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리듬
청년 프로그램을 수료하고 나니, 이제는 현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인턴 공고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나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미래내일 일경험’, 또 하나는 구직 사이트에서 직접 공고를 뒤지는 방식이었다.
나는 미래내일 일경험 인턴을 간절히 바랐다. 근무 기간도 길고, 월급도 준수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지역, 내가 원하는 직무 공고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공고를 새로고침하면서, ‘혹시 내가 뭘 놓친 걸까? 더 좋은 방법이 있는 건가?’ 자책까지 하게 됐다.
하루가 가고, 한 주가 가고, 한 달 반이 지났을 때였다.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면접 보러 오라는 곳이 두 군데였다. 하나는 유통직무 인턴, 또 하나는 공단병원의 진료지원 인턴.
나는 고민에 빠졌다. 집에서 15분 거리의 회사로 갈 것인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갈 것인가. 둘 다 원하는 직무가 아니라면 차라리 월급이라도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건을 비교해 봤다. 주 5일,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 교대 근무도 없고, 월급도 더 많았다.
결국 나는 익숙한 길을 택했다. 공단병원의 진료지원—중앙공급실 인턴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중앙공급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외부 신발을 벗고 내부 슬리퍼로 갈아 신고, 수술 모자를 눌러쓰고, 공급실 유니폼으로 갈아입는 것. 마치 공장의 품질팀 같았다.
첫날 과장님은 멸균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 주셨다. 나는 뭐가 뭔지도 모른 채,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아, 네. 네…” 자동 응답기처럼 중얼거리면서.
그동안 선생님 뒤를 따라다니면서 보조해온 바로썬,
8시 10분쯤 되면 외래 파트에서 청구서와 함께 오염 물품들이 들어왔다.
각 과별로 공통적으로 나가는 세트도 있었지만, 특정 진료과만 사용하는 세트도 있었다.
기구 이름 하나하나가 생소했지만, 청구서와 실제 물품이 맞는지, 엉뚱한 것이 섞여 오지 않았는지 꼼꼼히 확인해야 했다.
8시 30분이면 병동, 응급실, 인공신장실, 중환자실까지 한 바퀴 돌며 물품을 수거했다. 끊임없이 오가는 기구세트와 멈추지 않은 발걸음,, 부산스러움이 끝나면
돌아와 세척 트레이에 정리하면서 수량을 맞췄다.
9시 반까지 이 과정을 마치면 잠깐의 티타임. 하지만 10시부터는 전쟁이 시작됐다. 부족한 물품을 보관장에 채우고, 설압자·거즈·컬처바틀·폐기능검사 청구까지… 비어있는 바구니를 보고 실링 해서 멸균할 수 있도록 정리해야 했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새 12시, 수술실에서 스팀 멸균 물품이 들어왔다. 멸균 카트에 싣고 기기를 돌리면, 그제야 오전이 끝났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EO 멸균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1시 30분, 오전에 처리했던 오염 물품을 병동으로 딜리버리 하고, 새로 맡긴 EO 물품들을 사이즈에 맞춰 필름지에 넣고 실링 했다.
여기엔 규칙이 있었다.
너무 빽빽하게 포개도, 너무 띄엄띄엄 올려놔도 안 됐다. 과장님이 원하는 ‘그 모양’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럴 때마다 듣기 싫은 농담까지 덤으로 날아왔다.
2시 30분이 되면 세탁실에서 수술실용 패키지가 올라오고, 3시 30분엔 EO 1번 기기가 가동을 시작했다. 그 후엔 내시경실, 치과, 4시쯤엔 심혈관센터에서 오염 물품이 도착했다.
업무는 멈춤이 없었다. 시계는 계속 돌고, 손도 계속 움직였다. 첫날이 끝날 무렵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릴 정도였다.
업무는 체력전을 방불케 했고, 머릿속은 늘 “시간 안에 끝내야 한다”는 압박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중간중간 선생님들이 건넨 짧은 농담, 필요한 걸 묵묵히 챙겨주는 또 다른 선생님의 배려에 피로 속에서도 묘하게 버틸 힘이 생겼다.
퇴근 후 병원 문을 나서면 다리는 천근만근이었지만, 하루를 버텨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인턴의 하루는 그렇게 빠듯하게, 그리고 숨 가쁘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