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듯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청년 인턴이라 부르기엔 조금은 늦은 나이, 서른.
하지만 여전히 어디쯤에 서 있는지 모르겠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병원의 공급실은 유난히 공기가 느리다.
내일이면 정년을 맞는 선생님이 계시고,
십 년, 이십 년씩 이곳을 지켜온 분들이 많다.
다른 부서 사람들은 이곳을 ‘잠시 머무는 곳’ 혹은 ‘조용한 유배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티가 잘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곳이 낯설지 않았다.
병동 시절 함께했던 40~50대 선생님들 덕에
나이 차가 주는 거리감보다
묘한 편안함을 먼저 배웠다.
아침마다 들려오는 병원 소식,
점심시간의 짧은 농담,
그리고 오후 배달길에 나누는 한숨 섞인 이야기들.
누군가의 불평에도, 뒷이야기에도
굳이 중심에 서지 않는 법을 익혔다.
말은 옮겨지는 순간 무게를 잃고,
결국 누군가를 삼키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은 재빠르고 단단해졌다.
필요한 말만 하고, 웃으며 넘기고,
마음은 안으로 감추는 법을 배웠다.
요즘 들어 선생님들이 종종 물으신다.
“인턴 연장할 거야?”
“결정했어?”
나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질문이 내 일을 잘 해내고 있다는 증거 같아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졌다.
하지만 밤이 오면, 다시 생각이 많아진다.
인턴이 끝나면 또다시 취준의 계절이 온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학원에서
영상과 디자인을 배우겠다는 계획을 세워두었지만,
이 길이 정말 나에게 맞는 걸까.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곧 나를 채우는 일일까,
아니면 또 다른 방황의 시작일까.
작은 성취가 주는 안도감은 짧았고,
그 끝엔 여전히 ‘다시’라는 단어가 남았다.
다시 고민하고,
다시 불안해하고,
다시 내일을 향해 발을 떼는 일.
그게 서른의 방황이라면,
이 또한 나의 한 장면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