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어버린 진정한 환대를

그녀가 보여주었습니다.

by 진그림
잊을 수 없는 그녀가 차려준 손님맞이/진그림

그녀는 내가 평생 처음 만난 시리아인이자 난민이었다. 고국을 뒤흔든 정치·종교적 분쟁과 내전 속에서, 그녀와 가족은 레바논으로 도망치듯 삶의 자리를 옮겨야 했다.


시리아 난민들은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시리아는 정부군, 반군, ISIS, 외세가 뒤엉킨 복잡한 내전으로 빠져들었고, 폭격과 총격은 일상이 되어 집은 무너지고 병원과 학교는 없어졌으며, 전기와 물조차 끊긴 채 사람들은 더 이상 일상의 삶을 이어갈 수 없었다. 폭탄 소리와 남편과 자녀들의 강제징집, 종교적 박해 속에서 특히 어린 자녀를 둔 가족들은 더 이상 머무는 것이 삶을 지탱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절히 깨달아 고국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레바논에서 만난 시리아 난민들의 삶은 전쟁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을 제대로 누릴 여유가 없어 보였다. 공식 난민캠프가 없는 나라여서 대부분은 비닐과 나무로 얼기설기 지은 비공식 텐트촌에 산다. 비가 오면 천막 위로 물이 스며들고, 겨울이면 바람이 그대로 파고든다.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는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 이들은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이곳조차도 불시에 들이닥치는 경찰들이 남자들을 잡아 시리아로 송환해 버리기도 하기에 안전하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난민촌을 떠나갔다고 했다.


일자리 역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닥치는대로 일해야한다. 시리아 난민은 농장이나 공사장, 쓰레기 수거나 청소 같은 저임금·고강도 노동에 주로 종사하며, 아이들까지 가족을 돕기 위해 일을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을 이어가고 싶어도 이미 과밀한 공립학교상황이라 난민들을 위한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 언어의 벽, 등록비 문제로 절반 이상이 교실 대신 일터를 선택한다. 사회적 차별과 신분 제약으로 이동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여성은 폭력과 착취의 위험에 더욱 취약하다.

내가 방문한 그녀의 숙소는 난민촌이 아니라 포도원 한켠에 있는 허름한 창고였다. 그것도 렌트비가 밀려 주인의 독촉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우리를 맞이하면서 얼마나 기뻐하던지, 홍차를 내오며 따뜻할 때 마시라고 손짓과 눈으로 말했다. 잔이 비어있으면 계속 따라주었다.

통역을 대동해서 나눈 대화였지만 그녀와 그녀의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집에 오신 손님을 그냥 보내는 건 이들의 문화에선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인지, 일어서려는 우리를 기어이 붙잡으며 잠시만 기다리라 하곤 밖으로 나갔다.

얼마 후 그녀는 작은 쟁반에 음식을 내왔다. 당장 구할 수 있는 재료로, 그녀가 정성을 다해 만든 최선의 한 끼였다. 우리는 그 음식과 함께, 손님을 향한 가장 깊은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환대를 경험했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우리 집을 찾아온 이들에게, 이런 마음을 담은 환대를 건넨 적이 있었던가.


그녀의 삶은 불확실했고, 내일조차 장담할 수 없는 현실 속에 있다. 그런데도 그녀는 가진 것보다 마음을 먼저 내어주었다. 그 따뜻함 앞에서 나는 부끄러워졌고, 동시에 어떤 울림이 가슴 깊이 밀려왔다. 환대란 풍족함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그녀는 삶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가 내어준 작고 소박한 한 상은, 두고두고 나를 일깨우는 소중한 가르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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