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이동 보조가 아닌, 누군가의 첫걸음을 함께하는 일에 대해.
신경외과와 정형외과가 함께 있는 간호간병통합병동에는
조금 특별한 아침 루틴이 있다.
오전 8시. 각 과의 원장님이 회진을 도는 시간.
그 시간이 다가오면 병동은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동 보조를 마무리하고, 아이스팩을 돌리고, 환자들에게 높은 베개를 받쳐 자세를 잡아드리는 게 우선이다.
특히 허리나 고관절을 다친 분들은 반드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자세 하나하나가 중요했다.
아이스팩은 수술 후 붓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대어드릴 때도 있지만,
수술 전 이미 부종이 심해 수술이 가능한 상태를 만들기 위해 쓰는 경우도 많다.
병동에서는 전용 수건을 만들어 두었고, 아이스팩을 1~2장 감싸서 발목이나 무릎 쪽에 얹어드린다.
그런데 이게 자주 떨어진다.
움직일 때마다 툭툭 떨어져 버리기 때문에, 남은 붕대를 길게 잘라 끈처럼 묶어 고정해 둔다.
그러면 훨씬 덜 불편하시고, 냉찜질도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냉찜질은 2시간마다 라운딩 할 때 교체해 드리는데,
너무 차갑거나 불편해하시는 경우엔 조금 더 텀을 두고 조절한다.
그렇게 분주한 아침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원장님이 회진을 돌기 시작하신다.
그리고 회진 중에 떨어지는 ‘운동 처방’은
누군가에겐 감격에 가까운 ‘해방 선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한 달 넘게 침상에만 누워 지내셨던 분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그날도, 다발성 복합골절로 오랜 시간 침상에만 계셨던 어머니께 드디어 첫 보행 처방이 내려졌다.
그동안 양치도, 식사도, 용변도 전부 누운 채 해결하셨기에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우셨을까.
보조기 처방이 나오면, 병동에서는 우선 공용 보조기로 연습부터 시작한다.
협약된 의료기 상사에서 환자 몸에 맞게 제작해 오기까지는 며칠이 걸리기 때문이다.
처음 보조기를 착용하는 순간은
환자도, 보조자도 다 같이 긴장하게 된다.
보조기를 입히기 위해 환자의 자세를 살짝 틀고, 허리를 감싸듯 밀어 넣은 뒤 벨크로 밴드를 조여야 한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손기술보다 ‘말’이다.
“어머니, 이제 손을 반대쪽 난간을 잡아서 돌아볼게요. 좀 불편하실 수 있는데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프시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자 살살~"
짧은 한마디지만, 이 말이 주는 용기가 크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긴장한 채로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렇게 보조기를 착용하고, 침상에서 일어나
워커에 의지해 조심스럽게 첫 발을 내딛는 그 순간—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공기가 흐른다.
사실 ‘어머니’라는 호칭도 그냥 나온 말은 아니다.
병원에서는 ‘환자분’이라고 불렀다가 “내가 꼭 병자냐?” 하며 기분 상하시는 분도 계시고,
반대로 ‘어머니’, ‘아버지’ 같은 가족 같은 호칭을 불편해하시는 분도 계신다.
한 번은 “왜 그렇게 부르냐며” 하며 버럭 화를 내신 분도 계셨다.
그 일 이후로는, 입원 첫날 환자의 성향을 보고 조심스럽게 호칭을 정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어머니’라는 말 안에는 정중하고 친근한 마음이 담겨 있지만,
그 한마디가 마음을 열 수도, 닫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로 사용하는 보조기는 TLSO, LSO, 나이트 보조기, 이렇게 세 가지.
TLSO: 허리 전체를 감싸는 기본형
나이트 보조기: 세 개의 밴드로 꽉 조이는 형태
LSO: TLSO에서 앞판을 뗀 간편형
보조기를 착용한 어머니 옆에는
미리 키 높이를 맞춰둔 워커바를 갖다 놓는다.
처음 워커를 보신 분들은 유모차처럼 다루려는 습관이 있어서
엉덩이를 뒤로 빼고, 허리를 구부리려 하신다.
그럴 때는 이렇게 말씀드린다.
“어머니, 엉덩이 너무 뒤로 빠지면 안 돼요.
팔을 워커에 걸치고, 체중을 살짝 앞으로 실으면서 허리를 쭉 펴볼게요!”
보행 중엔 계속해서 컨디션을 살핀다.
“다리 괜찮으세요?”
“어지럽지는 않으시죠?”
모든 반응이 ‘괜찮다’ 면, 오늘의 컨디션은 꽤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다리가 좀 당겨요” 같은 말씀을 들으면
회복 상태에 따라 추가 시술 여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보행 연습이 끝나면 낙상 방지를 위해 꼭 당부드린다.
“변기에서 일어나실 땐 꼭 앉은 상태에서 호출벨 눌러주세요.
편하게 부르셔도 돼요. 혼자 일어나시면 위험해요!”
그러면 늘, 쑥스러운 웃음과 함께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혼자도 할 수 있다 아이가. 얼라도 아니고 뭐 하러 그런 걸 눌러~”
“전혀 그렇게 생각도 안 해요! 저는 어머니 자주 뵈니까 너무 좋은걸요?”
서로 가볍게 웃고 나면, 간호사실을 지나 병실로 돌아간다.
보조기 착용 후 첫 보행이 끝난 것이다.
운동 처방이 나온 날엔,
팀 차지 선생님께 환자의 거동 상태를 보여드려야
다음 근무자에게도 인계가 수월하다.
그러니 그날의 보행은 꼭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어머니~ 처음 걷는데 너무너무 잘하셨어요!
늦어도 모레쯤엔 의료기 상사 사장님이 오셔서
어머니 보조기 맞춰주실 거예요.
이제 편하게 누워서 쉬세요~”
이 마지막 멘트까지 전하고 나면
하루의 ‘보조기 루틴’이 마무리된다.
물리적으로는 제법 힘든 일이지만,
보행 후 아이처럼 웃으시는 어머님들을 보면
속이 뭉클해진다.
“아, 이 맛에 근무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