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마주한 나의 그림자

조립하고 깨닫고, 조금 더 성장하다

by 밍뚜



청년센터 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A 씨와 B 씨를 자주 마주하게 됐다. 그들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고, 강의를 들을 때도 자연스레 같은 조를 이루곤 했다. 특히 B 씨는 현직 간호사였다. 대학교 3학년 무렵부터 이 길이 맞지 않는다고 느꼈지만, 이미 실습과 국시까지 끝난 상황이라 방향을 틀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래서 진로를 다시 고민하고자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나는 그 말이 너무 공감됐다. 병원 일이 체질에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맞추기 힘든 사람이 있다. 대부분은 일찍 그만두지만, B 씨는 지금 근무 중인 병원에서 선생님들이 많이 챙겨주고 프리셉터도 좋다며 쉽게 그만둘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조심스레 물어봤다.


“선생님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하세요?”

“무엇을 할 때 즐겁다고 느끼세요?”
“혹시 이 질문이 불편하게 들리시진 않나요?”


B 씨는 한참을 고민했다. 미간이 찌푸려지고 시선이 바닥에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내 질문을 곱씹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저는 글을 쓸 때 가장 즐거워요. 힘차게 뛰고 땀 흘리는 러닝에서도 벅참을 느끼고요. 맛있는 걸 먹으면서 수다 떨 때도 행복해요. 사실 저도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조차 몰랐거든요. 남들 따라서 공부하고, 남들 따라서 직업을 가졌는데… 안정적이지도 않고 어려운 길이더라고요. 선생님도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세요. 너무 고민할수록 길을 더 잃게 되니까, 우리 프로그램 이름처럼 ‘진로의 정석’으로 한번 찾아봐요.”


그날 나는 내 이야기를 공유 함으로써 도움을 준 줄 알았고, 그래서 꽤 뿌듯했었다.


같은 시간, 함께 프로그램을 듣던 A 씨에게는 내가 만든 포트폴리오를 조심스레 보여줬다.

A 씨는 공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이미 탄탄한 인턴 경력과 자격증, 어학 준비까지 끝낸 상태라 객관적인 평가를 들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어때요?”
“음… 뭐랄까, 전체적으로 무난해요. 근데 글이 좀 많아서 피로도가 높달까?”
“아……”
“나쁘진 않은데 그냥 그래요.”
“네… 봐줘서 고마워요.”


그 말에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상대가 보통 “처음인데 이 정도면 대단해요”라든가 “정말 잘 만드셨네요”라고 말해주길 기대했는데, 그건 내 바람일 뿐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결과물이 부족하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쏟은 시간과 정성만큼은 인정받고 싶어 했다는 걸. 늘 스스로에게는 너그럽되, 결과만큼은 지나치게 깐깐하게 굴었다는 걸. 만족하지 못하면 압박감이 몰려왔고, 그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어려워하면서도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만 했다는 걸.


‘아… 나는 객관적으로 부족한데도 칭찬만 바라는 애처럼 굴었구나.’


서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충고를 비난으로만 받아들이고, 내 아집에 갇혀 있던 시간들이 이제 와서야 아쉽게 다가왔다.


4주간의 프로그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가상의 자동차 회사를 운영해 보는 활동이었다.

우리 팀은 단 세 명. 나는 CEO이자 구매팀장이자 인사과장, A 씨는 영업팀장이자 CFO, B 씨는 CTO이자 안전보건팀장을 맡았다. 자동차는 도안을 보고 레고로 만드는 방식이었고, 규칙은 단 세 가지였다.


재무제표에서 영업이익을 설정한 뒤 제한 시간 안에 레고 판매


도안 힌트는 구매팀장만 확인 가능


조립이 틀리면 판매단가 차감


제한 시간은 1시간. 이론상 최대 15대를 조립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초보였고, 도안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결국 8대만 완성했다.

그 뒤로는 아쉬움과 실수가 겹치면서 서로를 탓했고, 분위기가 점점 냉랭해졌다. 그 와중에 나는 ‘왜 아무도 내 노고를 인정해주지 않지? 왜 내 말은 들으려 하지 않지?’ 하는 생각에 속상함을 삼켰다.

추후 진행된 심리검사에서야 알았다. 그날 느꼈던 서운함, 인정받고 싶은 마음, 방향을 못 잡고 스스로를 괴롭히던 내 모습까지… 모든 게 이어져 있었다는 걸.


마지막 활동은 DIY 수납함 만들기였다. 합판을 사포로 다듬고, 나사를 조이고, 수평을 맞추며 칸을 조립했다. 짧게 오가는 도움과 수다 속에서 굳어 있던 공기는 조금씩 풀렸다.

완성된 6칸짜리 수납함을 집으로 가져왔다. 볼 때마다 그 안에는 나의 부족함도, 함께했던 시간도, 시행착오마저도 켜켜이 스며 있다. 언젠가 더 단단해질 내 모습을 위한 밑그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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