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는데, 대체 그 로마법은 누가 만든 걸까. 로마를 여행하며 가장 괴로웠던 건 너나 할 것 없이 거리에서 피워대는 담배연기였다. 길을 걸어가면 두명 걸러 한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숨을 잠깐 참는다고 담배연기를 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로마에 있는 이틀 동안 하루에 담배 한갑은 피운 것 같다고 엄살을 떠는데 J의 반응이 통 시큰둥하다. 나의 괴로움을 외면하는 J에게 화가나서 (물론 그의 잘못은 아니지만) 아침부터 한바탕하고 길을 나섰다.
오늘은 바티칸 시티로 간다.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괜스레 설레는건 왜일까.
바티칸 시티는 당초 방문할 계획이 없었다. 덕분에 예약도 전혀 하지 못했는데, 준비 없는 사람에게 저절로 열리는 문은 없더라. 성당으로 입장하는 줄이 어찌나 긴지, 시작이 어디부터 인지도 보이지 않았다. 줄 없이 프리패스 시켜준다는 호객꾼들이 많았지만 왠지 불법을 저지르는 것 같아 그들을 통해 입장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건물 밖에서만 둘러봐도 바티칸 시티 대성당의 위용은 엄청났다. 압도적인 분위기에 하늘의 구름까지 특별해 보였다.
오늘은 포지타노로 이동하는 날이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J가 여행 일정을 거의 다 짰는데 포지타노에 꼭 가야겠다고 일정을 다시 짜달라 했다. 그만큼 가고 싶었다.
로마에서는 포지타노로 바로 가는 방법이 없어 나폴리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포지타노까지 셔틀 버스로 이동한다. 바티칸 시티에서 돌아와 숙소에 맡겨둔 짐을 찾고 테르미니 역으로 가는데 우물쭈물 하다가 기차시간이 다 돼버렸다. 오마이갓. '기차를 놓치면 어떻게 되는거지? 기차야 다음걸 타도 된다지만 그럼 포지타노로 가는 셔틀버스까지 놓치는 건가? 그럼 오늘 밤은 나폴리에서 숙소를 잡아야 하나?' 뛰어가는 동안 온갖 생각이 들었다. 기차를 놓친줄 알고 그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얼마나 뛰어 다녔는지 모르겠다.
알고보니 우리가 15분 연착이라는 표기를 잘못 보고 15번 플랫폼에 가서 기차가 안온다고 발을 동동 구른 것. 지금이야 우리가 바보같았다며 웃지만, 당시에는 정말 1분 1초가 급박했다. 기차 시간이 지났는데도 열차가 들어오지 않는다. 옆에 있던 아무 역무원이나 붙잡고 우리 기차가 도대체 어떻게 된거냐고 물으니 저~~ 반대쪽에 서있는 열차를 가리킨다. 캐리어를 끌고 또 뛰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도 멈추지 않는 J의 장난기 “난 틀렸어, 먼저 가..”. 찌릿 한 번 째려봐주면 그제서야 다시 열심히 뛴다. 정말 열심히 뛰었다. 그리고 간신히 탔다.
나폴리에서 포지타노로 가는 길은 구불구불하기가 대관령 저리가라였다. 더군다나 우리를 태워 준 셔틀버스 기사가 어찌나 베스트 드라이버인지 코너에서도 감속 없이 쭉쭉 밟아대는 통에 포지타노에 못 가보고 하늘나라로 가는 줄 알았다.
창 밖으로 포지타노가 보인다. 꿈꿔왔던 풍경이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탄성이 나온다. 카메라를 꺼내 수도 없이 셔터를 눌렀는데, 진짜 포지타노에 도착한 후에 들어오는 길의 풍경은 비할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 비현실적인 풍경 속에 사람들이 살아간다는게 놀라울 뿐이다.
#4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