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가 있냐고 묻는 아이
'선생님, 이 물에 오징어 있어요?'
오월 마지막 날, 따사로운 한낮 시간이었다. 개천 너른 데크에 자리를 잡았다. 양반다리로 앉아 느긋하게 김밥을 먹는 중이었다. 물길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사자 갈기처럼 부푼 내 머리칼을 들썩이게 했다.
요깃거리로 산 김밥 반줄을 천천히 음미하며 먹어 치웠을 무렵, 뒤편에서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유치원생 삼사십여 명이 선생님들 인솔 아래 개천 바람을 쐬러 나온 길이었다.
난감했다, 너무나 난감했다.
왜 하필 내가 머문 이곳에서 발걸음이 멈추는 것일까. 김밥 한 조각이 주는 소박한 평화가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졌다. 내 마음을 어르던 물소리의 은은한 화음과 햇볕의 나른한 온기가 갑자기 갈피를 잃었다.
내가 찾은 소소한 쉼터가 사라지는 순간, 공중에 떠도는 목소리 하나.
'선생님, 이 물에 오징어 있어요?'
한 여자아이의 질문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내 표정이 바뀌었다. 개천에서 오징어라니? 얼마나 귀여운 질문인가, 오징어. 아이다운 엉뚱한 상상력. 아이들의 투명한 눈동자가 빚어낸 물음이 나를 미소 짓게 했다.
아이들에게 주로 나이를 물으며 대화를 시도했다. 아이 중 세 명은 일곱 살, 한 명은 그 옆의 아이가 대신 네 살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어디 사느냐고 물어보니, 서울시 마장동 어쩌고 하며 집 번지수까지 꼼꼼히 대답하는 아이도 있었고,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저기 살아요! 하는 아이도 있었고, 서울 살아요! 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저씨도 서울 살죠? 라고 묻는 그 아이에게 나는, 어 나도 서울 살아, 하고 대답해 주었다.
몇몇 아이는 풀잎을 뜯어 물 위에 띄워 보내길 즐겼다. 물살을 따라 떠내려가는 것을 응시하는 작은 눈동자들. 그 작은 풀잎 하나에도 아이들은 무언가 신비로운 것을 찾아낸 듯했다.
내가 벗어놓은 운동화를 어떤 아이가 만지려는 것을 조용히 제지했다. 신발로 장난칠까 염려해서만은 아니었다. 문득 바라본 운동화가 초라했다. 신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벗어놓고 보니 그 누추함이 선명했다.
아이들이 내 김밥을 탐내지는 않았다. 내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누군가 먹는 모습만 봐도 침을 삼키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기억 중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버스 터미널, 대기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같은 또래 아이가 커다란 소시지를 쩝쩝 씹어 먹는 모습을 봤다. 그 광경이 어찌나 부럽던지, 지금도 선명하다.
지금 아이들은 넉넉한 시대를 살고 있다.
어쩌면 세월의 물줄기가 이토록 달라진 풍경을 만들어낸 것일까.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받지 마라' 그런 가르침이 몸에 배어 있을 터. 오히려 내가 무언가를 권하는 게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너무 어린아이들이라 동그란 김밥이 입에 들어가기도 버거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많은 아이 모두에게 나누어줄 만한 김밥도 아니었다.
한바탕 아이들의 소란이 멀어지고 나서야 나도 일어났다. 문득 조금 전 그 작은 목소리들이 남긴 여운을 느꼈다. 나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말을 건네던 아이들. 그들의 맑은 눈동자 속에서 나는 낯선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아마 내 얼굴에 무언가 친근한 기운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이들은 그런 어른의 모습을 본능적으로 알아보는 법이니까.
유치원 선생님들과는 말을 나누지 못했다.
아이들 수십 명을 돌보느라 정신없었을 것이다. 낯선 남자에게 다가가기를 주저하는 마음도 당연하다. 특히 내 일탈적인 외모가 다소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어야 했는데, 나 역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요즘 타인과의 대화가 어색하고 무거워서 말이다.
결국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의 목소리만이 그 사이를 채웠다.
물에 비치는 사자머리를 보았다. 갈기가 바람에 일렁였다. 부푼 장발이 들판의 억새처럼, 성난 사자의 갈기처럼 뻗쳐 있었다. 두 손으로 머리칼을 움켜쥐고 가라앉혔지만, 손을 놓으면 바람이 다시 그것을 하늘로 치켜세웠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숱을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개천물 속, 팔뚝만 한 잉어 떼가 은빛 물결을 그어갔다. 수십 마리가 서두름 없이 줄지어 헤엄치는 모습, 그 물살의 리듬이 가슴 깊은 곳의 무언가를 흔들어 깨웠다.
물고기를 보면 늘 원시의 혈관이 뜨거워진다. 나는 가끔 꿈속에서 물고기를 잡는다. 바지를 걷고 물속에 발을 담그면, 미끄러운 비늘과 힘찬 꼬리지느러미가 발가락 사이를 비집고 지나간다. 그때 나는 두 손 가득 은빛 생명들을 움켜쥔다.
'이 강의 모든 물고기는 내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탐욕의 화신이 된다. 아마도 물고기를 잡듯 인생의 어떤 큰 목적을 이뤄야겠다는 갈망이, 꿈속에서 이런 원시적 충동으로 변신하는 것일까. 하지만 꿈에서 깨면 텅 빈 허무가 밀려온다. 갈망과 절망 사이, 그 얇은 경계선 위에서 나는 늘 흔들린다. 꿈속의 풍요로운 손아귀와 현실의 공허한 주먹 사이를.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과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현실 사이의 그 아득한 거리. 그것이 내가 매일 건너야 하는 강이다.
세월을 낚듯 물고기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들의 느린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니 시간 감각이 흐려졌다. 언제부터 이렇게 서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그때 한 노인이 조용히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말없이 나란히 서서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잉어들. 저들도 한때는 작은 치어였을 텐데, 이제는 제법 큰 몸집으로 느긋하게 헤엄치고 있다. 노인도 젊은 시절 물고기 잡는 꿈을 꾸었을까. 백발이 성성한 지금도 아마 가끔은 그런 꿈을 꾸고 있을지 모른다.
"물고기가 참 많네요."
"전에 한창 산란기 때는 더 대단했지."
노인의 대답에서 '한창'이라는 말이 물 위의 잔물결처럼 귓가에 머물렀다. 그 순간 나는 산란기의 물고기 이야기 속에 흐르는 또 다른 물결을 감지했다. 단순히 과거 어느 봄날의 물고기 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노인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는 회상의 언어였을 것이다.
산란기에 강물을 가득 메우며 힘차게 헤엄치던 잉어들, 그 생명력의 격류는 아마도 그의 젊은 날과 겹쳐졌으리라. 혈관을 뜨겁게 달구던 젊음의 에너지가, 물살을 가르며 번뜩이는 은빛 비늘의 활력과 포개지는 순간. '한창때'라는 그 짧은 표현 속에는 시간의 흐름과 세월의 무상함이 물과 기름처럼 함께 떠 있었다.
문득 깨달았다. 노인의 시선에서 보자면, 지금 내가 바로 그 '한창때'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사자 갈기처럼 부푼 머리칼, 개천가에서 김밥을 씹으며 물고기를 바라보는 이 순간, 그에게는 아직 꿈의 물살을 헤쳐 나갈 힘이 남아 있는 젊음으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내 안의 어떤 것들이 시들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노인과 내가 바라보는 시간의 지점이 서로 다르다는 것. 그에게는 지나간 한창 시절의 아련함이, 나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황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우리는 같은 물을 보면서도 각기 다른 강물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문득 바라본 노인의 눈빛, 그 깊은 곳에서 외로움이 은은히 번져왔다. 혹여 내 눈빛과 같은 색일까? 나는 흐르는 물에 흐릿하게 비치는 내 모습을 살폈다. 역시 나도 그처럼 외로운 빛을 띠고 있었다.
그 공명하는 침묵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해, 나는 물가를 떠났다.
상쾌한 바람이 다시 불어왔다. 동시에 긴 사자 갈기가 바람에 흔들렸다. 개천을 따라 걸으며 생각했다. 만약 내 머리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면, 젊고 예쁜 유치원 선생님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까.
그들의 맑은 웃음소리 사이에 끼어들어,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며 따스한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마음. 그러나 거친 사자 갈기로 인한 일탈적인 외모에, 꾀죄죄한 차림새, 그리고 침체된 심리가 그런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이 되었다.
문득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짧게 단정하게 칠까, 강한 충동이 일었다. 긴 머리는 내 상징이자 자존심인데, 나는 또 세상과 타협해야 하는가. 여전히 제 길을 따라 잘 흐르는 저 개천물처럼 나도 줏대를 가져야 할 텐데.
개천물을 바라보았다. 물은 변함없이 제 길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나도 그처럼 내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칼처럼,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자꾸 흔들리는 내가 답답했다.
나는 개천에서 대열을 이탈한 잉어였다. 아마도 신비의 용궁을 찾아 나선 여행자 아닌가 한다. 그 여정의 끝을 가늠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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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김진 수필집 수록 예정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