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늦지 않았다는 걸 믿고 싶어서

퇴근 후 3시간, 서른의 작은 도전

by 밍뚜


병원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지금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광고대행사라는 꿈이 남아 있었다.

아주 오래전, 학창 시절 기업을 분석하고 광고 전략을 발표하던 수업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폭스바겐을 주제로 PPT를 만들었고, 나는 PPT 작업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서툰 손끝으로 디자인을 맞추고 자료를 찾고 발표 자료를 다듬는 시간이 그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무엇보다 결과 발표에서 생각보다 높은 점수가 나오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정받는 느낌이 들자 가슴이 설렜다. 그 순간부터 언젠가 꼭 광고 일을 해보고 싶다는 갈망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그 갈망이 서른이 된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적어도 도전이라도 해보지 않으면 언젠가 후회할 것 같았다. 하지 않아서 아쉬워지는 순간이 오면, 그때는 정말 막연하게 슬퍼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처음 도전한 건 검색광고마케터 시험이었다. 인강을 켜고 책을 펼쳤지만, 오랜만에 마주한 책상 앞은 낯설고 버거웠다. 조금만 이해가 안 돼도 “조금만 쉬다 해야지”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그래도 매일 퇴근 후 30분이라도 앉았다. 시간이 쌓여 1시간이 되고, 3시간이 됐다. 문제를 풀고 오답노트를 만들며 버틴 끝에 드디어 첫 시험을 봤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하필 시험 당일, 인터넷이 끊겨 시험을 절반도 못 봤다. 돌아온 건 “통신망 업그레이드 완료 되었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자 한 통뿐. 억울하고 답답하고 속이 엉망진창이 되어 컴퓨터 속 화면을 멍하니 보기 한참이었다. 시험 잘 봤냐는 전화 한 통에 그제야 시선을 떼어 낼 수 있었다. 홧홧한 속을 달래며 전화를 붙잡고 토로하고.. 그리고.. 그리고.. 어쩔 수 없었다.라고 생각까지 가기에는 내가 너무 멘탈이 약했다. 겨우 다음 시험 일정을 알아보니 연말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SNS광고마케터 시험에도 도전했다. 결과는 또 1점 차 불합격. 25점 만점 중 24점. 단 한 문제 차이였다.

순간 너무 허탈했지만, 세상이 나를 억까를 하는지 의심스러웠다. 시험운이 이렇게 나쁠 수가 있나? 싶기도 했다. 그 정도까지 가니까 오히려 ‘꼭 합격해야겠는데’라는 오기가 생겼다. 다음 시험은 11월. 시험이 연달아 이어졌지만, 그만큼 공부의 텐션도 유지됐다.


퇴근 후 피곤한 몸으로 책상 앞에 앉는 건 여전히 쉽지 않았다. 그래도 버텼다.
책을 펴고, 인강을 듣고, 오답을 적었다.

합격은 아직 멀었지만, 서른이 된 뒤에야 알게 됐다.
끝까지 버티는 끈기, 그게 결국 나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갈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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