헹주를 내려놓고, 펜을 들 시간
7시부터 시작한 집안일이 끝난 건 10시 50분.
바깥일로 치자면 반나절의 노동이다. 티브레이크 하나 없이 쉼 없이 움직였다.
국물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아침으로 오랜만에 누룽지와 된장찌개를 끓였다. 맛있게 드시는 남편을 보며 서둘러 두 사람의 도시락을 싼다. 오늘은 막내가 일찍 가야하는 날이라 손이 바쁘다. 한바탕 정신없이 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텃밭을 한바퀴 둘러 볼 시간이다.
열무가 많이 자라서 오늘은 수확을 해야한다. 애벌레들이 벌써 선수를 치며 맛나게 이파리들을 갉아먹고 있다. 예상에 없던 수확을 하고, 열무물김치를 담그려고 씻어 물기를 빼는 동안 육수를 만들었다, 육수가 식을동안 베큠을 돌리고 헹주를 삶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시계는 1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아~~~ 원래 계획이 이게 아니었는데...
출근이 없는 날, 일부러 아무 일정도 안잡는 날이 내겐 수요일이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이면 다짐한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자리에 앉아서 글도 쓰고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자.”
하지만 주부의 눈에 보이는 일거리들이 자꾸 발목을 잡는다. ‘이것만 정리하고… 저것만 넣어두고…’
그러다 보면 나와 약속한 시간은 자꾸만 뒤로 밀린다.
그래도 오늘은,
막내가 돌아오기 전, 오후 3시까지는 아직 앉아서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내리고 자리에 앉는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하루가 아니라,
나를 돌보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이가 들수록 더 또렷이 느껴진다.
살고 싶은 삶의 방향으로 나를 이끄는
이 틈새의 시간들이 참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