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뒤에 남는 감정들

기록보다 어려운 건, 사람과의 거리였습니다.

by 밍뚜



내과 간호간병통합병동에서는
‘팀 간호’가 유독 중요했다.
특히 I/O 체크는 대부분 간호조무사 선생님들이 맡기 때문에,
담당 팀 환자 파악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날도 A팀 차지 선생님께 가서 I/O 용지를 받았다.
누구를 체크해야 할지 표시돼 있었고,
그걸 기준으로 소변기, 대변기 사용 안내까지 해야 했다.

식사, 물, 간식 등 ‘IN’ 항목은
환자 침대카드에 꽂힌 별도 용지에 작성해 두면,
라운딩 중인 간호사 선생님이 확인하셨다.
우리는 ‘OUT’만 I/O 용지에 기록하면 되는 구조였다.

거동이 가능한 환자에게는 대변기를 제공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화장실 가시면 변기 커버 열고,
그 안에 이 대변기를 넣어서 보시면 돼요.
끝나면 제가 와서 소변기에 옮겨서 양을 체크할게요.”


처음엔 사용을 어려워하시는 분도 계셨지만,
한두 번만 설명해드리면 금세 익숙해지셨다.

문제는… 소변기 위치였다.

초기엔 침상 아래쪽에 뒀지만,
비위 상한다며 곧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그래서 “청소도구실이 화장실과 가까우니 거기에 두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렇게 옮겨뒀더니 이번엔 청소 여사님이
“이동에 방해된다”고 말씀하셨다.

화장실에 맞은 편에 있는 처치실이라고 붙어 있는 팻말 속 소모품 보관 창고에 두면
“대변기가 안 보여서 그냥 소변 봤다”는 말이 나왔다.

의견을 취합하고 불편함을 귀담아 듣다보니 결국, 아무 데나 둘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합의점은,
화장실 입구 쪽 창틀 공간이었다.
공간에 여유 있고, 환자분들도 찾기 쉬우니 괜찮을 것 같았다.


“일단 이렇게 사용해보고,
또 문제 생기면 그때 다시 생각해봐요.”


그렇게 이야기하며 마무리됐지만,
실제로 ‘환자 편의 + 정확한 기록 + 컴플레인 방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위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날, 한 환자분이 말씀하셨다.
꽤 오래 불편함을 참아오신 눈치였다.

부릅뜬 눈, 팔짱 낀 자세, 찡그린 미간.


“선생님, 화장실 앞에 대변기 두는 게 맞나요?
너무 위생적이지 못하잖아요.
남이 쓴 걸 전시해놔야 하나요? 내가 웬만하면 이런 말 안 하는데,
도무지 개선될 기미가 안 보여서 그래요.”


그 말투에서 느껴졌다.
‘나 그냥은 안 넘어가’ 포지션.

마스크 안쪽에서 입술을 꾹 깨물고,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환자분, 많이 불편하셨죠. 바로 치워드릴게요.
신장 문제로 소변량 체크하시는 분이 계셔서 편의를 위해 두었던 건데요.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 애쓰며,
미간을 펴고 최대한 부드러운 톤으로 말했다.


“네, 주의해주세요.
진작 치웠으면 됐을 걸, 왜 이렇게 질질 끄는지 몰라 정말.”


만약, 서로의 감정싸움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면
수 간호사 선생님께 보고까지 들어갔을 상황.
여기서 마무리된 게 천만다행이었다.


이후, 교대에 들어온 이브닝 번 선생님께 해당 상황을 인계했다.

창가에 올려뒀던 대변기는 일괄 수거했고,

화장실 옆 2단 카트 아래칸에 보관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한동안 그 대변기는 제자리를 못 잡고 병동 이곳저곳을 떠돌았다.(지금 생각해보면 발발 돌아다녔던 그 초록색 대변기가 웃겼다 흐흐)


기저귀를 쓰는 환자분은 오히려 I/O 기록하기 수월했다.

미리 새 기저귀의 무게를 재뒀다가,
사용 후 무게에서 차감하면 정확한 수치가 나왔다.

처음엔 번거로웠지만,
나중엔 브랜드별 속기저귀 무게를
자연스레 외우게 됐다.


‘이 브랜드는 좀 도톰하네, 40g. 인계용지에 적어둬야겠다.’


기저귀 종류도 다양하지 않아 1층 편의점이나 병원 앞 마트에서 자주 쓰는 제품 위주로 외워졌다.

기저귀 케어는 ‘정성’의 영역이었다.

어떤 환자분은 물티슈로 닦은 후 갑 티슈로 톡톡 마무리.


어떤 분은

“며느리가 로션 사 왔는데, 꼭 이거 발라줘야 해요.”


또 어떤 분은 특이하게도

“깨끗이 닦였는지, 시원하게 봤는지
꼭 물어봐주세요. 그래야 마음이 편해요.” 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셨다.


환자마다 기준도, 케어 방식도,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럴 때 현타 안 오면 보살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사람이고, 감정도 있고, 눈물도 있다.
속상하고 서운한 날도 많았다.

어떤 날은 너무 부당하다고 느껴져
결국 참지 못하고 말다툼을 했던 기억도 있다.

돌아온 건 수 선생님과의 면담과 경고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조금만 더 어른스럽게 말했더라면...’
‘쿠션어 한 마디만 더 넣었더라면...’


그런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결국엔,
이 모든 것도 직장 경험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리고 마음속에 새긴다.

부당함에도 너무 날 서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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