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한 밤

몸은 쉬어도, 마음은 자꾸 병실로 향했습니다.

by 밍뚜


정형외과 간호간병통합병동에서 나이트 근무를 하던 날이었다.

이브닝번 선생님과 교대를 하며 인계를 받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가 나왔다.


“613호 3번 자리 할머니가… 낙상하셨어요.”


침대에서 내려오다 엉덩방아를 찧으셨다고 했다.
새벽에 원장님께 보고 드린 후, 바로 엑스레이 촬영까지 진행되었고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받았다고 했다.

차지 선생님이 보호자에게 낙상 관련 연락도 드렸고,
전화상으로는 보호자가 크게 화를 내진 않았다고 전해 들었다.

이브닝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당부하셨다.

“613호 할머니, 오늘따라 좀 불안해요. 라운딩 자주 돌고 잘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퇴근하셨고,
나는 인계를 마치자마자 라운딩을 시작하며 613호 병실로 향했다.


할머니는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셨다.
병실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시며 제법 웃음기도 보였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할머니를 따로 불러 말씀드렸다.

“어머님, 오늘 낙상이 있었던 만큼 이후에는 화장실이나 상두대 사용하실 때 꼭 호출벨 눌러주세요.
혼자 움직이시면 위험하세요.”


고개는 끄덕이셨지만,
문제는 호출벨이었다.

기본 호출벨은 침상 머리맡에 고정돼 있어
움직임이 불편한 환자분들에겐 사용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마련한 게 있다.
목걸이형 호출벨.

식당 테이블 벨처럼 생긴 걸 줄로 묶어
목에 걸 수 있도록 만든 거였다.
움직임이 제한적인 환자분들을 위해 만들어 뒀는데,
재고가 많지 않아 10개 남짓 있었다. 그날도 613호 할머니께 그중 하나를 드렸다.


모두가 잠든 밤이 깊어갔다.
2시간마다 병실을 순회하며 환자 상태를 확인했다.
주무시는지, 사이드레일은 올라가 있는지, 통증은 없는지.

병실은 어두웠고, 작은 손전등 불빛만 의지해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고개를 빼꼼 내민 할머니가, 병실 문 쪽 바닥에 앉아 계셨다.
복도 쪽을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복도 불은 꺼져 있고, 병실도 소등된 상태.
그 어두운 공간에서 얼굴만 쏙 튀어나와 있으니 얼마나 놀랍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오시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혼자 움직이지 말라고 호출벨까지 드렸던 분인데...

결국, 또 낙상이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낙상이라는 사실에,
마스크 안쪽으로 한숨이 푸스스 흘러나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호출벨을 눌러 선생님들을 부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병실에 이미 내가 들어간 걸 봐서일까, 바로 오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복도를 향해 외쳤다.


“선생님!!”


그제야 우르르 몰려오셨다.
사람 넷이 붙어 겨우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웠다.

차지 선생님과 액팅 선생님이
번갈아가며 문진을 이어갔다.


“혹시 침대에서 떨어지셨어요?”
“아니면 미끄러지셨어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 엉덩이, 손목 괜찮으세요?”


누가 봐도 낙상이었지만,
할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셨다.


“아이고, 나 안 아파. 엉덩방아도 안 찧었어.”


일단은 화장실에 가시려다 내려오신 듯해서
그대로 모셔다 드렸다.

환의(환자복)를 조심스럽게 내려드리며
발적이나 피부 벗겨짐, 멍 등을 살폈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간호사실에 상황을 공유했고,
간호기록지에도 낙상 내용과 상태를 빠짐없이 남겼다.


그걸로 끝났냐고?
아니었다.

새벽 내내 할머니는
햄스터처럼 침대 탈출을 시도하셨다.

침대 옆에 놓아드린 목걸이 벨은 어느새 이불속으로 사라졌고,
할머니는 이불을 걷어내고 엉덩이부터 밀며 조심조심 몸을 움직이셨다.

처음엔 말로 설명드렸다.

“어머님, 위험하니까 호출하셔야 해요. 혼자 움직이시면 안 돼요.”


그러나 설명이 통하는 듯, 아닌 듯.
인지가 온전히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흐려진 것도 아니었다.

결국 나는 간호사실에서 의자를 하나 들고 와
할머니 침상 옆에 자리를 잡았다.


밤샘 전담 마크.


보통은 이렇게까지 하진 않지만,
오늘은 도저히 불안해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님, 침대가 많이 답답하세요?”


할머니는 고개를 기울이며 말씀하셨다.

“그건 아닌데… 화장실 좀 가고 싶어서.”


화장실로 모셔다 드렸지만
막상 가시면 또 안 마렵다고 하시고,
돌아오면 다시 이불을 걷어내신다.

왜 이렇게 계속 침대를 벗어나려 하시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낙상의 기억보다, 평생 몸에 익은 습관이 먼저였는지도 모른다.


‘도움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불편하신 분들.
‘혼자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듯 움직이시는 분들.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나 스스로에게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꼭 중요하게 생각하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새벽 4시쯤 되어서야
할머니는 이불을 끝까지 덮고 조용히 잠드셨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이불을 보고 나서야
나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5시부터는 본격적인 아침 업무.

V/S 체크, 수술 환자 수술복 갈아입히기,
이동 준비, 기저귀 교체…

몸은 이미 축 늘어져 있었지만,
여전히 마음은 병실 쪽으로 자꾸만 기울었다.

틈날 때마다

다시 확인하러 뛰어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아침 데이번 선생님께 인계를 드리며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진짜… 어젯밤에는 마음이 탈탈 털렸어요.
613호 할머님, 꼭 잘 부탁드릴게요.”

그 말을 들은 데이번 선생님이
어깨를 쓸어주며 한마디 건넸다.


“고생했어. 진짜 고생했네. 이제 얼른 퇴근해요.”


그 말에
괜히 뭉클했다.

이런 날도,
결국은 지나간다.

이전 07화기록 뒤에 남는 감정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