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이 줄었어요.

[젤리의 제국]

by Changers

퇴사를 2주 앞둔 시점에 그에게 DM이 왔다.


“너와 PM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준 것 고맙다.


그동안 나간 그 어떤 직원들보다 너네가 최고다.


어떻게 배려해주면 좋을까를 한참 고민했다.


그래서 너네 퇴직금을 2월말까지 급여로 지급하기로 했다.


너네가 나가서 뭔가 새로운 준비를 하기전까지 4대보험이 필요할텐데,


그걸 회사에서 대신 해주려고 한다.”


“넵,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내가 얼마나 수가 빠른 사람인지 알았음에도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다.


무슨 배려를 해준다는 것인지 나는 이해가 안되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돈 몇푼으로 그와 논쟁을 벌이고, 그걸로 회사 분위기가 나빠지는 것이 싫었다.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정말 잘못된 생각이었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걸 바로 잡지 않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안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젤리의 제국에서 퇴사하고 부산에서 꿀맛같은 휴가를 보냈다.


며칠 아프기는 했지만, 원없이 먹고 놀고 잤다.


지난 2년동안의 고생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그렇게 2주간을 보냈다.


평생 휴가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내 통장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몸과 마음을 다잡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내 방 책상에 앉아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적었다.


그걸 위해서 얼마만의 시간과 돈이 필요한지도 적었다.


그가 나에게 배려해준 퇴직금까지 포함해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회사를 다닐 때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이 덜했지만,


이제부터 내 미래는 모든 것이 불확실했기에 걱정이 됐다.


인생은 원래 불확실한 하루의 연속이라며,


이제는 내가 원하는대로 인생을 살 수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2016년 한해동안 내가 도전할 것들을 정리하고,


그 중에서 꼭 해야할 일 1가지를 추렸다.


그 1가지를 상반기동안 집중해서 하기로 했다.


그러나 삶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생각지 못한 변수가 생겼다.



부사장에게 연락이 왔다.


“잘 지내시죠?”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부사장님 일 많으실텐데 잘 지내시죠?”


“잘 지낸다고 말씀드리기가 쉽지 않네요. 아시다시피 일이 워낙 많으니까요.”


“그렇죠? 고생이 많으시네요.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아 별건 아니고, 퇴사 처리 관련해서 말씀드리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아 그래요? 퇴사 처리를 언제 하실 예정일까요?”


“2월 26일 15시까지 사무실로 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길지 그때까지는 몰랐다.



2월 26일이 되었다.


그를 다시 마주치기 싫었지만,


마무리를 잘 지어야 나중에 뒷탈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미소의 가면을 쓰고 사무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형, 어서와요.”


“PM님 어서오세요.”


“다들 잘 지내셨죠?”


“네, 저희는 잘 지내고 있어요. 잘 지내시죠?”


“네,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대표님은요?”


“아, 조금 있으면 도착하신데요. 회의실에 가셔서 잠시만 기다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그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잘 지냈냐?”


“네, 잘 지냈습니다. 잘 지내시죠?”


“정신없이 바쁜 것 말고는 별 일 없다. 얼마전에 빡친거 말고는 말야.”


“무슨 일 있으세요?”


“너랑 같이 나간 PM 있잖아.


걔가 대뜸 연락와서 권고사직처리해주면 안되겠냐고 하는거야.


아니 지가 나가겠다고 하고 권고사직으로 해달라고 하니 기분이 팍 상하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안된다고 했지. 내가 왜 권고사직을 처리해줘야 하냐? 안그러냐?”


“아… 네…”


우리에게 고생이 많았다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고 최대한 너네를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했던 그의 말이 떠오르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부사장한테 말 못 들었지?”


“네, 못들었습니다.”


“너네 퇴사일자를 오늘 날짜로 하기로 했다.


원래는 2월 28일로 하기로 했는데 그렇게 바꾸기로 했으니 참고하렴.”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퇴직금 대신 급여로 2월말까지 챙겨준다고 하더니 그마저도 이틀치를 빼려고 하다니.


PM이 권고사직 처리 요청한 것때문에 기분이 상해서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PM만 그렇게 하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신고 당할 수 있으니 나까지도 그렇게 한 것 같았다.


참 끝까지 멋도 없고, 쪼잔하고,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그에게 제대로 한 소리를 해야 했으나,


이틀치의 급여 때문에 내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물론 나중에 그 선택을 후회했지만 말이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겠습니다.”


“그럼 부사장 오라고 할테니, 잘 마무리 지으렴.”


“네, 알겠습니다.”


그가 나가고, 나는 부사장과 함께 퇴사 절차를 마무리 지었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다시 사무실로 가서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갔다.



“저 들어갑니다. 수고하세요.”

“그래 잘 가렴.”

“들어가세요.” X 7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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