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산책, 생각이 잠잠해지는 시간

걸음마다 생각을 내려놓는 연습

by 밍뚜



어디선가 슬그머니 삐져나온
나의 또 다른 루틴을 소개할 차례다.
무엇을 이야기하면 좋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른 건 저녁 산책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여러 순간에서 실감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달라진 건
소화력이었다.


예전에는
새벽 네 시까지 술을 마시고
첫 차를 타고 집에 가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해냈는데,
이제는 그 기억이
조금은 생경하게 느껴진다.

밥 양을 자연스럽게 줄이게 되었고,
식사 후 삼십 분만 앉아 있어도
쉬이 속이 내려가진 않는다.

눕고 싶어도
편히 쉴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혹시나 싶어
위·대장 내시경도 받아봤지만

큰 이상은 없었고
약간의 위염만 있다는 결과를 들었다.
그 말은 곧,
대체로 건강하다는 뜻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몸을 움직이는 것뿐이라는 결론에 닿았다.


그래서 시작한 게
밥을 먹고 나서 걷는 삼십 분이다.
날이 아무리 춥든,
아무리 덥든
이건 꼭 지키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다.
적어도 나 자신과 한 약속만큼은
어기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이 단순한 루틴은 생각보다 큰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먼저 느낀 건
확실히 소화가 편해졌다는 것이고,
그다음은 내가 사는 동네를
다시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이런 집이 있었나?’

‘이런 골목이 있었던가?’

늘 다니던 길인데도
저녁 공기 속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낯설어서, 그래서 조금 반갑다.

걷다 보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생각들도
조금씩 느슨해진다.
꼭 해결해야 할 것 같던 고민들이 굳이 지금은 아니어도 될 일처럼
조용히 뒤로 물러난다.

그 시간만큼은 아무것도 붙잡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발걸음에 맞춰
숨을 쉬고, 주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잠잠해진다.


저녁 산책은 몸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어느새 마음을 살피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이전 07화일기 대신 감정기록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