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빈총잡이 저격수』에서
갈고리
하늘에서 갈고리가 내려와 있다
두 팔 쭉 뻗어 손에 닿을락 말락
까치발 디뎌 갈고리를 잡으려 애쓴다
허공에 덩그러니 매달린,
핏빛 암컷용이 우아하게 다듬은
구부러진 빨간 손톱 같은 갈고리를
두 손으로 잡고 악착같이 버틴다
별에게로 가는 길은 오직 이 갈고리
별에서 울리는 심장 고동까지 전해진다
몸에 칭칭 두르고 다니던 철사를 풀어
갈고리와 나를 딴딴히 엮는다
다행히 어제보다 살이 빠졌는지,
갈고리에 매달린 채 한 뼘 한 뼘
하늘로 하늘로 올라간다
아래 일손 놓은 농사꾼들 내게 무관심한 채
아무렇게나 늘어져 그늘 밑에서 쉬고
어제까지 내가 사랑했던 여자는
오월 쾌청한 바람에 나부끼는
그 많은 하얀 빨래를 집게로 고정하기 바쁘다
그리고 나는 바람 소리를 듣는다
허공을 맴도는 긴 바람
사과꽃 향기
탕-
하늘에서 총알이 날아왔고,
자갈밭에 고이는 내 흥건한 피
ㅡㅡㅡ
선인장의 나라
나를 호텔캘리포니아로 생각하십시오.
별로 마음 내키지 않는다면 뭐
별수 없지마는 그래도 나를
호텔캘리포니아로 삼아주십시오
난무하는 광기
난무하는 애착
난무하는 그리움을
호텔캘리포니아에서 찾으십시오
호텔캘리포니아를 기억하십시오
호텔캘리포니아를 잇는 다리는
모래로 되어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순식간에 사라질 다리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끈끈한 침을 발라 놓은 굳건한 다리에
사막의 모래 알갱이가 날아와
촘촘히 촘촘히 붙어있을 뿐인 거죠
다리 위에 뜬 하얀 달
그리움의 다리는 결코 붕괴되지 않습니다
쌓인 모래 위로 당신의 흔적이 새겨집니다
총총히 찍힌 당신의 발자국 위로
새끼 전갈이 허물을 벗고 또
뜨거운 모래바람이 불어온다면
호텔캘리포니아의 한 타임이 지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쉬워할 것 없습니다
당신의 발자국이 묻힌 자리에
선인장이 자라있을 테니까요.
ㅡㅡㅡ
겨울밤에
한밤중 문 열고 나가,
문득 쏟아지는 함박눈을 만나니
진정 겨울인 것을 느낀다.
쌓인 눈에 남기는 발자국 하나하나에서
겨울을 확인한다.
방금 화목보일러 불구덩이에
장작을 던지며 느꼈던 기운을 품는다.
누군가에게 꺼내줄 그 온기,
그리고 황금빛 가로등 빛에 부서지는
눈발을 응시한다.
눈동자에는 분명히 장작불이 타오를 것이고,
그리하여 두 눈을 깨끗이 씻고 살다 보면
즐거운 일이 생기기 마련임을 새긴다.
ㅡㅡㅡ
김진 시집 『빈총잡이 저격수』(책나무) 수록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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