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 판테온, 스페인광장, 그리고 트레비 분수
눈을 떠보니 로마였다. 조식을 먹고 숙소 앞 산책을 하는데 이제야 정신이 든다. 로마에 와있구나. 서둘러 채비를 하고 J와 함께 길을 나선다. 오늘의 첫 행선지는 콜로세움. 우리는 유적지에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로마까지 왔는데 콜로세움은 가봐야 할 것 같다.
로마의 여행자들은 보통 지하철이나 호텔에서 불러주는 콜택시를 이용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콜택시를 부르면 택시기사들이 기본료로 5유로를 찍고 오는데 한국 돈으로 7천원 가까이 되는 돈. 내가 와달라고 불렀기에 오는 수고로움에 대한 답례라기엔 비싼감이 없지 않다. 이곳 사람들 사이에 우스갯소리로 콜이 들어오면 택시 기사들이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그제서야 5유로를 찍고 출발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
어쨌든 택시기사님의 도움(?)을 받아 콜로세움에 도착했다. 와보고 느낀건, 우리는 유적지에 관심이 없는 편이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는거였구나. 아침 이른 시간으로 예약을 하고 방문했음에도, 사람 반 콜로세움 반이다. 콜로세움에서 전세계 사람을 다 만난 것 같다. 노란 손수건을 매고 수학여행을 온 듯한 꼬맹이들 뒤를 따라 다니다가 그대로 퇴장했다. 이럴 때 J와 마음이 잘 맞아서 다행이다.
콜로세움을 벗어나니 하늘이 보인다. 그러고보니 콜로세움이 참 잘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로지 아래쪽 경기장으로만 시선이 가도록 설계된, 본래의 목적에 충실한 원형 경기장. 로마 하늘은 아침부터 이렇게 맑았을 텐데, 콜로세움을 나오고 나서야 하늘이 보인다.
사람들 틈바구니를 빠져나와 한적한 길을 걸으니 좋다. 로마는 콜로세움도 판테온도 스페인 광장도 아니고 그냥 길이 좋았다. 그렇게 길을 걷다가 판테온과 스페인 광장을 거쳐, 트레비 분수로 간다.
(온종일 사람에 치이며 걸어다닌) 우리는 지쳤고, 다툼을 시작했다. 잘못은 내 쪽에 있는 것 같았는데 사과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좀처럼 다투지 않는 커플이었다. 결혼준비를 하면서도 한차례도 다투지 않았다. 다툼은 신혼여행지에서부터 시작됐다. 이 날을 제외하고도 우리는 수 많은 이유로 수도 없이 다투고 마음을 닫을 채로 여행을 했다. 지금도 겨우 신혼 4개월차 이지만, 이제는 다투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아파하고, 아름다운 시간들을 날려버렸을까’ 생각하다가, 그 시간의 우리가 있어서 오늘의 우리가 있겠구나 생각한다. 여행을 거듭할수록, 우리는 지겹도록 싸우고 끈질기게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 돌아온 J와 나는 종종 존댓말을 사용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상대가 존대를 써오면 나 역시 존대를 하게 되는데, '밥 먹었어?'에 대한 대답은 '응'이 되지만, '밥 먹었어요?'에 대한 대답은 '네 먹었어요'가 된다. 이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건 유일하게 호칭인데, 우리 부부는 '여보'라는 호칭을 서로에 대한 존칭으로 생각한다. 아무날도 아닌 밤, 나는 '여보'를 족히 10번이나 부르며 J의 뒤를 졸졸 쫓아 다닌다. 그는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네 여보'하고 대답한다. 나는 그의 성실한 대답과 무심한 뒷모습을, 돌아서서 지어보이는 억지미소를, ‘왜왜왜 왜요~’하며 돌진하는 그의 장난기를 사랑한다.
덧,
판테온 반, 사람 반
스페인 광장 반, 사람 반
다투는 중에 J가 찍어준 트레비 분수에서..
#3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