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멈춘 청춘

불안 속에서도 같은 길 위에 있던 청춘들

by 밍뚜


2025년 3월,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근무지는 종합병원 외래 파트였고, 당시 살던 곳은 경북이었다. 새벽마다 택시를 타고 역사로 가 대경선을 탄 뒤, 다시 버스로 환승해 출근하는 일상. 왕복만 세 시간, 하루가 통째로 소모되는 듯했다. 이사를 하고 싶었지만 부동산 계약 기간이 애매하게 남아 있었다. 피곤해도 어쩔 수 없이 출근했고, 퇴근 후엔 틈틈이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직장과 가까우면서도 예산 안에 맞는, 깨끗한 집을 찾는 게 하루의 또 다른 숙제였다. 신경 쓸 건 많고, 시간은 늘 모자라니 체력적으로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너무 섣부르게 타지 취업을 결정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더 이상 교대 근무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 그 마음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병원 사람들과의 관계는 쉽지 않았다. 병동보다 또래가 많았고 동갑인 선생님도 있었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여유 인원조차 없어 모두가 1인분, 아니 1.5인분씩 해내야 했다. 그 속에서 숙련되지 못한 내가 낀 자리는 늘 죄책감과 압박감으로 가득했다.


근무 2주 차, 업무는 기본 검사, 예약 변경, 환자 응대, 서류 안내, 전화, 약 설명까지… 많고도 많았다. 무엇보다 능숙하게, 부드럽게 해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자꾸 버벅거렸다. 그날 책임 간호사 선생님께 불려 가 크게 혼났다. 검사할 때 불성실해 보였다는 이유였다. 그다음 주엔 딱딱한 말투 때문에, 또 다음 주엔 내가 검사한 부분을 못 믿겠다는 이유로… 매번 다른 이유로 지적을 받았다. 결국 "여기랑 안 맞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다. 마음은 잘하고 싶은데, 현실은 따라주지 않았다.

나는 팀에 짐이 되는 사람 같았다. 돼먹지도 못한 사람이고 쓸모없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 퇴사를 결심했다.

후회는 없었다.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내 나이 서른에 내린 첫 ‘자의적 퇴사’. 계약 만료가 아닌 스스로 내린 결정은 멈춤의 순간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공백은 곧 불안으로 이어졌다.
뭐라도 해 먹고살아야 하는데, 30살이란 나이에 여전히 전전하는 게 맞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래도 “거긴 태움이 심했어”라는 합리적인 이유로 나를 위로했다.


4월부터는 타지에 홀로 남았다.
“어쩌지? 이대로 있어도 괜찮은 걸까?”

정답을 아는 누군가가 나타나

"이 직업을 해봐라",

"이런 사람들은 피하라" 가르쳐주길 바랐다.

나에게 쉼은 여유나 힐링이 아니었다.

공백 기간을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했고, 그걸 증명해야 했다.

그 치열한 고민 속에서 청년센터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이름은 ‘취트키 진로의 정석’. 매주 수요일 오후, 강의와 활동이 이어졌다. 그곳에서 다양한 청년들을 만났다.


지금 하는 일이 맞지 않아 다른 길을 찾고 싶은 청년,
알바만 이어오다 막막해져서 준비가 필요하단 청년,
그저 또래의 고민이 궁금해 찾아온 청년.


우린 함께 활동하며 감정을 들여다보고, 취업에 직접 도움이 되는 강의도 들었다. 기록한 걸 팀원들과 공유하다 보니, ‘아, 이게 내 안에 있었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큰 위로는 이거였다.

‘나만 불안한 게 아니었구나.’

서른 살 먹고도 헤매는 게 나만은 아니구나.
그 동질감 하나만으로도 숨이 트였다.


그때 만난 청년 중 한 명은, 청년센터와 더불어 상담을 다니고있다고 했다.
“꼭 심각한게 아니라도, 마음이 버거울 때는 누군가 전문적으로 들어주는 게 필요하다”는 그의 말이 오래 남았다.
불안을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삶을 버텨내기 위한 신호로 바라보는 시선.
나도 언젠가는 그 선택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