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근교 Central Coast의 겨울 텃밭
한국에서 살 땐 겨울은 모든 것이 멈추는 시즌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곳, 호주 동부해안의 Central Coast의 겨울은 영하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텃밭은 쉼 없이 작지만 고요히 생명들이 자란다.
여름에는 애벌레, 진딧물, 이름 모를 벌레들과의 전쟁으로 정신없었지만, 겨울 텃밭은 그야말로 평화 그 자체다. 느릿느릿 자라지만, 대신 벌레 걱정 없이 한 박자 느린 여유롭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작물을 잘 고르기만 하면, 이곳 겨울은 텃밭 농사에 꽤 매력적인 계절이다. 가령 이번에 스노우피(Snow Pea) 모종을 몇 군데 심어두었을 뿐인데 줄기가 제멋대로 뻗어 나가며 철망을 감고 마구 올라간다. 나갈 때마다 톡톡 딸 수 있는 아삭한 간식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나갈 때마다 무심코 한두 개 입에 넣고 돌아서게 된다. 작지만 이런 맛이 겨울 텃밭의 기쁨이다.
올겨울엔 작은 기적 같은 일도 있었다.
텃밭 구석에서 뜻밖에 호박이 자라고 있는 걸 발견했다.
호박은 가을이면 시즌이 끝이고, 꽃도 안 피는데, 어쩌다 수정이 되었는지 아주 천천히 크기를 키워가는 중이다. 자연은 가끔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너무 추워서 안 자라겠지' 싶던 것들이, 뜻밖에 자라나기도 하니까.
이번 겨울의 최대 수확 작물은 단연코 열무다. 크게 자란 것만 골라 뽑았는데도 양이 엄청났다.
생각지도 못한 열무김치를 한가득 담갔다.
맛나져라~~~
주일에 교우들 초대해서 열무비빔밥 잔치라도 열어야겠다. 오셔서 한 그릇씩 뚝딱 해치우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벌써 마음이 흐뭇하다.
이번 시즌에는 특별한 선물도 하나 더 있었다.
아버지의 손길이 깃든 비닐 온실이다. 한국에서 오셔서 머무시는 동안 손수 만들어 주셨다.
지금 이 안에서는 토마토가 실험처럼 자라고 있고, 여러 여름 채소 씨앗들도 뿌려놓았다.
진짜로 '거의 자급자족'이 가능해지는 순간이 오고 있는 것 같다.
여름엔 진딧물 때문에 공격을 너무 받는 케일을 약치지 않고 키우려면 겨울이 제격이다.
빈자리에 엇갈이 배추씨를 한 움큼 뿌렸더니 모조리 싹이 났다. 비가 오는 날 온실 안에 고이 옮겨 심었다. 한 달 후엔 엇갈이배추 수확이 대단할 것 같다.
텃밭은 나를 더 천천히, 더 깊게, 그리고 더 감사하게 만든다.
정원 가꾸기는 작은 땅에서
하늘을 가꾸는 일이다.
윌리엄 워즈워스 (William Wordswor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