착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뉴스가 끝나는 9시 30분만 되시면 주무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소 의아한 부분이지만,


할아버지댁 현관은 열려있었고 중간문이 잠겨있었습니다.


그래도 가을이라 쌀쌀해진 날씨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엔 종이신문을 보던 시절이라 집집마다 신문지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현관에 수북이 쌓인 신문지를 꺼내 바닥이 깔고 몇 장은 이불처럼 덮었습니다.


이불만큼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덮을만했습니다.



새벽이 되자, 점점 추워졌습니다.


그래서 중간문을 두드리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불렀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 불이 켜지며 할머니가 나오셨습니다.


“누구요?”


“할머니, 저예요. oo이에요 “


”아이고 유예 네가 여기 있니.”


라시며 깜짝 놀라셨습니다.



집안으로 들어간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드렸습니다.


설명을 들으신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전화하셨고,


다음날이 추석 연휴이니 내일 부모님이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선택을 해서 그런 일이 생겼지만,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당장 혼나지 않아서는 좋았지만 뭔가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부모님은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하시고


선생님과 반 친구들에게 다 전화를 하셨다고 했습니다.


삐삐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고,


뉴스에 종종 아동 유괴에 대해 나왔으니 얼마나 놀라셨을까.


이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정말 죄송한 마음이 크게 듭니다.



다음날 할아버지댁에 오신 부모님은 특별히 혼내진 않으셨습니다.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만 하셨습니다.



정말 천방지축이었던 아이였지만,

그날 이후로 학교에서 말썽을 피워서

걱정시키는 일은 하지 말자는 다짐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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