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의 제국]
몇 달 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원래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지만, 그날따라 전화를 받게 되었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아, 저 경영지원실장입니다.”
“아, 네. 무슨 일로 전화 주셨을까요?”
“이렇게 글을 쓰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요.
혹시 합의를 원하신다면 저희가 합의를 하고자 해서요.”
“저는 어떤 물질적인 합의를 원하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그가 다른 팀원들에게는 폭언, 폭행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지난날의 잘못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바랍니다.”
“정말 그것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네, 대표님께 전달드리겠습니다.”
경영지원실장이 그에게 어떻게 말을 전달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뒤로 그와 그의 회사 팀원들에게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다.
역시 그는 절대 변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몇 년이 지난 후,
또다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OO경찰서 OOO경장입니다. OOO 씨 되실까요?”
“네, 맞습니다.”
나는 순간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
요 녀석 나한테 잘 걸렸다고 생각하며 어떻게 경찰서로 인계를 할까 고민하던 중,
그다음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혹시 예전에 근무했던 회사의 OOO 씨 아십니까?”
경찰이 그의 이름을 말하며 내게 아냐고 했다.
너무 몰랐다.
보이스피싱이 아니고 찐이었다.
“네, 잘 압니다. 무슨 일로 연락을 주셨을까요?”
“OOO 씨께서 고소를 당하셔서 사실 확인차 연락을 드렸습니다.”
“제가 어떤 부분을 말씀드리면 될까요?”
“지금부터 말씀하시는 내용은 진술서로 작성될 예정입니다.
아시는 내용만 말씀해 주시면 되고, 모르시는 내용은 모른다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경찰은 내게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서 그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파악하려고 했다.
나는 과감 없이 그대로 이야기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플랫폼 의자에 앉아서 20분 넘게 통화했다.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누가 고소를 한 것인가요?”
“그건 저희가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진술을 했는데 고소인이 누군지 말씀 못해주신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음… OOO 씨입니다.”
그에게 뺨을 맞거나 폭언을 당했던 디자이너였다.
그녀가 퇴사하고 그를 고소한 모양이었다.
그녀에게 연락을 해봤다.
하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뭔가 사정이 있겠다 싶어서 그 뒤로 연락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디자이너에게 연락이 왔다.
“오빠,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어? 정말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혹시 잠시 말씀 나누실 수 있을까요?”
“응, 무슨 일이야?”
“사실 제가 그 대표를 민형사상 고소를 했어요.”
“아 정말? 안 그래도 몇 달 전에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어서 진술을 하면서
네가 고소했다는 것은 알게 되었어.
쉽지 않았을 텐데 큰 결정을 했구나”
“진술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네, 말씀처럼 쉽지 않았지만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어요.
관련해서 오빠께 도움을 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혹시 차주에 저와 제 변호사님과 함께 뵐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내가 7시 퇴근하니까 집 근처에서 8시에 보는 걸로 하자.”
“정말 감사해요. 그럼 그때 뵐게요.”
나는 예전 마녀 사냥 이후로 다시는 모른척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약자의 편에 서서 어떻게든 도움을 줄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며칠 후,
디자이너를 만났다.
“이게 무슨 일이고. 좋은 일로 만나야 하는데 참.”
“오빠, 잘 지내셨죠?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면목이 없네요.”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무슨 말이야.”
나, 디자이너, 변호사님과 함께 가까운 커피숍으로 이동했다.
“내가 퇴사한 이후에 듣기로는 바뀌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하던데, 맞아?”
“중간중간 덜해진 기간이 있었지만, 예전하고 큰 차이는 없어요.”
“아 그래? 역시 사람은 고쳐 쓸 수가 없구나. 역시 나는구나.”
“네…”
“그래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
“재직하실 당시에 그가 직원들에게 했던 내용들을 기억나는 대로 말씀해 주세요.”
나는 내가 기억나는 모든 것들을 쏟아냈다.
한참을 받아 적으시던 변호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상세하게 잘 기억해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부탁하나를 드려도 될까요?”
“네,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저희가 말씀하신 내용을 자필로 써주시는 것이 필요한데요.
저희에게 말씀해 주신 내용을 자필로 작성해서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당연히 가능하죠.”
“오빠, 그럼 다음 주까지 작성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번주내로 작성해서 줄게.”
“너무 감사해요. 오빠가 작성 다하시면 제가 받으러 갈게요.”
“그래, 알겠어.”
“바쁘신데 시간 내어주시고 이렇게 큰 도움을 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야. 예전에 마녀사냥 당한 후 정말 많이 후회했고,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
이번에 꼭 그가 벌을 받고 죗값을 치르길 바란다.”
“꼭 그럴 수 있도록 잘해보겠습니다.”
며칠 후,
나는 디자이너를 만나 자필로 쓴 서류를 전달했다.
“오빠, 정말 정말 감사해요.”
“그래, 네가 꼭 이겨서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길 바랄게.
꼭 소송에서 이겨.”
“네, 오빠. 감사해요. 소송 잘 끝내고 연락드릴게요.”
그 뒤로 몇 달이 지나도 디자이너에게 연락이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항상 응원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소송사실도 잊고 있을 무렵,
법원에서 등기가 하나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